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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185) 프로이센의 요하임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의 요하임 알브레히트

Prince Joachim of Prussia

(27 September 1876 – 24 October 1939)


프로이센의 요하임 알브레히트 왕자는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와 그의 부인인 작센-알텐부르크의 마리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요하임의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였으며, 요하임의 할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막내아들이자 아내인 네덜란드의 마리안느와 이혼했었던 프로이센의알브레히트 왕자였습니다. 요하임의 아버지인 알브레히트 왕자는 부모의 불행에 매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오래도록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당대 왕가에서는 늦은 나이였던 36살때 작센-알텐부르크의 마리와 결혼했었습니다.



요하임 알브레히트의 아버지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로 그의 부모는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에 결국 이혼했고 그 결과 그는 오래도록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요하임의 어머니인  작센-알텐부르크의 마리는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에른스트 1세와 그의 부인인 안할트-데사우의 아그네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작센-알텐부르크 가문은 유럽의 여러 왕가와 연결이 되는 가문이었습니다.



요하임의 어머니

작센-알텐부르크의 마리


요하임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프로이센의 다른 왕자들처럼 군에 입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음악에 대해서 관심과 열정을 가졌으며 작곡을 하기 시작했었습니다.(아마 작곡 재능은 할머니인 네덜란드의 마리안느를 닮은듯) 그는 다른 왕자들처럼 1차대전에 참전했지만 부상을 입었고 결국 군에서 은퇴한뒤 음악에 전념하게 됩니다.


요하임은 전쟁이 끝난뒤인 1919년 마리 블리흐-줄처라는 여성과 오스트리아의 이슐에서 결혼합니다. 그의 아내는 "동등한 결혼"을 할만한 신분이 아니었는데 이에 대해 가문에서는 그의 결혼을 허락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요하임이 가문의 수장이었던 전 황제 빌헤륾 2세와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는 모습을 보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그해 마리는 사망했었고 요하임은 홀아비가 됩니다.


1920년 10월 요하임은 빈에서 카롤린 코르넬리아 스톡함머라는 여성과 재혼합니다. 그녀 역시 프로이센의 왕자가 "동등한 결혼"을 할만한 신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1936년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냈습니다.


요하임 왕자는 1939년 10월 23일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