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뜨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 열어보기!

방안에 시계만 5개가 있으니 시간을 보기 위함은 아니다.

혹시...간밤에 전화나 문자 온게 없나? 확인하는거다.

하지만 거의 늘~ 없다.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300 여개의 전화번호 중

혹시 찍히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하는 번호는 딱 하나!

바로 남자친구의 번호다.

 

남자친구는 전화하는 것에 인색하다.

어떨때는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을 때도 있다.

어제도 낮에 한번 통화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젯밤, 자기 전에 전화하겠지....했지만 전화 없었고

오늘 아침, 일어나면 전화하겠지....했는데 역시나 전화기는 조용하다.

 

3년차 연인의 권태기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남자, 시종일관 처음부터 이랬으니까.

남자라, 여자랑 다른건지,

아니면 태초부터 전화랑 안 친했던건지,

그 답은 나도 모르겠다.

 

다른 연인들을 보면 하루에 열번도 더 통화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 자주 전화하는 사람을 꼽을때, 그 사람은 다섯손가락 안에도 못 들어가니

이게 무슨 연인이야....

오늘은 전화오면 진짜 한마디 해야지...마음 먹었다.

그러다가,  아예 오늘은 전화 와도 받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긴, 예전에 한번, 서운한 일이 있어서 일부러 전화 안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전화 안 받으니 그걸로 끝이었다.

분위기 봐서,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때까지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하루 한 통 거는 전화 안 받으면,

버스 떠나듯, 그걸로 그날은 끝이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전화를 안 받는게 나을 것 같다.

받으면 괜히 잔소리 하게 될 것 같고,

그런 잔소리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그래! 오늘은 안 받는 거다.

 

결심하고 돌아서며 전화기 던져놨는데,

일에 열중하지 못하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혹시 그 사람은 아닐까,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드는 나를 발견한다.

혹시 자리 비운동안 전화 올까봐 화장실에도 전화기를 들고 간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두고 나갔을 때는

혹시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뛰어 들어와 핸드폰부터 열어본다.

하지만 아침 인사는 커녕 점심 때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내가 먼저 해볼까...' 도 생각했지만,

아니다! 이번기회에 확실히 버릇을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저녁 무렵 전화벨이 울린다.

"♬샘이 많아서~ ♬겁이 많아서~ ♬이렇게 나의 곁에서 웃는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김동률의 "♬아이처럼"!

그 사람 전용 벨소리다.

액정엔 "웃음공장"이라는 네 글자가 떠 있다.

나에게 늘 웃음을 만들어주는 사람...

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은 "웃음공장"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 화나게 하는 나쁜 사람!!'

'웃음공장은 무슨...날 열받게 불지르는 화약공장 같으니라고!'

'흥! 내가 전화 받나봐라~'

'그러게 진작 좀 하시지!'

그러다가

'음.......이 전화 놓치면 또 언제 할지 모르는데...'

'어~ 이러다 끊기면 어떡하지?'

'안받아! 안받는다고! 안........받을려고 했는데'

 

"여보세요?"

 

부끄럽게도 나의 의지박약증은 여기서도 발휘된다.

전화기 너머에선 늘 그랬듯, 밝고 유쾌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젯밤엔 잘 잤냐고, 아침과 점심은 잘 챙겨 먹었냐고, 오늘은 별일 없었냐고....

전화 한통으로 하루를 총정리하는 그의 실속이 오늘따라 더 얄밉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혼자 씩씩거렸던 분노는 어느덧 사라지고

언제 삐쳤었냐는 듯 나또한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유쾌한 통화에 동참하고 있다....

 

난 내가 아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연애"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는 하나도 이성적이지가 않다.

 

대인 관계에 있어 이해심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나인데,

남친이 조금이라도 무심한 듯 하면

두번 생각 안 하고 삐친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데

남친이 조금이라도 날 서운하게 하면

'이 사람은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하며 극단적인 생각으로 바로 치달아 버린다.

 

자존심?? 그런건 못난 사람들의 자기 방어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전화하는 것 조차도 '자존심'을 내세운다.

 

남친은 오늘 하루도 자기 생활에 충실하며 잘 보낸 것 같은데

나 혼자 오지 않는 전화 붙들고 별의별 소설을 다 쓰고 있었으니.....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연애하면서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놀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에게 굿나잇 인사도 없이 지금쯤 잘 자고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또 막 서운하려 하는데

내일 만나서 저녁 먹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면 마음 한켠은 설렘에 심장이 뜨거워진다.

 

아~ 어렵다.

이성은 무기력해지고. 감정은 하루에 스무번도 더 변하니....

어쩌면 지금은 이 모든 걸 '머리'가 아닌 '마음'에 맡겨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것! 

그게 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