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40분에 출발하는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했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공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제주공항에 안개가 심해 제주행 비행기는 출발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 안돼!!
모처럼 큰 마음 먹고 떠나는 제주여행이 출발 전부터 제동이 걸렸다.
비행 스케줄을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빨간색 "결항"표시가 겁도 없이 마구 뜬다.
제주....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주는 하늘이 허락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1시간 30분 정도 기다리니 항공사마다 수속을 재개한다.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1시간 늦춰져 11시 40분에 출발한단다.
2시간 늦춰지면 어떻고, 3시간 늦춰지면 어때!
제발 나를 제주도로 데려가기만 해다오!!
비행기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이륙을 했고,
드디어!!
나는야~ 제주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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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제12탄- 제주 다랑쉬오름
"하늘이 허락해야 갈 수 있는 곳!" |
제주 공항의 안개가 다시 심해져서 내가 탄 이 비행기도 다시 회항하는 건 아닐까...
제주 땅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여전히 긴장모드다.
그런데, 하늘 위로 올라가니 구름 위론 파~란 하늘이 숨어 있다.
푸른 하늘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아래로 펼쳐져 있는 구름 바다도, 내내 움츠러든 내 마음을 토닥토닥 펴준다.
40분 정도 갔을까... 비행기에선 제주 공항에 거의 다 왔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제주에 다다를수록 점점 무겁게 내려 앉는 하늘... 다시 불안해진다.
그 때 구름 너머로 우뚝 솟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한라산이다.
구름을 뚫고 올라오다니!!
가히 제주에서 제일 높은 명산다운 기개다.
다행히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을 해주었고,
나는 꿈에 그리던 제주에 한라산처럼우뚝 섰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첫 일정으로 잡은 곳은
제주 공항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다랑쉬 오름!"
서른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로 내가 서둘러 답사해야 할 곳이다.
"오름"은 기생화산을 일컫는 말이다.
그 오름이 제주에는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저건 무슨 오름일까? 저 오름은 이름이 뭘까?
궁금한 건 많은데 오름에 대한 이정표나 안내판이 인색하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찾아가긴 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오름이 "다랑쉬 오름"이라는 확신이 없다.
다만 주변의 다른 오름보다는 크고 높아 다랑쉬 오름이라 믿고 싶은 마음 뿐...
다랑쉬 오름에 오르는 등산로는 딱 하나라는데, 그 등산로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길 따라 가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앗! 이정표다!!
풀숲 사이로 파묻혀 있는 이정표를 어렵게 발견했다.
총 4.4km의 순환로가 이어져 있나본데...
눈을 씻고 살펴봐도 가장 중요한 "오름"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가뜩이나 제주공항의 안개때문에 도착시간이 늦어져 마음이 급한데,
기껏 찾은 탐방안내소에서 "여기는 다랑쉬 오름이 아닙니다~" 라고 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긴장모드로 보내야 할 운명인가보다.
그렇게 한 20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발견한 반가운 이름!
"다! 랑! 쉬! 오! 름!"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오지의 어느 땅에서 눈에 익은 한글을 발견해도 이만큼 기쁠까...
반갑다! 다랑쉬오름아~
먼저 다랑쉬 오름의 자기 소개를 묵묵히 들어줬다.
혹자는 "하고 많은 오름 중 왜 하필 다랑쉬 오름에 가려 하는지" 묻기도 했는데,
동부로는 "다랑쉬 오름", 서부로는 "노꼬메오름"이 제주도 오름 랜드마크 라고 하니,
정말 제대로 잘 찾아왔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제주도에 분포하는 360여개의 오름 중 화산지형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대표오름이라니,
다랑쉬 오름에 왔다 가는 것만으로도 제주도 오름 전반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으쓱해진다.
올라가는 길, 경사가 꽤 가파르다.
등산객을 위해 설치해 놓은 쇠봉과 밧줄에 의지하면서도
오롯이 자연만 카메라 속에 담고 싶은 마음엔 그것들이 거슬렸다.
내가 "간사"한 것인지, 밧줄과 쇠봉이 "필요악"인것인지...
미끄러지지 말라고 바닥은 폐타이어 고무를 깔아놨다.
역시나 나는 편하지만, 고무에 눌려있는 다랑쉬 오름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그 인공피조물의 짓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연은 역시 경이롭다.
그런데 분명 이곳 다랑쉬 오름에는 처음 오는 것인데,
이글이 자꾸만 눈에 익다.
맞다!
나를 이곳까지 이끈 책!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의 표지 사진이 이곳 다랑쉬 오름이다.
한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답사여행을 미뤘었는데,
이 시점에서,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때의 그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가라...하는 것 같다.
그렇게 책 표지에 나와있는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
엉뚱한 곳에서 초심을 찾게 되다니...
역시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고 볼 일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해발 382m, 40분 여의 오름길이었다.
일단, 나를 유혹하는 평상에 고단한 몸을 맡겨본다.
평상에 앉으니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 눈치없는 안개는 여기까지 쫓아와 있다.
다랑쉬 오름의 정상에 오르면 주변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말미오름, 성산일출봉, 소머리오름, 용눈이오름, 동거미오름, 높은오름, 돌오름, 알밤오름 등을 볼 수 있다는데....
하나도 안 보인다...ㅜㅜ
날씨가 화창했더라면, 하늘이 파랬더라면, 저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때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작은 오름 하나!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볼 정도니, 그 규모는 작고 아담하며, 동글동글한게 귀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름이 <아끈다랑쉬오름>이라...
아끈은 제주말로 "둘째,버금"의 뜻이라고 하는데,
<아끈다랑쉬오름>은 <작은다랑쉬오름>으로도 불린단다.
책속 사진을 찾아 인증샷 한컷! ^^
분화구 깊이는 115m로 꽤 깊은데, 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깊이와 비슷하다고 하니,
오름으로서도 꽤 큰 규모임을 짐작케 한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한자로는 "월랑봉" 이라 쓴단다.
날씨가 좋다면 해가 지는 것도, 달이 뜨는 것도 이곳에 앉아 지켜보고 싶지만,
오늘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안개를 생각하면 괜한 욕심은 금물이다.
분화구 둘레로 산책길이 펼쳐져 있다.
분화구 둘레만 1.5km...
무더위를 떠안고 긴 산책로를 돌기엔 꽤난 강한 의지와 정신력이 필요할 듯!
그래서 분화구를 한바퀴 돌겠다는 욕심도 살포시 접어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오름에 오르지 않고는 제주를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때 뜨겁게 타올랐다가, 가장 뜨거웠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오름...
산정상 대신 움푹 패인 분화구를 품고 있는 "오름"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에 올랐다는 자만심을 잊게 한다.
제주의 중심엔 한라산이 있지만,
제주의 진짜 주인은 이 360여개의 오름들일지도 모르겠다.
오름은 가장 제주다운 모습이요, 제주만이 품고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하니,
제주를 여행할 때마다 오름 하나씩은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제주도에 360여번을 와야 할 이유가 만들어졌다.
다음 여행에서도 난 제주의 360여개 오름 중 하나에 올라 있을 것이다.
비록 제주의 물안개가 또다시 나를 쫓아다닐지라도...
행복하다....
2010년 7월,
글&사진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