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는것없이 바쁜 엘입니다.
제가 매일매일 글을 열심히 쓰거든요.ㅠ.ㅠ
그런데도 왜 매일매일 써야할 글들이 있는 걸까요 ㅠ.ㅠ
곧 가을사과 따러가야할 시기라..더 바쁜듯하긴하네요 ㅠ.ㅠ
그건 그거고 오페라 보러 가기 전에 예습은 해야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음냐 이것보다 사실 글룩 오페라가 더 무섭습니다..ㅠ.ㅠ
(인터미션때 집에 가는거 아냐..라고 엄청 걱정중이라는...)
[Beethoven]Fidelio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첫번째)
루드비히 판 베토벤
슈틸러의 작품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로 알려진 "피델리오"는 베토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오페라입니다. 베토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 오페라를 작곡했고 다시 편집하는등의 열성을 보였다고 합니다.이 오페라의 기반이 되는 대본은 프랑스 극작가인 장-니콜라 부이의 작품인 Léonore, ou l'Amour conjugal,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법률가이자 극작가였으며 무대 연출가였던 요제프 존라이트너에 의해서 독일어 대본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뒤에는 슈테판 하지만 이 작품이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가 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후 극작가였던 슈테판 폰 브로닝이 2막으로 줄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요제프 존라이트너
이 오페라는 베토벤이 지속적으로 손을 댄 작품이었기에 여러가지 판본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특히 세가지 본이 전해져오는데 이때문에 이 곡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이 오페라와 연결되는 아리아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03년 이었습니다. 1803년 엠마누엘 쉬카네더는 오페라를 위해 베토벤과 함께 일을 합니다. 쉬카네더는 "베스타 포이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만, 이 작품의 내용은 베토벤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작품을 가지고 아리아 몇곡을 작곡했는데 오페라를 완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 작품을 위해 썼던 아리아 일부를 피델리오에 사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O namenlose Freude
레오노레와 플로레스탄의 듀엣곡
이 곡은 베스타 포이어에 넣으려 했던 곡이라고 합니다.
Ha! Welch’ ein Augenblick!
이곡 역시 베스타 포이어에 넣으려 했던 곡이라고 합니다.
베토벤이 피델리오를 작곡하기 시작한것은 베스타 포이어의 완성을 포기하고 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피델리오를 완성해서 1805년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베토벤은 이 오페라의 제목을 Leonore, oder Der Triumph der ehelichen Liebe라고 붙였습니다만 극장측에서 이 오페라가 다른 오페라들과 헷갈릴것을 우려해서 피델리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후 이 오페라는 1806년과 1814년 두개의 버전이 더 만들어지는데 앞쪽 두개의 버전은 여전히 레오노레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마지막 판에는 피델리오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1805년 버전은 3막이었지만 1806년버전은 2막으로 줄었으며 이후 1814년 버전은 대대적으로 손을 봤었다고 합니다.
3막짜리의 첫버전은 빈에 있는 무대에서 올려졌는데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때 빈은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상황이었으며 프랑스 장교들이 오페라를 관람했는데 프랑스에서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을 오페라로 만든것이기에 아마 친숙함을 느꼈을듯합니다. 이후 1806년 3막짜리 오페라를 2막짜리 오페라로 줄여서 무대에 올렸는데 이 역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이 오페라를 좀더 손보게 되는데, 1814년에 베토벤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트라이슈케의 대본을 덧붙여서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이때 베토벤의 청력이 더 악화되었기에 미하엘 움라우프(후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초연지휘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슈베르트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자신의 책을 팔아서 티켓을 샀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이 1814년 버전역시 크게 성공했으며 이후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1814년 피델리오 공연의 프로그램
재미난 것은 피델리오의 서곡은 무려 4가지 버전이 전해져온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버전은 "레오노레 no2"로 알려진 서곡으로 1805년 초연에 사용된 서곡입니다. 이후 1806년 두막짜리 버전에서 사용된 서곡이 "레오노레 no3"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808년 프라하에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었는데 이때를 위해 작곡된 서곡이 "레오노레 no1"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1814년 피델리오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의 서곡이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2막 2장에서 "레오노레 no3"를 연주하는 것이 말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미 19세기에도 이런 형식으로 연주하기도 했었기에 꼭 말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는 할수 없다고 합니다.
레오노레 no 3
1830년대 영국과 미국에까지 이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졌지만, 널리 연주되게 된것은 2차대전 이후라고 합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피델리오에서 말하는 숭고한 정신에 위안을 얻었다고 이야기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