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3 : 내 주변의 죽어있는 것들-

 

아침에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루의 반나절이 지난 12시?

하지만 난 놀라지 않았다.

12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역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으로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노려보았다.

시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 방 시계는 그렇게 열흘째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건전지가 다 되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집에 여분의 건전지가 없었다.

건전지를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열흘동안 했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하얗게 잊어버리고,

그렇게 열흘을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문득, 내 무기력증의 원인 중 하나가 "멈춰버린 시계"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계가 멈춰있는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내 생활은 불규칙의 연속이었다.

밤 12시 땡 하면, 신데렐라가 마법에 걸린듯 어김없이 잠이 들고,

요란한 알람이 없어도 아침 6시가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던 내 생활이,

새벽 3~4시까지도 잠을 안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졌다.

시계는 내 방 벽에 걸려 있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나로 하여금 시간을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체였는데,

난 그 시스템을 스톱시켜놓고, 내 생활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문득,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무기력증 회복 프로젝트" 수행에 앞서,

내 주변에서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원인들을 찾아보자!

서둘러 카메라를 찾았다.

그리고 나의 눈은 마치 레이더가 작동하듯 집안 구석 구석을 탐색했다.

 

또 하나 나타났다.

2달 전부터 작동하지 않았던 체중계!

난 두 달 동안 체중계에 몸을 싣지 않았다.

체중계 위로 쌓인 뽀얀 먼지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요즘 내 몸엔 살이 착착 붙어 가고 있다.

밤 늦게 귀가해도, 밥을 챙겨 먹을 때가 많다.

몸무게를 잴 수 없으니,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양 난 요즘 그렇게 밤늦게 먹어댄다.

하지만, 지금 난, 내 몸무게를 모른다.

그저, 두달전보다, 2~3kg 불었을 거라고 짐작만 할뿐.

고장난 체중계는 나로 하여금 체중관리를 못하게 했고,

그렇게 불어가는 살은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무기력하게 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죽어 있는 것들!

몇 년째 죽어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생각났다.

냉장고 냉동실!

냉동실 문을 열었더니 역시나 죽어있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냉동실을 꽉꽉 채우고 있는 것들 중엔

몇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상 다른 걸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차 있지만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으면서 늘 한결 같이 하는 생각은

"먹을 게 없네~" 였다.

그러면서도 냉동실에 있는 것들 중 그 무엇하나 쉽게 버리질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

어쩌면 그것 또한 나를 무기력하게 했으리라...

 

베란다에 나가 봤다.

역시...

거기에도 죽어 있는 것이 있다.

지난 가을 까지도 빨간색 예쁜 꽃들을 가득 피우고 있었던 화분 "꽃기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화초들에 무심했던 때가 있었고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화분들은 그렇게 하나둘씩 시들어 갔다.

그걸 보며 화초를 가꾸던 내 마음도 시들해져 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하나 둘씩 죽어가는 것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

 

복도에 나가봤다.

거기에도 죽은 것이 있었다.

지난 8월 이사온 이후 한번도 자물쇠가 풀려본 적이 없는 자전거!

 

 

지난 8월부터이니, 8개월째 자전거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내가 운동을 등한시한 시간이 얼마였는지 답이 나온다.

안장을 뒤덮고 있는 먼지를 보니 기침이 날 것만 같다.

 

 

수확이 크다.

내 주변의 죽어있는 것들을 찾는 작업은

내 무기력함의 원인을 알아내는 작업이었고,

그 원인을 알게 되자,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둘러 마트에 가서 건전지를 사와서 시계에 갈아 끼웠다.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체중계는 생각보다 고장이 잦으니, 아날로그 체중계로 다시 장만해

체중 관리를 좀 해야겠다.

냉장고도 대대적으로 "비우기"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뭔가 맛있는 걸 요리해먹고 싶은 의욕이 생길지도...

이 봄과 어울리는 예쁜 꽃화분도 하나 사야겠다.

날마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내 사랑을 먹고 하루 하루 쑥쑥 크는 화초들을 보면,

도리어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발견할 것 같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운동도 해야지!

언제든 출동 가능하게, 자전거 안장의 먼지부터 닦아냈다.

 

아....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들이 "죽어있음"이 왜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을까?

무기력을 극복할 "자극"을 찾아 떠난 일주일.

난 이 여행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