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는 아기를 업고, 양손에는 물건을 들고, 머리에는 임을 이고,

그리고 치맛자락에 아이를 달고 걸어가는 시골 아주머니를 한동안 뒤따라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의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에다 아기까지 업고 있는 아주머니의 고달픔도 물론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머리 위의 임이었습니다.

등에 업힌 아기는 띠로 동였고,

양손의 물건은 손으로 쥐고 있어서 땅에 떨어질 염려는 없었습니다만

머리에 올려 놓은 임은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비뚜름하게 머리에 얹혀서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떨어질 듯 흔들리는 임은

어린 나를 내내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어린 아이였던 내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소망의 최고치였습니다.

나는 그 뒤 훨씬 철이 들고 난 후에도 가끔 '또 하나의 손' 데 대하여 생각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3개의 손, 4개의 손, 수많은 손을 가질 수는 없을까.

짐이 여러 개일 때나 일손이 달릴 때면 자주 그런 상상을 하였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엔 찬물 빨래를 할 때에도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릴 때의 간절했던 '또 하나의 손'이

짐을 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다정한 '악수'이기를 바랍니다.

 

=신영복님의 <처음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