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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오스트리아의 황후들...(14)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 마지막 황후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오스트리아의 황후
Princess Zita of Bourbon-Parma
(Zita Maria delle Grazie Adelgonda Micaela Raffaela Gabriella Giuseppina Antonia Luisa Agnese)
(9 May 1892 – 14 March 1989)
치타와 카를은 20대였으며 그들은 젊은 시절 적어도 제위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살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카를의 백부이자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매우 건강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1914년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내인 조피는 암살당하게 됩니다.
이런 비극적인 죽음은 단지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만의 비극이 아닌 전 유럽의 비극으로 확대됩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가족들
카를은 백부의 뒤를 이어 황태자가 되었고 치타는 이제 황위계승자의 아내였죠. 게다가 황태자의 죽음으로 오스트리아는 전쟁에 휩쌓이게 됩니다. 치타의 남편인 카를은 이제 전쟁터로 가야했으며 치타는 당시 다른 많은 왕족들과 똑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친척들끼리 서로 다른편에서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것이었죠.
1차대전은 친척관계이던 전 유럽 왕가들이 서로 편을 나누어서 싸움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과 독일은 전쟁했지만 영국 국왕과 독일 황제는 사촌간이었죠. 치타 역시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치타의 오빠와 남동생들은 서로 사는 곳에 따라 다른 진영에 참가하게 되죠. 남동생인 펠릭스와 르네는 오스트리아 군이 되었지만, 오빠인 식스투스와 자비에르는 프랑스에 거주했었고 후에 벨기에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벨기에 왕비였던 엘리자베트는 치타의 이종사촌이었죠.) 게다라 이탈리아도 오스트리아의 적국에 가담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출신의 치타에 대해서 "적"으로 보는 사람들마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늙은 황제와 함께 있는 카를 대공
전쟁이 일어난뒤 치타는 아이들과 함께 쇤부르크 궁전으로 갔으며 늙은 프란츠 요제프 곁에 항상있게 됩니다. 이제 전쟁이 일어나는것을 보게 된 늙은 황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컸으며 치타는 이런 황제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인물이기도 했었죠. 그리고 전쟁와중인 1916년 프란츠 요제프는 세상을 떠나고 치타의 남편인 카를은 황제가 되죠. 1916년 12월 치타와 카를은 부다페스트에서 대관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수행하게 되죠. 기본적으로 치타는 남편을 도왔습니다만, 군대일은 모두 카를이 처리해야하는 문제였으며 치타는 황후로써 남편과 함께 전방을 방문하고 병사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방문해서 부상병등을 위로했으며 전쟁때문에 힘든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자선사업을 했었죠.
대관식때의 카를과 치타 그리고 둘의 장남인 오토
하지만 전쟁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패배로 끝났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됩니다. 카를은 퇴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죠. 하지만 치타는 남편의 퇴위를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치타는 퇴위는 결단코 안된다면서 "이곳에서 자신들 모두가 죽는다해도 다른 합스부르크가문 사람들이 있다"라고 했었습니다.
카를과 치타는 아이들과 가신들과 함께 황실 사냥터가 있던 Eckartsau로 갔습니다. 하지만 퇴위를 거부하고 있었기에 가족모두 위험한 상황이었죠. 카를이 오빠인 식스투스는 동생부부를 구하기 위해 영국의 조지 5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조지 5세는 카를의 가족을 구해서 망명생활을 할수 있게 도와주기로 약속했죠. (그 직전 조지 5세는 사촌인 니콜라이 2세가 볼셰비키에 의해서 살해당한것에 매우 충격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군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오스트리아를 빠져나가 망명생활에 오르게 됩니다.
1921년 스위스에서
처음에 가족들은 스위스로 가서 생활했었습니다.하지만 1920년 카를은 헝가리의 왕위는 되찾을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죠. 그래서 헝가리고 가게 됩니다만, 성과없이 다시 망명길에 올라야했습니다. 1921년 카를과 치타는 마데이라 섬으로 가게 됐으며 스위스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와함께 있던 아이들 역시 1922년 마데이라고 갔습니다. 마데이라고 옮겨간 직후 카를의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22년 4월 34살의 나이로 사망하죠. 카를이 사망했을때 30살정도였던 치타는 막내아이를 임신중이었습니다. 카를의 마지막말은 치타를 향해 한말로 "당신을 많이 사랑하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타는 남은 평생 남편의 상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치타의 남편
오스트리아의 황제 카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