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마세나 영어 위키 분량은 글 한편정도 나올 분량이었거든요.
그런데 내용이 좀 부실해서 그런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프랑스어 위키를 영어번역으로 돌렸는데 거기도 별말 없드랩니다. 그래서 앗싸!!를 외쳤는데...ㅠ.ㅠ
위키에 보면 제일 내용 많은 언어에 별표가 붙거든요. 거기 이탈리아어에 별표붙어있길래 그걸 역시 구글 영어번역으로 읽었는데........
내용이 이렇게 많아졌습니다.ㅠ.ㅠ
프랑스 제1제정때의 귀족들...(23) 앙드레 마세나 : 에슬링 공(두번째)
앙드레 마세나
리볼리 공작
에슬링 공
André Masséna
(born Andrea Massena)
Duc de Rivoli
Prince d'Essling
(May 6, 1758 – April 4, 1817)
제국군 육군 원수
아미앵 조약이후 잠시 프랑스와 유럽이 전쟁을 쉬던 시기 나폴레옹은 정치적 권력을 잡는데 몰두합니다. 하지만 마세나는 이런 나폴레옹에게 동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마세나 스스로 정치가가 아니라 군인이라고 여겼을듯하며,수많은 혁명기의 다른 장군들처럼 나폴레옹이 군주제로 회귀하는 모습에 회의를 느꼈을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마세나는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나폴레옹이 자신 없이 작전을 맡길만한 장군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뒤 1804년 제국의 육군 원수를 임명할때 마세나를 빼놓을수 없게 했을듯합니다.
군단 깃발을 수여하는 황제 나폴레옹
저기 보면 어딘가에 마세나도 있을겁니다.--;;;;
육군 원수들이 다 자기의 원수봉을 들고 있거든요.-0-;;
1805년 전쟁이 일어나자 마세나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다시 갑니다. 그곳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나폴리 왕국을 장악하게 되죠. 하지만 곧 이탈리아내에서 프랑스 군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이 일어났으며 여전히 해상에서 지원하는 영국도 방어해야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마세나는 잔혹한 방법으로 게릴라전을 억제하려했습니다.리더를 교수형시키고 그가 중심으로 활동했던 마을을 파괴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게릴라전의 특징상 이런 상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었죠. 게다가 영국의 지원 역시 만만치 않았었습니다.
마세나
이탈리아에서
하지만 마세나는 이곳에서의 임무를 끝까지 하지 않습니다. 1807년 나폴레옹은 마세나를 폴란드로 불렀으며 마세나는 폴란드에서 나폴레옹군의 우익을 담당했었죠. 폴란드에서 마세나는 나폴레옹에게 여러가지 불평을 하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유하고 그의 건강에 적당한 기후였던 이탈리아가 아니라 혹독한 기후의 폴란드에 배치한것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실제로 마세나는 폴란드에서 폐질환으로 매우 고생했었으며 1808년에는 병으로 인해 전선을 떠나야했었다고 합니다.
1808년 마세나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리볼리 공작"칭호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한달쯤 뒤에 마세나는 사고로 한쪽 눈을 잃게 됩니다. 황제와 여러 장군들과 함께 퐁텐블로에서 사냥을 했었는데 마세나는 총기 사고로 인해서 왼쪽눈을 다치게 됩니다. 오발한 장군은 베르시에로 알려졌는데, 나폴레옹 본인의 실수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마세나가 군인으로써의 삶을 잠시 접어두게 만드는 것이었을듯합니다.
마세나
제국군 육군 원수
1809년 다시 전쟁이 일어나자 마세나는 다시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다시한번 참전했으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웁니다. 특히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에슬링에서 전투를 치루는 동안 마세나는 아스페른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뤘다고 합니다.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패배했었지만 마세나는 나폴레옹과 다른 전략을 모색했었다고 합니다. 또 마세나는 바그람 전투 당시 부상으로 인해서 말을 탈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마세나는 사륜마차를 타고 전장을 누비면서 명령을 전달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바그람 전투의 승리 이후 프랑스는 다시 한번 전쟁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공이 많았던 마세나에게 나폴레옹은 1810년 "에슬링 공"지위를 부여하게 되죠.
바그람 전투에서의 마세나
나폴레옹은 1810년 4월 마세나에게 이베리아 반도로 가게 합니다. "반도 전쟁"이라고 불렸던 일련의 전쟁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지배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벌린 전쟁중 포르투갈을 장악하기 위해 마세나를 보낸 것이었죠. 하지만 이곳은 나폴레옹의 실패한 전장중 하나였는데 게릴라전과 더불어 영국의 지원 역시 나폴레옹을 힘들게 했었습니다. 마세나는 포르투갈에서 영국군과 대치했었는데 영국군 사령관이 바로 웰링턴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마세나 역시 이 곳에서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전투중 미셸 네와 불화를 겪어서 네가 프랑스로 가버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마세나를 프랑스로 소환하는데 그는 마세나에게 "에슬링 공, 이제 당신은 더이상 마세나가 아니군"이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실망감을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전투는 마세나의 군경력에 마지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많은 부상을 당해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건강도 나빠졌었고 심리적으로도 옛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마세나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마르세유의 지역 사령관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마세나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가가 복고된뒤, 마세나는 공직에서 은퇴합니다. 그리고 100일 천하때는 나폴레옹과 부르봉 왕가 모두에 대해 어떤 지지도 하지 않고 마르세유에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또 그는 100일천하이후 반역죄로 기소된 미셸 네의 재판에도 참석하는 것을 거부했었다고 합니다. 마세나는 미셸 네와 사이가 나빴지만 아마도 거기 참석하는것은 자신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여겼을듯합니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마세나는 1758년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마세나는 모두 네명의 아이를 뒀는데 그중 딸이었던 빅투아르는 마세나의 참모이자 후에 프랑스 육군 원수가 되는 레(Reille)장군과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프랑수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리볼리 공작이 되었죠. 마세나는 젊어서부터 재산을 모으는데 관심이 많았던듯합니다. 이때문에 엄청난 재산을 긁어모았는데 특히 부유한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약탈한 것이 한몫했었다고 합니다만...사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있었을때 프랑스 장군중에 한재산 안챙긴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심지어는 고지식한것 같았던 베르나도트도 한몫챙기셨더라는....ㅎㅎㅎ 물론 후에 바라스한테 "나폴레옹이 한재산 챙겨도 된다고 했을때 참모들이 반대할줄 알았는데 아무도 반대 안했어요"라고 징징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0-;;;)
마세나
달고 있는 훈장은 레지옹도뇌르 훈장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