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가장 깨끗한 나라로 손꼽히는

스위스의 부의 원천은

이른바 남의 나라에서 유입된 "검은돈"이다.

 

마약과 범죄로 얼룩진 검은 돈,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테이블 밑으로 거둬들인 회색돈,

그러한 남의 나라 검은 돈들이 모여 오늘날의 스위스가 지탱을 하는 것이다.

 

여기 하밀(哈密)도 검은 돈으로 일취월장의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검은 돈이지만 그 원형질은 엄연히 다르다.

석유와 석탄 그리고 희토류(稀土類) 금속의 광대한 보물창고.

첨단 산업 대국 일본조차 하밀을 포함한 중국 북서 지방에서 생산되는

희토류 금속에 자기네들 미래 산업의 목을 매고 있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하밀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대륙의 도시,

그 도시를 염탐해 보기 전에....

가볍게 꾸욱~!

 

 

 

 

하밀에서 제일 높은 주상복합상가!

윗쪽은 아파트, 아래는 호텔!

이 <화우대주점>이 사막에서 지친 우리네 육신을 누일 이틀 동안의 편안한 공간.

 

하밀시천산 산맥으로 인해 남북으로 양분되고

면적은 우리 남한 면적의 약 1.5배에 이른다.

아무튼 중국의 도시들은 부피와 면적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9시쯤 호텔을 나섰는데도 하밀 시내엔 차가 꽤 많다.

해가 늦게 지는 관계로 정규 출근 시간이 10시여서 러시아워 시간이기도 했지만,

작년까지도 안 막혔는데, 1년 사이에 차가 몇 배로 늘어났다고...

하밀은 "석유"가 생산되는 이른바 산유도시라서 기름값이 좀 싼가 했더니,

절대 아니란다.

석유가 나든 안 나든, 기름값은 중국 전체가 통일 가격을 적용한다고...

역시 통큰 사회주의 국가 답게 한대륙 한덩어리 정책을 취하고 있단다..

 

 

오늘의 첫 일정은 하밀 박물관!

하밀시 천산동로에 위치하고 1988년에 건립되어

유물 수집은 현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초보 단계의 박물관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한대(漢代)에 이르는 약 1,2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모형지도로도 알수 있듯, 하밀천산이 시작되는 곳,

천산산맥 남쪽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하밀은

특히 현대 첨단 산업의 필수 자원인'희토류 금속'의 매장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막 한가운데를 파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 희토류금속이라고...

실례로 광동성에서 희토류 채취에 500억 위엔을 투자했는데,

10배의 수익성이 나서 5000억 위엔을 가져갔다고 한다.

계속 느끼는 거지만 풍부한 자원!

참 부럽다.

 

 

하미의 대표 과일 하미과(哈密瓜, Hami-melon)도 박물관의 한켠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하미과의 당도는 세계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과일을 밤에 먹고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아침에 입술이 붙어 버린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

 

멜론의 일종으로, 하밀 지방에서 나는 품종을 하미과라 이름 붙인 것!

중국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대표과일이다.

심지어 이 화미과를 먹기위해 이 무렵 하밀 여행을 한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보통 1.5kg~2kg 정도 하는데 큰 건 17kg짜리도 있다고 한다.

하나당 가격은 5위엔 안팎인데 (한국돈으로 700~800원)

비싼 건 100위엔~200위엔 하는 것도 있다고! (한국돈으로 18000원~36000원)

 

품질이 좋은 건 정부에서 나와 도장을 찍어놓는다고 한다.

이른바 공물? 입도선매?

 

 

이건 하밀 대추(哈密棗)인데 하밀의 대추는 크기가 주먹만하다.

대추는 음료와 술로 만들어서 많이 먹는다고.

하밀시는 해발고도가 낮은 분지형 구조라서 여름의 최고 기온은 45ºC까지 오르고

겨울엔 영하 30ºC까지 내려가는 극단적인 기후 분포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과일의 당도는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중국 국보급 유물

사슴이 서있는 구리거울, 기원전 3세기경(추정)에 만들어 졌다고.

중국 최고(最古)의 휴대용 거울이란다.

 

 

하밀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미이라!

살아계실 때의 신장이 180cm, 남성.

무릎을 구부리고 있는 까닭은 사후에 근육이 수축되어서.

 

이집트 등지에서 발견되는 미이라와는 달리 이 곳의 미이라는 죄다

건조한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형성된 자연산 미이라라는...

 

 

천여년 전에 입었던 옷이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다니 대단!!

그런데 디자인이나 색감이 대단히 익숙하다.

어쩌면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킬트에 사용된 스코티시 타탄체크(Tartan plaid)

무늬의 최초 발상지가 여기 하밀이었는지도...

현대판 깅햄(Gingham) 디자인이나 타탄 무늬에 비해

조금도 세련미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고대 섬유 발달사적인 측면에서 보다 학문적인 접근이 필요한 유물이다.

 

 

그 옛날, 어떻게 돌에다가 이런 생동감있는 그림을 남길 생각을 했을까.

청동기 시대, 그 시대를 살다간 인간들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했을 동물들의 군상들.

너무나 고마와서 그들의 위령비라도 세워준 것일까...

 

 

하밀박물관 바로 옆엔 회왕릉이 있다.

걸어서 5분 거리!

회족(回族)의 왕릉이 있는 곳인데,

재미있는 것은 청나라 시대의 건물과 이슬람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것!

 

하미는 청왕조 시절 청나라의 속국이었다.

청나라 건륭제 시절,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자치권을 인정받아서

200여년을 이어 왔으나 청의 몰락과 함께 하미왕국도 사라지고

이제는 이 건물과 왕릉만 남아서 그 영화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청왕조 시대의 건물은 지붕은 만주족과 몽고족의 모자를 본따서 지었으며

아랫부분은 그들의 가옥인 게르(파오)를 모방했다.

주변에는 국적 잃은 벤자민과 백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입구에는 위구르어로 이렇게 적혀있다.

"알라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신이다"

5000여명이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하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집회를 한다고.

 

 

중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이 사는데,

그 중에서 10개의 민족이 이슬람교를 받들고

그 중에서 70%의 인구가 이 곳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모여 있다고.

 

 

실내는 108개의 기둥으로 형성되어 있고,

우상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슬람교의 특징에 따라

어떠한 인물상이나 불상도 없으며 단지 다채로운 채색의 무늬만

질서 정연하게 온 벽을 휘감고 있을 뿐이다.

 

하밀왕국 초기인 1668년에 신축되어 거듭된 중창과 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건물은 못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지었으며

건물의 중앙에는 사방을 튀어놓아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여기가 중국인지 이슬람 국가인지...

아무튼 글인지 라면 부스러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내의 면적이 2,280㎡이고 수용 인원이 5,000명이라는 것은 짐작으로...

 

중국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즉, 부처가 되었건 알라가 되었건 예수가 되었건

모든 종교 집회의 장소에는 "사(寺)"를 붙인다.

 

이 곳의 이름은 대청진사(大淸眞寺)이다.

 

 

 왕릉이 있는 곳!

하밀은 서역으로 가는 최후의 관문이다.

1697년 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인 1930년 까지 존재했던 하밀왕국,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마치 텔레비젼의 전원을 빼듯 허무하게 소멸해버린 하미왕국,

그 시절의 왕과 왕족들이 고스란히 이 곳에 있다.

 

 

이런 모습으로...

이런 호사스러운 이불을 덮고 그 시절의 영상을 되감고 있다.

 

 

 

 

233년간 9명의 왕, 감히 넘지 못한 아홉수의 징크스를 결국 깨지 못하고...

아홉 왕들의 대부분의 가족이 여기에 영면중이다.

 

그러나,

미처 왕관을 쓰지 못했던 그들의 후손들은 아직도 근처를 서성인다고.

몰락한 왕국의 왕족으로 산다는 것.

그 이름 뿐인 허상을 좇으며 사는 그들의 감회는 과연 어떨까.

 

 

당신들만 영화를 잔뜩 누리고 이렇듯 편안히 잠들어 있는

무책임한 선조들을 당장 불러내어 왕국을 끝까지 대물림하지 못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지는 않을까.

아니면 중국 정부를 상대로 왕조 복위를 위한 뒤늦은 독립운동을 꿈꾸지는 않을까.

이런데 오면 나그네는 생각도 많아진다.

 

 

귀족과 평민들의 묘지,

원래 이슬람교에서는 화장이라고는 없다.

세상에 올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땅 속에 묻어야만 내세에서도

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서 영화를 누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서 미련 없이 딱 2년만 살다 가신 분!!

묘비명에는 뭐라고 썼는지 많이 궁금하다.

글을 모른다는 것...문맹이라는 것...

이런 기분이구나...

세종 대왕이 우매한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신 그 답답함을 비로소 느낀다.

 

 

하미 회왕 3세, 에민호자( 額敏和卓, 재위1711~1740),

 

중국 3대 불가사의에 속한다는 천산의 지하수로인 케레즈 운하를 개설하여

인근 사막을 오아시스로 바꾸고 백성을 위한 위민정치를 펼친 왕이며,

또한 청나라에 화밀왕국을 송두리째 들어 바친 공로로

청 황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왕이기도.

 

그림속에서는 이렇듯 늠름한 왕자(王者)의 모습이지만

그도 이미 과거의 사람으로 쇠락하여

지금은  여기 회왕릉의 좁고 어두운 공간의 일부 만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산자의 모습과 고인이 된 그 시절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둘러보고

 많은 생각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에 이고 나오는데,

넋을 놓고 지나가는 어르신 한 분을 쳐다보고 가이드가 하는 말,

 

저분은...

"하미왕국의 왕세손!" 

 

전직 왕자님이시란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왕관을 쓰지는 못하고

불행히도 구경만 하신 분이란다.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왕자...

저분의 속마음은 과연 어떨까,

말이라도 통한다면 막걸리 잔이라도 앞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망국의 왕자님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은데...

 

 

중국 대륙에서 명멸해간 왕국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불과 80여년 전에 눈앞에서 눈 빤히 뜬채 분실한 왕국의 주인공은...

한 때 자신의 안마당을 태연히 활보하는 이방의 나그네를 바라보는 그 심정은...

언제나 내 것이었던 분실물을 눈 앞에 두고도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그 분통함은...

 

괜히 나그네의 머리속이 아려온다.

그 시절이 아까워서 어떻게 매일밤 잠을 이룰까...

 

꽤 오랜 시간을 정체 모를 아리송한 왕국의 공주로 살아온 나그네가

이렇게 실제로 잃어버린 왕국의 왕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생각이 많은 철부지 나그네는 그래서 배도 자주 고프다.

 

 

언제나 목 놓아 기다리는 점심 시간!

날마다 비슷한 반찬에 그만 질릴 법도 한데,

멀리 집나온 나그네들의 식욕은 지칠 줄도 모른다.

 

여행이 반복되다보면

나그네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식사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그네들은 현지어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른바 여행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반찬만 깔아놓고 밥을 늦게 갖고 오는 종업원에게는 "닛반 (밥)"을 외치고

특별히 맛있는 반찬은 퀭하니 비어버린 접시를 하늘 높이 들고

 

"짜이라이<再來>"를 목청껏 외친다.

리필이 되든 안되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다 객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허기진 나그네들의 필살의 몸부림이다.

 

 

다음에 갈 곳을 위한 에너지 완벽하게 장전 완료!

이제 빠리쿤 초원으로 향한다.

 

40도가 넘는 열사의 사막에서 겨울용 바람 막이를 입어야 비로소 갈 수 있다는 곳,

중국이라는 나라의 다양성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무서운 나라, 다채로운 나라,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더하는 나라...

 

벌써 실크로드 여정이 절반이나 지나갔다.

아니다,

아직 여정이 반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