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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183)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와 호에나우 백작부인(두번째)
알브레히트 왕자는 아내와 이혼한후 사랑에 빠졌던 로잘리와 결혼하길 바랬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 궁정에서는 이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알브레히트 왕자의 형이자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동생부부가 이혼하는 것에 반대했었으며, 마리안느가 임신하자 이혼을 허락하긴했지만 동생이 신분이 낮은 여성과 재혼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결국 결혼을 허락하긴 했을 듯은 한데 왜냐면 로잘리가 결혼하기 두주전에 "호에나우 백작부인"지위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것은 허락받지 못했었습니다. 1853년 6월 13일 작센-마이닝겐의 궁정에서 알브레히트 왕자와 호에나우 백작부인이 된 로잘리는 결혼식을 올립니다. 왜 이곳에서 결혼을 했냐면 알브레히트의 장녀였던 샤를로테가 작센-마이닝겐의 후계자와 결혼했기에 그 연결고리로 작센-마이닝겐에서 결혼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결혼후에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동생부부의 궁정출입을 막았습니다. 프로이센 왕가에서 귀천상혼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으며, 귀천상혼한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게 대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동생의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 한결같이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결국 이런식으로 동생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후에 빅토리아 여왕의 사위가 된 프리츠의 경우 처조카인 헤센의 빅토리아가 바텐베르크 가문 사람과 결혼한것에 대해서 좀 안 좋아했는데, 처제인 베아트리스 마저 이 가문 사람과 결혼한것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빅토리아 여왕이 삐졌다고 하더라구요.-0-;;;)
둘은 결혼후 처음에는 작센-마인닝겐에서 살았으며 이후에는 작센 왕국의 수도인 드레스덴으로 옮겨가서 거주했었습니다. 알브레히트는 드레스덴에 집을 마련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 대사는 로잘리가 드레스덴 궁정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했고 결국 부부는 드레스덴 궁정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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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에 있는 알브레히트부르크 성
알브레히트 왕자와 호에나우 백작부인의 집
하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죽고 그의 동생이자 알브레히트의 형이었던 빌헬름 1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을 바뀌게 됩니다. 프로이센 왕가에서는 호에나우 백작부인에 대해서 좀더 너그러워지게 됩니다. 빌헬름 1세가 동생의 집을 방문했을때 호에나우 백작부인은 빌헬름 1세에게 알브레히트의 아내로 소개되었으며 이것은 공식적으로 가문에서 둘의 결혼을 인정한것으로 해석될수 있습니다.
아마 결혼을 인정받은후 둘은 그냥 평온한 삶을 살았던듯합니다. 알브레히트는 여전히 프로이센 군인으로 복무했었으며 호에나우 백작부인은 이제 왕자의 아내로 어느정도 대접을 받으면서 살게 된 것이었죠.
1872년 알브레히트 왕자가 사망한후, 호에나우 백작부인은 궁정에서 은퇴해서 드레스덴에 있는 집에서 조용히 살아갔습니다.
알브레히트 왕자와 호에나우 백작부인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두아들인 빌헬름과 프리드리히 모두 프로이센 군인으로 살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