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흠..아무래도 보아르네 가문이 프랑스 출신이다보니 프랑스어 위키에 자료들이 막 남아있군요.
덕질은 역시...-0-;;;;;;;
귀천상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230)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Nicolas Nikolaïevitch de Leuchtenberg
(1868-1928)
러시아 칭호로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지위를 가지게 된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는 4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이자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외손자였던 니콜라이 막시밀리아노비치 드 보아르네와 그의 귀천상혼한 아내인 보아르네 백작부인의 장남으로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모두 러시아인이었지만 니콜라이는 러시아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가문의 수장인 황제의 허락없이 결혼했었기에 오래도록 유럽을 떠돌면서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11살이 되었던 1879년 황제는 정식으로 부모의 결혼을 인정해주었으며 니콜라이와 동생 게오르기 역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후 1890년에는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사촌의 두 아들에게 러시아 귀족으로써 공작 칭호를 부여했었습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니콜라이
니콜라이는 어려서부터 여러곳을 떠돌아다녔지만 스스로 러시아인으로 여겼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광산업에 대한 공부도 했었습니다만 결국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아버지가 죽은뒤 독일의 재산을 처분하고 러시아로 갔으며 러시아에서 군인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니콜라이는 귀족으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받아들여졌으며 여러가지 일들을 합니다. 특히 그는 보아르네 가문 출신으로 나폴레옹의 아내였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후손이기에 여러 가문의 예술품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903년 궁정 가장 무도회에서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니콜라이는 군인으로 참전해서 여러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만 10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러시아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니콜라이의 상황 역시 복잡해지게 됩니다. 니콜라이는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는 것을 반대한 몇안되는 사람중 하나였으며 결국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서 핀란드를 거쳐서 프랑스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적군과 백군 사이의 내전이 일어나자 그는 당연히 백군을 지지했으며 독일로 가서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백군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내전은 적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후 니콜라이는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니콜라이는 1928년 막내아들을 잃은 얼마뒤 사망했습니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ㅣ
니콜라이는 1892년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그라베 백작영애와 결혼했으며 둘사이에서는 일곱 자녀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니콜라이의 손자였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는 후에 8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이었던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드 보아르네가 후손없이 사망한 뒤 가문의 수장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의 아내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1903년 궁정 가장무도회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