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립니다.
심지어 뼈 속까지 비워야 합니다.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봅니다.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입니다.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돌이켜보면 감옥은 나의 경우, 대학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준 '나의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한 그루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나는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의 일몰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을 읽는 마음이
지성입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킴으로써 완결됩니다.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생을 잇고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생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를테면, '존재'의 윤회가 아니라 '관계'의 윤회입니다.
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 일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ㅔ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달걀을 깨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달걀을 차마 깨트리려는 생각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서슴없이 깨트려 세울 수 있는 사랆의 차이는
단지 발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성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떠나는 것은 낙엽 뿐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잎에게 자리를 내주는 낙엽이 아닌
모든 소멸은 슬픔입니다.
여행은 돌아옴입니다.
자기 자신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일 뿐입니다.
"No money No problem"
"Np problem No spirit"
우리의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며,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다는 모든 시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우리의 무심한 일상을 질타해줄 한줄기 소나기.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비록 불편한 강물이기는 하지만 어딘가를 지향하는 물입니다.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언젠가는 바다를 만나는 물입니다.
물은 빈 곳을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차곡차곡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헤프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신뢰하고
더불어 사랑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자.
나를 잠들지 않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열어가는 창조적 공간.
위용을 자랑하는 개선문은 어디엔가 만들어 놓은 초토(焦土)를 보여줍니다.
개선장군은 모름지기 상례(喪禮)로 맞이해야 한다는 노자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네 손이 따뜻하면 내 손이 차고
내 손이 따뜻하면 네 손이 차다.
우리 서로 손 맞잡을 때,
체온도 따뜻한 손에서 찬 손으로 옮아갑니다.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그 속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깁니다.
환희와 비탄,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입니다.
이성과 가슴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이야기하다가
가슴이 먼저라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곳은 심장이 아니라 두뇌라는 사실을 들어
그것을 비웃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오만이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이성이란 한갓 땅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인 것을,
그 흙가슴을 떠나면 뿌리가 뽑힌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상은 실천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된 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입니다.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가장 강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사람이 커진다.
사람의 눈동자는 95퍼센트가 흑백을 인식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색을 인식하는 부분은 불과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