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만 앙상한 나무가지

퀭하니 비어버린 관중석

그리고

철지난 바닷가 백사장

 

그들의 뒤안길에는

푸르름이 무성했던 지난 여름 이야기와

열정과 갈채를 쏟아냈던 관객들의 환호성과

그리고 살을 부대끼며 삼복을 태우던 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보라

전설처럼 누운 지난 이야기들의 발자국들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하나

그들이 저기 왔었고 여기를 스쳐 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만들고 갔다는 사실

 

 

 

 

지나간 발자국은 이미

과거가 되고 전설이 되었지만

지금 현재도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저 손에 든 신발을 다시 신을 무렵이면

저기 외길로 난 발자국도 화석이 되겠지

 

 

 

 

철지난 바닷가에는

과거와 전설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쓰고 바닷물로 그린 동화도 있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가을과 가을바다의 이야기

모래와 바람의 이야기

 

 

 

 

밀려오는 파도의 이야기

철든 이들에게는 세월로 보이기도 할 테고

철들지 않은 이들에게는 내일로 보낼 추억일수도

 

 

 

 

그들은 끊임없이 쌓는다

그들만의 완성도 높은 미래의 이야기들

그들은 끊임없이 허문다

그들만의 미완의 지난 여름 이야기들

 

 

 

 

누나야 우리 강변 살자

앞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뜰에는 가랑잎의 바스락거림

그들은 이 가을 바다의 엄연한 주인이다

 

 

 

 

아무리 세찬 파도가 그들을 몰아부쳐도

그들은 뭍같이 꿈쩍도 없다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로

굳건히 쌓아올린 성역이 있기 때문이다

 

 

 

 

누나야

우리 그냥 이대로 굳어버릴까

누나는 모르지

눈을 감고 있어도 예쁜 누나의 얼굴이 보인다는 사실을

 

 

 

 

세상의 모든 모래를 다 모아서

우리만의 아름다운 성을 만들자

그리하여 오늘의 이야기를 먼 훗날까지 보듬고 가자

그래서 먼 훗날

다시 찾아와도 우리의 성을 온전히 찾을 수 있도록

 

 

 

 

아이야 기억하렴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바다와 가을과 그리고 모래로 쓴

동화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렇게

가을 바다에 세월이 간다

그렇게

가을 바다에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고

누구나 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도 좋다

가을 바다의 이야기는 주인이 없으므로

가을 바다는 누구나 주인이므로

 

 

 

 

우리에게 시간은 언제나 충분했었다

단지 그때는 몰랐을 뿐이다

우리에게 사랑도 항상 충분했었다

단지 그때는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성을 다해 찾아야 한다

지금도 충분한 시간이기에

지금도 충분한 사랑이기에

 

그래서 훗날 다시

 이 충분했던 것들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아무튼 가을이다.

또 한해가

파도가 그렇게 밀려왔듯

또 그렇게 밀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