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은...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렇게 지겹도록 걷는 길이다.

그러다 다리에 어느 정도 부하가 걸릴 무렵이면

쉬어갈 곳을 찾게 마련.

처음에는 비교적 깨끗하고 편안한 공간을 골라서 앉게 되지만

피로도가 극에 달하면

그냥 주저앉는 곳이 쉴곳이고 그냥 쓰러지는 곳이 휴식터다.

 

올레 13코스...

제주의 대부분 올레가 바다를 품고 가지만 여기만큼은 예외다.

대부분이 중산간의 들길이고 숲길이다.

특전사 숲길, 쪼른 숲길, 고목나무 숲길, 고사리 숲길, 고망 숲길, 저지 오름...

온통 숲길을 헤매고 돌다 그 지루함이 서서히 머리끝으로 오르고,

 결국은, 숲길이란 숲길은 죄다 여기 모았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늘어 놓을 무렵...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이른바 의자마을에 당도한다.

 

 

350여 년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대장간이 시작된 곳으로,

대장간의 주 재료인 점토를 파낸 아홉개의 구덩이에 물이 고여

샘(굿: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진 <아홉굿 마을>이다.

 

 

적당히 무게 중심도 낮추고 심신의 휴식이 필요한 시간,

그 절묘한 위치에 그야말로 가장 편안한 형태로 맞이한 조형물!

나그네의 취향과 정서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마음껏 쉬어가라고 한다.

 

 

얼마든지 쉬어가도 좋은 마을...

아니, 꼭 쉬었다 가고 싶게 만드는 마을...

그곳엔 천개의 의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아홉굿마을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의자!

일반 건물 3층 높이에 해당한다.

의자 속엔 또 다른 의자들이 있다.

동서남북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듯...

 

이 곳의 의자들은 할 말이 많은 듯 하다.

저마다의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끌벅적한데...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본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빈의자니 마음껏 앉으란다. 

 

 

앉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을 끌어다 앉히는 묘한 힘까지 있다.

 

 

분명히 처음 온 곳인데,

언젠가 한번쯤 와본듯한 친근함과 편안함까지 준다.

 

 

내가 앉아서 쉬고 있는데,

"여기 제 의자인데요." 하고 누군가 나타나도 걱정 없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의자가 대신 해줄테니...

 

 

한껏 인심을 부리는듯 하더니,

"다 쉬었으면 얼른 일어나라"고,

이곳에 퍼져 있지 말고 가던 길을 부지런히 계속 가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한라산 자락의 오지마을인 '낙천리' 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이 의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마을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도입한 '의자마을' 아이템!

'편안함'을 마을 이미지로 남기기 위해 '의자' 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의자 1000개를 만들었는데,

의자 설치를 끝낸 후 포털사이트를 통해 1000개의 의자 하나하나의 이름을 공모했다고 한다.

그래서 '편안함'에 '재미남'까지 더한 의자마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의자 하나하나에 붙어 있는 이름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만히 앉아서 쉬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의자들을 구경하게 만든다.

 

 

 

인형같은 외모의 배우 한가인이 '한가한 사람'으로 변모했다. ^^

 

각종 패러디를 동원한 의자 이름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천개의 의자는 이렇게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

어떤 의자는 다리 아픈 나그네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어떤 의자는 그 기발한 패러디에 웃음짓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의자는 예쁜 이름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이름만큼이나 의자모양도 다양한데...

 

 

비올 땐 비를 피할 수 있는 입체적인 의자도 있고,

  

 

앉으면 스르르 잠들 것 같은 흔들흔들~ 흔들의자도 있다.

  

 

쉴멍~ 놀멍~ 먹으멍~ 걸으멍~

<인물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의 저자 정진홍씨의 의자가 반가웠다.

 

 

 

이곳에 앉아 하늘을 보며 함께 꿈꿔보자했던 그 분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그 꿈을 계속 꾸고 계실지...

 

 

촘촘하게 붙어 있는 이 의자들에는 60간지가 적혀 있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간지를 찾아 앉아보는 재미가 있지만,

자칫 낯선 이들에게 내 나이를 들킬 위험도 감수해야 할 듯.

 

  

 

  

 

 

 

다양한 의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지만,

앉으면서 가장 기분좋았던 의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의자! 귀빈석!! ^^

이곳을 지나며 앉아서 쉬는 이들 중에 가장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가장 자리경쟁이 치열할 것 같은 의자, "로또 대박!"

낙천리 아홉굿 마을의 좋은 기운을 받아가는 듯한 기분!! ^^

의자의 이름도 좋지만,

의자 바닥에 쉼표가 새겨져 있어,

확실히 편안함은 두배가 되는 것 같다.

  

 

 

몸만 쉬어도 과객은 얼마든지 충분히 행복하다.

더불어 눈과 마음까지 같이 쉴 수 있는,

낙천리 아홉굿 마을은 진한 감동이다.

 

순전히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배려하기 위한 의미 심장한 공간에

의자를 앉힌 것은,

그래서 의자들에게 발칙하고도 깜찍한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은

 참으로 기특한 발상이다.

그래서 여기,

의자 마을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갈채를 받아도 좋다.

 

 

글 & 사진

한 번 앉으면 잘 안 일어나,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김작가

 

 

 

이 글이 블로그 메인에 올랐네요~^^

(2012.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