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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환 칼럼> 철학의 뜰에서 命理愛 물들다⑤                 


봄, 그렇게도 몽글몽글 흐드러지게 피어 나의 마음을설레게 했던 벚꽃은 어느새 초록을 지나 실로 만추의 계절과 마주한다. 언제부턴가 경기 침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서민들은 겨우살이 걱정에 한숨 섞인 숨소리로 하소연하기 바쁘고 또, 길거리에는 거친 한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지하철역을 헤매는 노숙자들로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실제 모두가 다 어렵던 지난 60·70년대 시절,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그때, 나를 비롯해 밥을 굶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노재환 헤럴드경제 G밸리 논설위원

[헤럴드 지밸리 = 노재환 논설위원 기자]“만추, 바람, 길, 사람…그리고 느낌표”

봄, 그렇게도 몽글몽글 흐드러지게 피어 나의 마음을설레게 했던 벚꽃은 어느새 초록을 지나 실로 만추의 계절과 마주한다. 떨어지는 벗잎을 보며, 책 속에 꽂아 본다. 나처럼 꽂아둘 것을 생각하며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빗자루를 쥔 차가운 손으로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잊고 지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차가운 세상이다.

지난 주말, 지인을 만나기 위해 충무로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면서 전에도 만났던 몸이 다소 불편한 어르신이 계단 한 복판을 서성이며, 껌 몇 통을 들고 차가운 손과 떨리는 목소리로 구걸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런 풍경은 어느 역이나 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면 사정은 마찬가지리라.

언제부턴가 경기 침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서민들은 겨우살이 걱정에 한숨 섞인 숨소리로 하소연하기 바쁘고 또, 길거리에는 거친 한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지하철역을 헤매는 노숙자들로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분주한 역 전 앞에는 저마다 혹한의 추운 날씨에 두꺼운 겉옷을 움츠리며 따뜻한 곳으로 바쁜 행보가 교차되고 해질녘 잠잠해질 때쯤이면 비로소 노숙자들의 공간으로 채워진다.

그들이 생각하는 내일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 그런 생각조차도 사치일지 모른다. 아니면 아예 없을 것이다. 단지 지금 이 순간 한 끼라도 때 울 수 있을 지 고민하는 무언의 서글픔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대답 없는 시간이 흐른 지금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고르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럽다.

실제 모두가 다 어렵던 지난 60·70년대 시절,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그때, 나를 비롯해 밥을 굶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어른들이 배를 곪을 판인데, 노동력 없고, 부모의 보살핌이 절실했던 아이들이 배를 채우기는 힘든 일. 이 시절 특히 학교에서 점심시간이면 곯은 배를 움켜쥐며 누가 볼 새라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당시 미군 원조품 중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해 보급되는 우유가 있었다. 찌면 딱딱하니 과자처럼 되는 그 것을 받아먹고 변소를 들락거렸다. 기름기 없는 뱃속에서 그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랄 것이 없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이런 아이들에게 붙여지는 호칭도 딱히 없었다.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결식아동이라 부른다. 어찌 보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한 단면리라.

그렇게 배고픈 아이들이 도시락대신 그 상품권으로 인스턴트류의 먹거리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받게 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또 불량도시락을 받아 먹고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편지를 쓰고 있는 상처 난 아이들의 동심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명분만 요란하고 실행이 안 따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피가 통하고 온기가 흐르는 마음이고 정성이다. 생각과 실행이 같이 움직여야 할 것이다. '나는 배부르다'며 싸온 도시락을 배 곪는 어린 제자들에게 주던 그 시절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처럼 감싸고 보듬어줘야 한다.

오늘따라 역 앞 노숙인 쉼터가 작지만 참 따뜻해 보인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고 한다. 결식아동과 노숙자 등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채 먹을 것이 넘쳐나도 노골적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연민과 관심을 보이는 이상한 나라의 국민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어렵지만 작은 부분을 내놓는 이들의 손길이 이어지는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fanta73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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