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외젠의 후손들은 이렇게 되는군요.
요세피나 왕비만 봐서 외젠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227) 로이히텐베르크의 니콜라이와 드보아르네 백작부인 (첫번째)
로이히텐베르크의 4대 공작이었으며 후에 동생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게 되는 니콜라이 막시밀리아노비치 드 보아르네는 3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인 막시밀리안 드 보아르네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의 세번째 아이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외할아버지였던 니콜라이 1세는 딸을 위해 사위를 러시아 황실 가족으로 인정했으며 외손자들에게 "로마노프스키/로마노프스카야 공"지위를 부여해줬었습니다. 이때문에 니콜라이 역시 러시아 황실의 방계 가문의 일원으로 러시아 황실 가족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4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니콜라이 막시밀리아노비치 드 보아르네
Nicholas, 4th Duke of Leuchtenberg
Николай Максимилианович Лейхтенбергский,
(1843 - 1891)
니콜라이는 어린시절 매우 허약한 아이였으며 이 때문에 계속해서 수술을 하는등의 일을 했습니다만 어머니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은 아이들을 매우 엄격하게 키웠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게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니콜라이는 아버지처럼 과학과 광산업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공부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외삼촌이었던 알렉산드르 2세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알렉산드르 2세는 이 조카를 좋아했었으며 1866년 황제에 대한 암살 시도 당시에 황제는 니콜라이와 그의 누나인 마리야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니콜라이는 사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이를테면 알렉산드르 2세의 후계자인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알렉산드르 3세)가 덴마크의 다우마 공주와 결혼할때 그의 머리 위에 왕관을 들고 있던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정교회식 결혼해서는 결혼식동안 신랑신부 머리위에 왕관을 들고 있습니다.)
맨 위가 니콜라이고 그 다음은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이고 마지막은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베르트
니콜라이는 다른 많은 황실사람들처럼 러시아 군인으로 복무했었으며 아버지처럼 광산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니콜라이는 한 아름다운 여성과 만나면서 스캔들에 휩쌓이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데즈다 세르기예브나 아킨코바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하필이면 유부녀였었습니다.
나데즈다 세르예기예브나 아넨코바
Nadeshda Sergeevna Annenkova
Наде́жда Серге́евна А́нненкова,
(1840–1891)
결혼전 나데즈다 세르기예브나 아넨코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이었던 그녀는 러시아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나데즈다는 다섯 자매들중 넷째였는데 아넨코바 다섯 자매들은 아름다움으로 유명했으며 그녀들을 보기 위해서 그녀들의 집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방문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중 희망이라는 뜻의 나데즈다는 제일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데즈다는 20살때 19살이었던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아킨코프라는 이름의 지방 귀족과 결혼합니다. 두딸이 태어난 뒤 나데즈다는 남편과 함께 1866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화려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의 삶을 시작하게 되죠.
아킨코프
나데즈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남편의 친척이자 정치가이며 외교관이었던 알렉상드르 고르차코프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고르차코프는 아마도 영향력있는 인물이었기에 나데즈다와 그녀의 남편은 그에게 잘 보이려했을 것인데, 고르차코프는 나데즈다에게 반했고 그녀에게 매우 열정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르차코프
그러나 나데즈다는 곧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