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할 사람이 없어서 마리를 하네요.
개인적으로 마리는 뭐랄까 초년에 정말 힘든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죠.
원치 않게 미혼모가 되었으며 첫번째 남편은....--;;;
그나마 두번째 결혼으로 나름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할까요...
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226)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마리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마리
Duchess Marie of Mecklenburg
(Victoria Marie Augustine Louise Antoinette Caroline Leopoldine)
(8 May 1878 – 14 October 1948)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마리는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대공 아돌프 프리드리히 5세와 그의 아내인 안할트의 엘리자베트의 첫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영국의 공주였던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로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사촌이었던 테크의 메리는 후에 영국의 조지 5세와 결혼해서 영국의 왕비가 되었죠.
마리의 아버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아돌프 프리드리히 5세
마리의 삶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하면서 시작됩니다. 상대는 대공가의 아이들을 돌보던 시종중에 한명으로 마리의 가족들 대부분은 마리가 그 시종에게 몹쓸짓을 당했다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실 쉬쉬하면서 조용히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가족들은 마리가 멀리 가서 아이를 낳은뒤 조용히 있다가 어디 적당한 남자에게 시집가게 하려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일이 대중에 공개 되면서 시작됩니다. 대공가에서 그 시종을 도둑질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는데 그 시종이 대공가를 고소하면서 결국 일이 대중에게 공개되게 됩니다.
이 사건에서 마리는 그나마 좀 다행이었던 것이 그녀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보호했던 두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할머니인 아우구스타 대공비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문제에 대해서 남자들은 사생아가 한둘 있는 것은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여자들에게만 엄격하게 대한다라고 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대공비
마리의 할머니
마리는 아이를 낳고 스캔들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렸을듯합니다. 이때 마리는 프랑스로 갔고 이곳에서 프랑스 귀족이었던 자마텔 백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는 그와 결혼하죠. 이 결혼이 마리가 스캔들을 피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결혼식에 수많은 왕족 친척들이 참석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매우 불행했습니다.
마리의 남편인 자마텔 백작은 여러 여성들과 연애질을 했었는데 특히 에스파냐의 인판타 아우랄리아와는 대놓고 바람을 폈었습니다. 문제는 부부가 마리의 아버지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대놓고 경제적 이유때문에 마리와 결혼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마리는 충격을 받았으며 이혼을 원하게 되죠. 마리의 막내 동생인 카를 보르빈은 이에 격분해서 매형과 결투를 벌였고 결국 결투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동생마저 죽게 되자 1908년 12월 마리는 바로 자마텔 백작과 이혼합니다. 아마도 마리는 그가 바람핀것을 참다참다 못참았던것같은데 이전에 이미 가족의 체면을 구긴 그녀였기에 이번에는 잘해보려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더 비참하게 되었던 것이죠.
동생인 카를 보르빈과 함께 있는 마리
이후 그녀는 1914년 리페의 율리우스 에른스트와 결혼합니다. 리페 가문은 비록 작은 가문이었지만 통치 가문이었으며 율리우스 에른스트의 조카는 후에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과 결혼하는 베른하르트이기도 했습니다. 이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