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글이 진짜 안 읽힙니다..ㅠ.ㅠ
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182)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와 호에나우 백작부인(첫번째)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그의 아내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은 다음해에 사망했고, 그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숙모였던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동생인 빌헬름 왕자와 결혼)가 돌봤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재혼하지 않고 지냈기에 결국 궁정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던 마리아 안나 왕자비가 아이들의 양육에 관여했던듯합니다.
다른 프로이센의 왕자들처럼 알브레히트 역시 어린나이에 군에 입대했으며,군인으로써의 삶을 살았습니다.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Prince Albert of Prussia
(Friedrich Heinrich Albrecht)
(4 October 1809 – 14 October 1872)
알브레히트 왕자는 1830년 사촌이었던 네덜란드의 마리안느 공주와 결혼합니다. 마리안느는 네덜란드의 국왕 빌렘 1세와 그의 부인인 프로이센의 빌헬미네의 딸로, 빌헬미네는 알브레히트의 고모였습니다. 이 결혼은 사실 양가의 우의를 다지는 일이기도 했는데 알브레히트의 누나인 루이제 공주는 마리안느의 오빠였던 프레데릭과 결혼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초반에는 행복한 결혼인것처럼 보였습니다. 둘사이에서는 다섯아이가 태어났으며. 이중 세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와 마리안느는 점차 서로가 맞지 않는 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으며 사교계 생활을 즐겼으며 신앙심이 깊었던 마리안느와 어려서부터 군인으로 교육받아서 군생활에 전념하는 알브레히트의 생활은 점차 어긋났습니다. 게다가 알브레히트는 당대 많은 남성 왕족들처럼 아내가 있었음에도 다른 여성과 한눈을 팔았고, 마리안느는 이런 남편을 용납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1844년 마리안느는 남편과 별거 생활에 돌입하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마리안느
아내와 별거하게 된 알브레히트는 아내의 시녀였던 로잘리 폰 라우흐라는 여성과 연인관계가 됩니다.
로잘리 폰 라우흐는 프로이센 장군이자 후에 전쟁 장관이 되는 구스타프 폰 라우흐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로잘리 폰 홀첸도르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로잘리의 할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대왕 휘하에서 싸웠던 장군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 역시 장군이나 전쟁장관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또 로잘리의 외가인 홀첸도르프 가문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섬기던 프로이센 왕국의 오래된 귀족가문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로잘리는 왕자비의 시녀로 일했던 것입니다.
로잘리 폰 라우흐
Rosalie von Rauch
(Rosalie Wilhelmine Johanna;)
(29 August 1820 – 5 March 1879)
Countess of Hohenau.
마리안느는 남편과의 이혼을 원했지만 네덜란드나 프로이센 왕가 모두 이혼을 반대합니다. 아마도 마리안느는 자신의 시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남편을 견딜수 없었을 것이며 차라리 이혼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여겼던듯합니다.
아내와 별거하면서 알브레히트는 로잘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1848년 알브레히트의 아내인 마리안느에게도 애인이 생기게 되죠. 남편을 떠나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살던 마리안느는 네덜란드 출신의 얀 반 로숨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곧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죠. 결국 이상황은 알브레히트와 마리안느가 이혼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사실 이전까지 프로이센쪽에서는 마리안느가 떠난것이 알브레히트의 잘못이었기에 그녀가 돌아오길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안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되었으며 1849년 둘은 정식으로 이혼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