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사람의 피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키고,
개구리는 모기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킨다.
뱀은 개구리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키고,
사람은 뱀을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킨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 지켜지는 게 아니다.
빛이 어둠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둠이 빛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평화는 우습게도 싸움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갈등과 충돌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p.59)
"바람은 고요하게 서 있는 나무를 왜 흔들까?"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게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나무가 서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p.61)
"소설가 되려면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자유로워질테니까.
새들이 자유로운 것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잖아.
줄에 묶여 있는 연을 보고 하늘을 난다고 말할 수 있겠냐?
직접 경험한 것이어야 말도 할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는 법이다
...
사람들이 좋다고 소리치며 미쳐 날뛰는 곳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이 있거든.
가지 말아야 하지만, 때로는 갈 수밖에 없는 길 같은 거 말이다.
상상력은 도발과 낯설음에서 오는 거다.
상상의 언어는 상상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광기와 상투성을 가로지르는 삶의 행보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도 있거든.
꽁꽁 얼어붙은 겨울 강을 뚜벅뚜벅 걸으면 되는 거 아니냐.
사람들을 가두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허물어 거기서 나온 돌로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콩코드 다리를 만든 프랑스인들의 상상력은
상상력의 극치라 할 수 있지." (p66~p67)
"야비한 사람들을 가리켜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하잖냐.
쥐만 보면 눈 가리고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쌀을 훔치고 병을 옮기는 쥐를 모두들 때려 죽여야 한다고 말할때,
쥐덫을 만들어 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
징그러운 쥐로 '미키마우스'를 만들어 돈을 번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상식보다 더 많은 가치들이 보이는 법이거든.
상식은 인간 세상의 질서일 뿐, 상식 자체가 인간의 길은 아니니까 말이다.
봄에 피어야 마땅한 봄나물이 어찌 신기할 수 있겠냐?
글을 쓸 때는 상식도 중요하지만, 상식을 버리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하늘색 크레파스로 하늘만 칠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무칼을 가지고도 청룡검을 이길 수 있는 무모함이 때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거니까." (p.68)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사랑은 변하는 거니까..." (p.85)
평화의 배후를 만들지 못하고 평화를 종용하는 나는, 나의 독재자였으며
체념은 내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소멸의 어떠한 그림자도 근접할 수 없는 체념의 방어벽은 때때로 나에게 평화를 주기도 했다.
인간은 슬프거나 아프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엔 도무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신앙의 축이 되어버린 사랑이 그랬다.
천 개의 강을 비추는 건 하나의 달빛이었다. (p.96)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한 건 바람개비의 구멍 뚫린 가슴이었다. (p.101)
이성이 눈을 감으면, 악마는 춤을 춘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악마는 시시각각으로 살아 있다.
폭력이 악마고,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악마다.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절대성이 악마고, 어둠을 깔보는 빛이 악마다.
어둠을 반성하지 않는 어둠이 악마다.
악마는 살아 있다.
내 안에, 사람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p.107)
나를 버리지 않고는 한 웅큼의 진실도 얻을 수 없었다.
나 하나만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무의탁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곳과 보육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p.158)
"유진아, 무능한 가장이 제일 힘든 게 뭔 줄 아니?
세상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깔볼때, 가족들도 함께 깔본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 일 아니냐.
아무리 비천한 사람에게도 위로는 필요한 건데 말이다.
잘났든 못났든 아버지들은 코끼리를 등에 업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p.167)
어른들이 숨바꼭질만 제대로 배웠어도 세상은 지금보다 평화로울텐데 말이다.
가위바위보 해서 공평하게 술래 정하면 그만이고.
술래이면서 꼭꼭 숨으라고 당부까지 해주니 좋고,
찾다가 못 찾겠으면 '못 찾겠다 꾀꼬리' 하면 그많이잖아.
혼자만 술래 하는 거 아니니까 유별나게 슬픈 사람도 없을 테고, 유별나게 기쁜 사람도 없을테지.
사람 사는게 어린애들 숨바꼭질만도 못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 아니냐. (p.175)
나무들은 몸 속에 나이테를 만들지만, 사람들은 얼굴에 나이테를 만든다... (p.180)
예술이란 것이 삶을 단순화시키는 작업인데, 넘어지고 부서지는 미궁 속을 혼자 헤매고 나서야 단순함의 갈피를 잡을 수 있거든.
그래서 '그냥 단순함'과 '미궁을 지나온 단순함'은 본질적으로 다른 거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고 아이들은 자기도 그렇게 그릴 수 있다고 큰소리 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거다.
피카소 그림의 단순함은 '미궁을 지나온 단순함'이니까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거지...
유진아, 너도 생각이나 글을 단순화시키는 힘을 길러라. (p.201)
나의 여정도 눈물겨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듬어가는 이 길이 틀린 길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둘지 않고 있습니다.
먼 길을 가야 하니까요.
다 못 간다 해도 그만입니다.
꿈은 씨앗과 꽃의 문제가 아닙니다.
꿈은 흙과, 햇볕과, 비와 바람과, 나비와 벌의 총체성의 문제입니다. (p.213)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는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봐야 한다고 세월이 가르쳐주었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면 태양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관념은 관념일 뿐, 가슴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겠지요.
사랑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겠지요. (p.222)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한 세월이 다른 세월에게 가서 겸손히 눈물짓는 그런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멈출 둣 멈추지 않는 시간의 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222)
끝끝내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끝끝내 진실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가.
진실 또한 대부분 자신이 세운 기준 아닌가.
타자의 부패로 얻은 진실의 반사이익은 또 얼마나 많은가.
때때로 나조차도 속일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아니다.
나를 속이면 개가 되지만, 나를 속일 수 없을 때, 나는 더 사나운 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다.
나는 잘 했다.
나는 이겼다.
때때로 그렇게라도 나는 괜찮고, 나는 잘했고, 나는 이겨야 한다.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은 불안해진다. (p.223)
슬픔보다 기쁨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슬픔은 슬픔을 경계하지만 기쁨은 그쁨을 경계하지 않으니까요...(p.226)
삶은 역설이었다.
역설을 만나고, 역설을 이해하고, 역설을 건너는 일이 삶이었다.
바람이나 봄비가 아니었다.
박토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의 상장은 햇볕이 아니었다.
"아픔도 길이 된다"는 담담한 역설이었다. (p.227)
나를 돌아보게 한 건 언제나 아픔이었다.
아픔은 생의 의지였다.
기쁨이 짧은 웃음을 남겨두고 내 곁을 떠나갈 때도, 아픔은 내게 길을 가르쳐주었다.
아픔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었고, 감사를 가르쳐주었고,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함박눈을 맞으며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겨울은 눈 내리는 밤으로 깊어지고, 생은 눈물의 힘으로 깊어진다.
그렇게....눈물은 힘이 세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