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찬물을 한잔 마셨다.
'아차! 오늘 아침엔 몸무게를 재어보려고 했었는데...
1g 이라도 적게 나오려면 물 먹으면 안되는거였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일주일동안 눈 앞에 있는 체중계에도 못 올라갔었다.
체중계에 조심스레 발을 올렸다.
디지털 체중계가,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알려주겠다는 듯 소수 첫자리까지 숫자가 뜬다.
'헉!'
화들짝 놀라 황급히 체중계에서 내려섰다.
'왜 2kg이나 높게 나오지?'
이번엔 숨을 깊이 들이마신채 다시 올라섰다.
'헉! 헉!'
그대로다.
이번엔 내려서서 체중계를 발로 몇번 찼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헉! 헉! 헉!'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듯
야속한 체중계는 조금의 변동도 없이 나의 몸무게를 적나라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눈금이 나와있는 예전 아날로그 체중계는
이렇게 몇 번 발로 차고 올라가면 모른 척 1kg 정도 눈금이 내려가 있기도 했는데...
먹는 것도 없는데 언제 이렇게 몸무게가 불었지?
아무 생각없이 마신 "찬물"에 누명을 씌우고 싶지만,
200ml 도 안된 찬물이 2kg이나 나갈리는 없다.
노출의 계절 여름인데, 아무래도 살을 빼야할 것 같다.
2008년 6월 14일!
난 나 자신에게 "다이어트령"을 내렸다.
먹는 것 줄이고, 운동 많이 하고, 무엇보다 술 끊고!!
그러면 1주일 후면 3~4kg은 줄지 않을까...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게 습관이다 보니 커피가 땡긴다.
블랙으로 마시면 열량이 낮으니, 커피 한잔은 괜찮겠다 싶다.
평소 믹스커피를 먹다가 블랙으로 먹으니, 불만족스럽다.
설탕을 두스푼 넣었다. 그러니 좀 먹을만했다.
설탕도 살이 찔텐데???
그래도 프림은 안 넣었으니까~~~
집앞 공원에 가서 가볍게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픈데,
걷기까지 했으니 허기가 진다.
배가 심하게 고플때 가장 땡기는 건 라면이다.
안돼! 라면의 칼로리가 500 이 넘는데,
안돼~~~~~
하며 나는 이미 물을 올려놓고 있다.
앞으로 다이어트를 하면 못먹을거니까 일찌감치 먹어두는 거라고,
쓸데없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허겁지겁 라면을 다 먹고 나니, 편했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밥은 안 말아먹었으니까~~~
열량 소모를 위해 열심히 청소를 했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서 땀이 난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플룻'을 꺼내 들었다.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악기가 많지만 플룻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부는 게 힘들어서 플룻을 열심히 불면 살이 빠진다는 말에 솔깃했었다
이번주에 배웠던 '도레미파솔라시도' 부터
간단한 곡인 '나비야' '자전거' 같은 걸 열심히 불어봤다.
30분 정도 불다보니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침대에 털썩 눕고 보니 또 배가 고프다.
TV를 틀었는데 때마침 치킨 광고가 나온다.
당연히 치킨이 땡긴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왜 평소엔 먹고 싶지 않았던 것도
괜히 먹고 싶어지는지...
안되는지 알면서 이미 내 몸은 일어나 가까운 치킨집 전단지를 찾고 있다.
조류독감이다 뭐다 시끄러운 탓에
한동안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따끈따끈한 치킨은 어찌나 맛있던지...
이렇게 치킨 먹으면 청소하며 땀빼고, 플룻불며 용쓴게 다 소용없어지는데....
그래도 반'만' 먹었으니까~~~ 반'이나' 남겼으니까~~~
토요일 저녁엔 배드민턴 수업이 있다.
가기전에 물한잔 마셔야지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우유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까지니까 오늘 안 먹으면 버려야 되는데...
버리면 아깝잖아. 그래서 마셨다.
아이참, 이렇게 자꾸 먹으면 안되는데...
그래도 환경을 생각하면 내 몸속에 버리는 게 나으니까~~~~
2시간동안 정말 열심히 배드민턴을 쳤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끝나고 나오는데 같이 쳤던 멤버들이 맥주 한잔 하잔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과감히 거절해야 하는데
사람 사는게 또 어디 그런가...
괜히 빠지면 다음부터 괜한 소외감을 느낄 것 같고
다이어트 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에라~모르겠다. 그냥 맥주 한잔 하러 갔다.
땀 뺀뒤 마시는 맥주의 맛은 정말 예술이다.
시켜만 놓고 안 마시려고 했는데, 홀짝 홀짝 한잔을 다 비웠다.
그래도 안주는 안 먹었으니까~~~
야심차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내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갈 게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래! 내일 아침엔 체중계를 못 본척 하는거다.
내일 열심히 다이어트 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올라가봐야지~
조금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남에게 보이는 내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나의 내면, 내 의지가 더 중요한건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다이어트를 한게 아니라
쓸데 없는 당위성 부여와 못난 자기 합리화, 자기 위안...을 하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나의 낙천적 성격은 가끔 이래서 문제다.
어쩌면 내게 시급한건 다이어트가 아니라
의지박약증 치료가 아닐까...
몸에 붙은 살을 빼서, 내 의지를 살찌우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