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나폴레옹 장군들은 관심없어서 잘 몰랐는데 뭐랄까 잘나간 사람도 있지만 말년이 영 안 좋은 분들도 있더군요. 그중 하나가 미셀 네 였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문득 생각났는데 저 나폴레옹의 열여덟명의 육군 원수들에 대한 책이 있거든요.-0-;;;; 전자책으로 받아놓은거 있는데 왜 그거 안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과연 볼수는 있을까요..ㅠ.ㅠ

(그 책이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구글같은데서 무료로 다운받을수 있다죠. 단 앞부분은 한글로도 나와있긴합니다. 영어교육용 책으로 말입니다. 그 책이 그렇게 나온거 보고 좀 당황했다죠..ㅎㅎㅎ)


프랑스 제1제정때의 귀족들...(24) 미셀 네 : 모스크바 공



미셀 네

엘칭겐 공작

모스크바 공

Michel Ney 

1st Duc d'Elchingen

1st Prince de la Moskowa

(10 January 1769 – 7 December 1815) 



미셸 네는 1769년 프랑스-독일 국경지방의 한 마을에서 통 장인이자 7년 전쟁에 참전했었던 베테랑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네가 자란 지역은 로렌 지방으로 지리적 특성때문에 네는 프랑스어는 물론 독일어도 배웠다고 합니다. 나름 교육도 많이 받았으며 광산업등에 대해서 공부했었는데 졸업후 그는 주로 법률사무소의 사무직 직원등으로 근무했었다고 합니다.

네는 이런 직업들이 맞지 않았다고 느꼈으며, 한때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1787년 후사르 연대에 입대합니다.(교육받은것도 그렇고 돈많이 드는 후사르로 입대한것도 그렇고 아부지가 통만들어서 돈좀 버셨나봅니다.--;;;) 그리고 빠르게 진급하게 되죠.


특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곧이어 프랑스 혁명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미셸 네는 이 혁명전쟁에서 주 전선에 있게 됩니다. 그는 1792년부터 1794년까지 북부방면군에 있었고 이 북부방면군은 주로 플랑드르쪽이나 인근 독일 지역까지도 전투를 하게 됩니다. 그는 이후 클레베르의 휘하에 있게 되는데 클레베르가 플뢰뤼스 전투에 참가했을때도 함께 있었던듯합니다. 왜냐면 이후 그는 상브르와 뫼즈군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네는 플랑드르 지방은 물론 후에 독일 전선에까지 가게 됩니다.네는 1796년 장군으로 승진하게 됩니다.(...베르나도트 전기에 보면 베르나도트가 네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온다죠.-0-;;) 그리고 그는 계속 독일 전선에 머물게 됩니다. 상브르와 뫼즈군은 모로의 부대(아 북부군이던가..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는..ㅠ.ㅠ)와 함께 계속 독일 지역에서 교전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네는 계속 독일 전선에 머물렀었죠.


1792년경 네


미셸 네는 몸을 사리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포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1797년 노이비트 전투에서 네는 프랑스 포병대를 공격중인 오스트리아 기병에 대항해서 전투를 벌이다가 낙마해서 포로로 잡히기도 했었죠. 1799년 네는 당시 프랑스 장군의 최고 계급인 중장의 지위에오르게 됩니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경 부근에 있었습니다. 이해 네는 빈터후르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 빈터후르 전투는 이후 벌어진 취히리 전투에서 프랑스가 승리를 거머쥘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마련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네가 부상에서 회복되는 동안 클레베르는 이집트 원정에 참가했고 네는 모로장군과 함께 싸우게 됩니다.


네는 이미 이전에 나폴레옹의 휘하에서 복무하지는 않았지만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인물중 하나였던듯합니다. 이때문에 네는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때 나폴레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나폴레옹과 네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던듯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네를 자신과 연결된 인물과결혼시죠. 네의 부인은 나폴레옹의 아내였던 조제핀의 친구이자 후에 시녀가 되는 아글레 루이즈 오귀에였다고 합니다.아글레는 마담 캉팡의 조카로 혁명후 이모인 마담 캉팡이 아글레를 돌봐줬었다고 합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네는 제국의 육군 원수중 한명이 됩니다. 그리고 1805년 전쟁때 대육군의 한 군단을 담당하면서 큰 공을 세우게 되죠. 특히 1805년 10월에 치뤄진 엘칭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 전투와 이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울름 지역을 장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를 기념에서 나폴레옹은 1808년 네에게 "엘칭겐 공작"칭호를 부여해주게 됩니다. 계속해서 독일 전선에서 싸운 네는 많은 공은 세웠는데 1808년 아일라우 전투때는 위험에 빠진 나폴레옹을 구하기 위한 보충병을 이끌고 나타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805년 경의 네

뭐라 적혀있던데 프랑스어라 대충 패스



네는 1808년 에스파냐 전선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네는 여러 사람들과 불화를 겪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세나와 조미니였습니다. 조미니는 네의 참모였지만 이곳에서 불화했고 결국 조미니는 프랑스군을 떠나 러시아군으로 가버리기까지 합니다.(이양반 전술서에서 네를 어떻게 평가했을라나..ㅎㅎㅎ) 마세나와 함께 포르투갈 침공을 진행하지만 마세나와 불화를 겪자 네는 그대로 파리로 돌아가버리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네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는 여기서도 부상당하지만 곧 회복했으며 보로디노 전투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프랑스에서는 "모스크바 전투"로 알려졌으며 이때문에 네는 후에 나폴레옹에게서 "모스크바 공"칭호를 얻게 되죠. 하지만 러시아 침공은 실패했으며 나폴레옹은 퇴각해야했습니다. 이때 네는 후미를 맡아서 퇴각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의 중요전투에 참여했으며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만 나폴레옹의 운은 서서히 다가고 있었습니다. 1814년 4월 4일 나폴레옹의 원수들은 퐁텐블로에서 나폴레옹의 퇴위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를 나폴레옹에게 말한 사람이 네로 나폴레옹은 "군대는 나에게 충성할것이오"라고 외치자 네는 "군대는 그들의 총사령관에 충성할것입니다"라고 대답했었다고 합니다.

네는 나폴레옹의 퇴위등을 조율했으며 부르봉 왕가가 복귀한뒤에 부르봉 가문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루이 18세는 그에게 귀족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하지만 복귀한 옛 귀족들은 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옛 귀족들에게 네는 그냥 나폴레옹 덕분에 귀족칭호를 얻은 일명 "벼락부자"였을뿐이었죠.


나폴레옹에게 퇴위를 요구하는 육군 원수들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해서 파리로 오고있다는 소식이 들어오게 되자 네는 부르봉 가문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나폴레옹을 잡아서 쇠창살에 가두고 끌고 오겠다고 큰소리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네는 부르봉 가문을 배신하고 나폴레옹에게로 돌아가게 되죠.

워털루 전투에도 참가하게 되지만 나폴레옹의 패배가 짙에 되자 그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프랑스의 원수는 어떻게 죽는지 보여주겠다"라면서 돌격하게 되죠. 하지만 네의 앞에 다섯마리의 말이 쓰러졌고 이때문에 네는 이 돌격으로 죽지 않았으며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워털루에서 돌격중인 네와 그의 참모들


네는 반역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그의 변호사는 네가 현재 프로이센 지역 출신이기에 프랑스 재판정이 아닌 프로이센에서 재판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재판을 피하려하죠. 이 사실에 네는 "나는 프랑스 인이며 프랑스인으로 남을것이오"라고 변호사의 주장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총살형을 선고 받았으며 1815년 12월 6일 총살형에 처해집니다. 네는 죽기전 눈을 가리는것을 거부했으며 그리고 자신이 직접 발사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고 합니다. 처형직전 네는 자신은 프랑스를 위해 수없이 싸웠지만, 프랑스에 대항해서 싸운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뒤 발포명령을 내려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네의 죽음


네는 마담 캉팡의 조카이자 조제핀의 친구이자 시녀였으며 후에 마리 루이즈의 시녀가 되는 아글레 루이즈 오귀에와 결혼해서 모두 네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장남인 나폴레옹 조제프는 군인이자 정치가로 나폴레옹 3세가 되는 루이 나폴레옹을 지지했었습니다. 둘째아들은 미셀 루이 펠릭스로 역시 정치가로 활동했습니다. 셋째아들은 외젠이며 막내아들인 에드가 역시 군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었습니다.



네의 세 아들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