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스도 이기는 전투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0-;;;


프랑스 혁명전쟁...31.1793년 10월 24일의 해전


프랑스 혁명전쟁이 일어나면서 해협과 비스케이 만사이에서 프랑스의 영국 상선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략형태였었지만 곧 프랑스 프리깃들이 전투에 참가했었다. 이에 대해서 영국 정부는 프리깃을 중심으로 하는 선단이나 또는 프리깃 단독으로 프랑스 해안을 따라 감시하면서 이들 배에 대한 경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1793년 가을무렵 캡틴 즈가리 알레망이 이끌던 4대의프리깃과 한대의 브릭 코르벳으로 구성된 선단이 비스케이만 북쪽에서 활동중이었다. 10월 22일 이 선단은 16문의 에스파냐 브릭인 알코우디아를 발견한다. 즈가리 알레망은 자신의 선단에 있던 캡틴 장 프랑수아 타르튀의 우라니(Uranie)를 보내 이 에스파냐 브릭을 나포하게 한다. 타르튀의 우라니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단과 떨어져 나와서 독자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손쉽게 에스파냐 브릭을 나포한다.



알레망


곧 타르튀는 나포선과함께 이동하던중 2일후인 10월 24일 오전 9시 30분 배 한척과 만나게 된다. 그 배는 캡틴 제임스 코테스(James Cotes)가 지휘하던 영국 프리깃인 HMS 템즈(Thames)였다. 많은 영국 프리깃들처럼 이 배도 건조한지 30년 이상된 오래된 배였다. 타르튀는 나타난 선박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교전해야될 상황에 대비하게 된다. 타르튀의 배는 신형으로 영국 전함보다 크고 선원도 많았지만 그는 지금 배를 나포중이었고 이때문에 운용인원이 부족했었다. 게다가 포로까지 데리고 있었기에 갑작스럽게 전투를 시작한다면 포로들이 적으로 돌변할수도 있는 문제였다. 결국 타르튀는 나타난 선박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 에스파냐 브릭에 포로들을 모두 태워서 멀리 떠나게 한다. 전투중 브릭이 적으로 돌변할 상황에 대비한것이었다. 그리고 타르튀는 신호기를 내걸었다. 하지만 코테스는 비오는 와중이 배를 확인하지 못했고 결국 두배는 서로 멀어져갔다.



전투가 일어난 지역

주황색부분

(제가 대충 칠한것임-0-;;)


하지만 10시 15분 날씨가 맑아졌고 두 배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된다. 그리고 타르튀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내걸었고 결국 두 배는 포격전이 시작된다. 두배의 캡틴들은 서로 우위를 장악하기 위해 서둘로 배를 이동시켰다. 우라니가 먼저 보드사이드(..대충 배에 대포들 많이 놓여져있는 그부위)쪽에서 템즈에 포격을 했으며 곧 방향을 완전히 돌려서 템즈와 나란한 방향으로 배를 돌려 다시한번 포격을 가했다.  이후 양측은 나란한 방향으로 서로에게 포격을 가했다. 12시 15분 템즈의 대포중 하나가 키잡이에게 직격되었다. 이 포격으로 인해서 타르튀는 무릎아래가 절단되었다. 타르튀가 부상으로 갑판아래로 내려간뒤 장교인 뷔베르가 지휘를 맡게된다. 이같은 방식으로 2시 20분까지 계속 포격전이 진행되었으며 그뒤 우라니는 템즈의 앞쪽으로 가서 보드사이드에서 포격을 가했다.


이러는 동안 두배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는데 타르튀는 갑판아래서 죽어가면서 퇴각을 지시했다. 그는 포로들이 반란을 일으킬것을 우려했으며 또한 포격전을 하는 동안 east-north-east 방향으로 이동했는데 이곳에서 영국 전함으로 추정되는 두대의 배가 있던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라니가 갑작스럽게 포격을 중단하고 퇴각을 하려하자, 코테스는 즉시 배를 수리하도록 지시한다. 템즈는 엄청나게 손상을 입었는데 세개의 돛대 모두가 부러졌고, 리깅이 다 잘렸으며, 포격으로 인해 갑판과 선체가 엄청나게 피해를 입었으며 34명의 선원이 죽거나 다쳤다. 우라니도 마찬가지여서 3.7km떨어진곳에 있던 우라니도 리깅이 거의 잘려나갔으며 선체와 갑판에 구멍이 났고 멀리서도 물퍼내는 모습이 보였었다.



우라니와 템즈의 전투


코테스는 프랑스 프리깃이 다시 돌아올것을 우려해서 어떻게든 손상을 고쳐보려고 애를 썼다.이때문에 4시가 되어서야 프랑스 프리깃이 시야에서 사라진것을 확인했다. 영국 선원들은 우라니가 침몰한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라니는 로셰포르로 회항해서 수리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또다른 배들이 접근하고 있었는데 그 배들의 깃발은 영국 깃발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코테스의 배가 전투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배들은 자신의 진짜 깃발을 내걸게 된다. 바로 프랑스 배들이었던 것이다. 선두의 프리깃이 포격을 시작하자 코테스는 즉각적으로 항복을 선언한다. 그의 배는 더이상 교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알레망은 코테스에게 자신의 기함인 "카르마뇰"에 탑승하라고 했지만 코테스는 자신의 배가 파괴되지않는한 그렇게 할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알레망은 보트를 보내 코테스를 전쟁포로로 잡아서 자신의 배에 승선시켰다. 이동안 코테스는 자신의 배에 있던 서류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리고 알레망은 자신의 선단에 소속되었던 우라니와 템즈가 교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0월 25일 알레망은 템즈와 그 선원들을 함께 데리고 브레스트에 도착했다. 이때 템즈의 모든 장교들은 다른 배로 옮겨졌는데 의사마저 옮겨졌기에 템즈의 부상병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2명이 추가로 사망하게 되었다. 코테스는 해군성에 이 전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프랑스측에서는 이 보고서를 넘겨주길 미뤘고 결국 영국은 1794년 5월 7일이 되어서야 템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 있었다. 코테스는 이후 바로 포로교환으로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몇몇 장교들은 2년이나 더 프랑스에 포로로 잡혀있어야했다. 이때문에 군사법정에 코테스가 서야했을때 그의 장교들 모두가 참석할수 없었다고 한다.(...국왕폐하의 배를 뺏겼기 때문에 대충 법정에 서야한댑니다. 그런데 보통은 어쩔수 없이 뺏긴거니 적당히 넘어가는듯하더라구요.--;;)


브레스트로 돌아간 우라니 역시 사상자가 많았으며 그중에는 배의 캡틴인 타르튀도 포함되어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타르튀를 기념해서 우라니의 이름을 그의 이름인 타르튀로 바꾸었다. (후에 프랑스는 용감했던 그를 기념하기 위해 1930년대와 1960년대 취항한 두대의 구축함에 그의 이름울 붙였다고 합니다.)이 배는 1797년 전투에서 영국에 나포되었으며 이후 원래 이름인 우라니로 영국 전함으로 사용되었다.

템즈는 타미스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전함으로 사용되지만 1796년 영국측에 다시 나포되어서 원래 이름으로 다시 영국 전함이 되었다. 





....프랑스가 이긴것이 맞는데 왜 이긴것 같지 않냐고요..ㅠ.ㅠ

제가 비록 영국 해군을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슬픈..ㅠ.ㅠ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