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 톡! 토독!"
새벽, 누군가 창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부시시 눈 뜨고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잤는데, 빗물이 창 안쪽으로 튀고 있었다.
창문을 닫고 자라고 깨웠나보다.
창문을 닫으며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온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비치는 빗줄기가 제법 굵다.
더불어 빗소리도 제법 시원~하다.
비오면 차가 더 막히니 아침에 좀더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비가 나보고 싸우자고 한 것도 아닌데
난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머리 손질 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데
오늘은 그냥 질끈 묶어버렸다.
아무리 손질을 하고 나가도, 비오는 날은 금새 부시시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빗물에 바지 끝단이 젖으면 하루 종일 찜찜하니 바지도 좀 짧은 7부를 골라 입었다.
윗옷은 뭘 입으면 좋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회색빛 옷으로 손이 간다.
신발도, 고여있는 빗물을 밟으며 첨벙거려도 전혀 문제 없을 샌들을 선택했다.
그러고 보면 비오는 날 내게 선택받는 옷이나 신발은 좀 불쌍하기도 하다.
'너희들은 젖어도 별로 안 아까워' 하는 것들이니까...
거울을 보니 나의 차림새가 좀 우중충하다.
그래도 괜찮다. 내겐 핑크색 우산이 있으니까...
차에 탔다.
이제부터는 비를 즐길 차례다.
차 안 배경음악을 샹송으로 깔았다.
앞창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괜히 분위기도 잡아본다.
"♬비오는 거릴 걸었어~너와 함께 걷던 그 길~"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알고 있는 비 관련 노래들이 하나씩 나온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오늘 같은 날은 누굴 생각해볼까....
억지로 누군가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점심시간...
오늘은 일 때문에 밖에서 혼자 먹게 됐다.
보통때 같으면 혼자 밥 사먹을 바엔
차라리 굶는게 낫다고 생각할만큼 혼자서 밥 먹는걸 싫어한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으니까..
다른 때 같으면 뭘 먹을지에 대해서도 한참 고민을 하는데
오늘은 먹을 메뉴도 바로 답이 나왔다.
칼국수!
아침부터 바지락 듬뿍 들어간 칼국수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비 때문이리라...
바지락칼국수집을 찾아 창가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렇게 비를 보며 먹어야
더 맛있을 것 같아서..
아니 덜 뻘쭘할 것 같아서...
퇴근 무렵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남자친구도 비 얘기부터 꺼낸다.
"비오네~"
"그러게~"
"먹어야지?"
"그렇지!"
우리의 이 간결한 대화 속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비오는 날이면 불문율처럼 여기는 게 있다.
"비오는 날엔 파전에 동동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 동동주, 막걸리다.
그런데 이 술들이 보통때는 마시기가 좀 쌩뚱맞다.
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고 보니
비가 오면 비를 핑계삼아 막걸리를 "꼬옥~" 마셔준다.
넓직한 대접에 막걸리를 한사발 따르고
잔을 부딪히며 "건배!~"
그런데 뭘 위한 건배지??
비오는 날은 그런것도 필요없다.
그냥 오는 비를 즐기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노릇노릇한 파전은 막걸리의 단짝이다.
막걸리와 파전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난 비오는 날이 좋다.
오늘 내 생활이 보통 때와 조금 달랐다면
그건 오늘의 배경에 "비"가 있었기 때문일거다.
그냥 "오늘의 날씨 : 비" 일 뿐인데
그 비로 인해 나의 하루에 조금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평소와는 다른 색깔이 칠해진다.
이제 장마가 시작됐다고 한다.
가끔 만나는 "비"가 아니라 자주 보게 될 "비" 같은데
장마동안 내 생활은 어떤 게 변할까?
빨래를 자주 못할테니 평소 안입던 옷까지 꺼내입게 될까?
비가 오면 더러워지는 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겠다.
오늘 비 때문에 더러워진 차는 내일 비로 씻겨지고
내일은 또 그다음 날 비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꼭 세차하면 비가 오잖아~' 하며 타이밍의 어긋남을 원망할 일도 없겠다.
무엇보다 막걸리 동동주를 맘껏 즐길 수 있겠다. 신난다.
이렇게 마음 속에 비를 담아두는 것만으로
겨울을 나는 '월동준비'에 버금가는
장마철 나는 '월장준비'는 끝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