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늘 생각하지만 전투용어는 너무 어렵거든요..ㅠ.ㅠ

그런데 이게 육군에는 좀 익숙해졌는데 뜬금없이 해군으로 가니까..ㅠ.ㅠ


게다가 범선 용어도 미친듯이 봐야하고 말입니다.-0-;;;


프랑스 혁명전쟁...29.1793년 7월 31일 해전 


프랑스 혁명전쟁 초기 프랑스의 해군력은 영국의 해군력보다 매우 약화되어있었습니다. 혁명으로 인해서 전문 인력이었던 배를 운용할수 있는 인력들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반면 영국 해군은 프랑스가 선전포고하기 이전부터 이미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해왔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프랑스 해군이 영국 전함을 상대하기 보다는 영국의 상선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하게 햇었고 여기에 숙련된 선원들이나 장교들이 투입되기도 했었습니다.


1793년 4월 프랑스의 캡틴 장 바티스트 프랑수아 봉파르가 이끄는 선단은 미국 대사로 임명된 에드몽 샤를 주네를 태우고 미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사를 내려준뒤,미국 연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60척이상의 영국 상선을 나포하거나 파괴한뒤 미국의 항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선단은 미국 항구에서 프랑스 배들을 감시하고 봉쇄하라고 명령을 받은 영국 해군에게 알려지게 되죠. 



주네


32문의 대포를 실은 작고 낡은 프리깃 전함인 HMS Boston의 함장인 캡틴 조지 코트니는 영국 상선들을 공격하는 프랑스 프리깃중 하나가 정박중인 뉴욕항을 정찰하라는 임무를 맏게 됩니다. 코트니는 자신의 배를 프랑스 배로 가장했고 도선사가 탑승했을땐 프랑스말을 할줄 아는 선원들에게 크게 프랑스어로 떠들게 했죠. 

뉴욕에 정박중이던 프랑스 프리깃은 봉파르의 "엉부스카드"였습니다. 이배는 새배였으며 보스턴보다 크고 무게도 더 나가는 선박이었습니다. "보스턴"이 입항하는 것을 본 봉파르는 이 이상한 선박을 의심했으며 미국 출신의 대위를 12명의 선원과 함께 보내서 이 배에 대해서 알아오게 했습니다. 이 대위는 좀 이상했지만 프랑스 선박으로 확인했죠. 그는 자신과 그의 선원들이 배에 억류되고서야 이 배가 프랑스 배가 아니라 영국 해군의 배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코트니는 자신의 포로에게 프랑스 전함의 함장에게 중립지역에서 전투로 승부를 내자고 이야기하고는 중립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도선사는 이것을 프랑스 함장에게 알리려했지만 그를 찾을수 없었고 결국 뉴욕의 커피하우스에 메모를 남기게 됩니다. 소식은 삽시간에 시 전체로 퍼졌으며 봉파르는 이 결투를 위해 이틀간 배를 수리하는등 준비를 하게 되죠. 이때 미국 자원병 100명이 봉파르의 배에 자원해서 탔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뉴욕시 인근 지역


준비를 마친 엉부스카드는 7월 30일 밤 출항을 합니다. 하지만 보스턴은 이 결투를 못치를뻔하는데 7월 30일 오후 전열함 에콜과 네대의 프리깃 그리고 여섯대의 작은 배로 구성된 대규모 프랑스 전투 선단이 뉴욕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선단과 보스턴이 만났다면 파괴되었을테지만 다행히 프랑스 전투선단은 보스턴을 지나쳐서 그대로 뉴욕항으로 들어갔었습니다.


새벽3시 보스턴은 큰 선박을 발견하고 3시 30분 코트니는 6.5km까지 접근한 그 선박이 프랑스의 삼색기를 달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코트니는 그 배가 자신과 싸우기로 한 봉파르의 엉부스카드인지 확인하려하죠. 그리고 5시 보스턴은 프랑스배를 향해 방향을 돌려서 프랑스 프리깃이 우현으로 가게 한뒤에 발포합니다. 그후 두배는 다시 서로를 향해 선회하죠. 뉴저지 근처에서 진행된 이 교전은 곧 육지에 있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전투를 구경하기 위해 해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보스턴은 전투 15분후에 cross-jack yard(미즌마스트-뒷돛대의 아랫쪽 사각돛부분)를 손실했으며 5시 45분에는 돛과 삭구가 모두 손상을 입습니다. 6시 10분에는 메인마스트가 너덜너덜해졌고 미즌마스트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죠.그리고 10분후에는 전투를 독려하던 캡틴 코트니와 해병대 대위인 제임스 버틀러가 포탄에 맞습니다. 둘다 죽은것으로 여겨졌는데 지휘권을 이어받은 존 에드워드 대위는 병사들이 동요할것을 우려해서 둘의 시신을 바다에 버리게 하죠.6시 40분경 미즌마스트는 거의 무너져버렸고 남아있는 삭구들은 잘려서 너덜너덜해지게 됩니다. 이동안 남아있던 장교인 존 에드워드 대위와 알렉산더 커 대위 역시 심하게 부상당하는데 에드워드는 나무조각을 머리에 맞고 정신을 잃고 있었고 커는 시력을 상실했었죠.



전투중인 보스턴 과 엉부스카드



장교들 대부분이 죽거나 다치자 보스턴의 선원들은 공황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정신을 차린 에드워드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동안 봉파르는 마지막으로 raking fire( 가로로 놓인 배에 수직방향으로 대포를 쏘는것으로 넓은 포격이 아니라 배에 구멍을 내거나 인명살상을 위한 목적이 강해서 전투 마지막에 쓰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를 실시하죠.  에드워드는 바람을 이용해 배의 방향을 바꾸었고(jibe or gybe) 더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한것을 알고서는 공해로 빠져나가려합니다. 

7시 7분 봉파르는 보스턴을 추격하려합니다만, 그의 배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보스턴이 그의 엉부스카드보다 가볍고 빠른 배였기에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합니다. 

8시 보스턴은 공해상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갔고 엉부스카드는 추격을 포기하고 뱃머리를 뉴욕항으로 돌리죠.


봉파르의 엉부스카드는 너무나 심각하게 손상을 입어서 8월 2일이 되어서야 뉴욕항에 입항할수 있었습니다. 미국언론은 봉파르가 50명의 사상자가 있다고 언급하죠. 보스턴은 댈러웨어 강에서 수리를 하려했습니다만 인근에 있는 무드요새에 두대의 프랑스 프리깃이 정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북상해서 뉴펀들랜드에 있는 세인트존스까지 가게 되죠. 보스턴은 10명이 죽고 24명이 부상당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부상때문에 더이상 해군에 남아있을수 없었지만 봉파르는 미국으로부터 메달을 수여받았을뿐만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메달을 수여받습니다. 그리고 계속 프랑스 해군으로써 여러전투에 참가하죠.


에드워드의 보고서에서 코트니가 전투중 죽었다고 언급되었으며 당대에도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몇몇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포탄이 떨어졌을때 버틀러는 즉사했지만 코트니는 갑판아래로 떨어졌고 사망하지 않았으며 에드워드가 성급하게 그를 바다에 버렸기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부인되었지만 코트니 가문 사람들은 코트니가 즉사하지 않고 에드워드 대위 때문에 죽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