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권리침해신고로 제 글이 임시 삭제됐습니다. 누구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했는지,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삭제된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수만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비단 개인적인 억울함이나 삭제 조치의 명분과 절차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고 바른 방향으로 가게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원문에서 실명을 삭제하고 글을 다시 등록해봅니다.   

 


 

 

 

 

 

중앙일보를 떠나며...


  오늘 에 저와 관련한 기사가 났더군요. 해당 기자가 나름대로 저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썼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그러나 제 요청으로 기사화를 늦출 것처럼 답했던 기자가, 예고 없이 기사화를 한 대목은 납득하기가 어렵더군요. 기자란 그런 것인지... 본의 아니게 취재 대상이 되고 보니,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해당 기자는 지난 8월26일경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불쑥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경위에 대해 제가 아는 대로 얘기하면서도, 아직 기사화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못을 박아뒀습니다.

 

  타의에 의해 공개됐지만, 중앙일보를 떠난 사실이 공론화 된 이상 그간의 경위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관련 사실이 기사화 된다든지 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8월20일 오후 3시경, 그러니까 제가 중앙일보로 옮겨온 지 꼭 2년째 되는 날 소속 부서인 디지털뉴스팀의 에디터가 부르더군요(문화부에 파견 나와 ‘J-스타일’ 지면을 꾸리고 있었지만, 제 소속은 디지털뉴스팀이었습니다). 다음 주 기사 기획안을 써서 막 제출하던 참이었습니다. 에디터가 아무렇지 않은 듯 해고 사실을 통보하더군요. “이여영씨는 조직 논리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기여도 많았는데, 안타깝다. 이여영씨가 했던 행동들을 조직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좀 그렇다. 편집국장이 막아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돼서 유감이다.”

 

  사실 이 결정은 소수가 주도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제가 파견 나가 있는 문화부의 에디터와 데스크조차도 저에 대한 통보 직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문화부 데스크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한다고 서툰 농담을 건넸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럽다. 별 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나보다. 당장 일손이 없는데, 다음 주 기사까지라도 쓰고 가면 안 되겠냐. 그건 너무 가혹하겠지. 부탁인데 조선일보로 가지는 말아 줬으면 한다.”  

 

  당장 든 생각은 실망감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사가 구성원의 생각 하나 수용 못하나 하는 감정이었습니다. 내 처지를 한탄하기에 앞서 참 중앙일보가 안 됐구나 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이 통보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를 복기해보니 이를 예고하는 듯한 징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블로그 글’(5월29일자 글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건 이후 저에 대한 압박이 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편집국장은 한 때 블로그로 인한 파문을 잊고 일에만 매진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지만, 어떤 회식 자리에서는 (블로그 글을 암시하며) 걸리는 게 하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습니다. 중앙일보를 잘 안다는 회사 바깥 선배는 회사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며 대안을 마련하라는 충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나라의 대 언론사가 이런 글 하나 수용하지 못할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회사를 옮길 기회가 생겼을 때조차 중앙일보에서 보냈던 시기의 열정을 떠올리며 주저했습니다. 그런 저 자신에 대한 책망이 실망감에 뒤이어 떠올랐습니다. 

 

  에디터의 통보 직후 제 기자 이메일 계정이 폐쇄됐습니다. 퇴직 처리가 되기도 전인데,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들더군요. 제가 속이 좁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살짝 불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날 저녁에는 제가 일을 하는 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은 선배 몇 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다들 안타깝다는 입장이었지만, 저는 동정을 구하지도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일하는 동안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제 인사만 성실히 건넸습니다. 그 후로도 이틀 동안 몇몇 분이 문자로 안타까움도 표현해주셨지만 직접 통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제 생각부터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여럿이 어울려 여러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 자신이 더 혼란스러워지고 괜한 풍문만 퍼질까 두려워서였습니다.

 

  해고 통보 이틀 후, 그것도 밤 10시경의 일입니다. 뒤척이며 잠을 청하려는데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퇴직금은 내주 금요일경 지급하겠습니다.” 이쯤 되자 정말 불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퇴출을 통보하던 에디터에게 왜 사전에 아무런 공식 통보가 없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막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만 둘러댔습니다. 그 말의 진의까지도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제 뒤통수를 쳐 옴짝달싹 못하게 하려는 듯 중앙일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온 혐의가 분명해졌습니다.

 

  제가 너무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새로운 선택을 하기에 앞서 중앙일보의 조치가 과연 정당한 것이었나를 한 번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의적인 문제를 떠나 법적으로도 말이죠. 기자 선배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저는 연봉 계약직으로 중앙일보 경력 기자로 옮겨왔습니다. 입사 당시 연봉 계약직을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는 일종의 무기 계약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질적인 정규직에 준하는 자리로 판단했습니다. 회사측에서도 지속적으로 그런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담당 부서 에디터와 데스크 모두 중앙일보 정규직 기자가 아니면 외부에서 경력 기자로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는 얘기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중앙일보로 옮긴 지 1년 후 연봉 협상시에도 담당 에디터는 ‘형식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계약 기간이 한창 지난 9월 중순에야 연봉 계약에 사인하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정규직에 준하는 계약직이라는 것을 회사가 어느 정도 인정한 데서 비롯된 관행이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회사는 제게 해고 사실을 당일이 아니라 적어도 3달 전에는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해고 명분이 부당한 것은 물론 절차 역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 생각이 미치자 해고 사실을 서면으로 통보받아야 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구두로 해고 사실을 통보한 에디터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서면으로 해고 사실을 통지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중앙일보에는 그런 양식이 없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경영지원실 역시 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오히려 해고 통지서의 용도가 뭐냐며 꼬치꼬치 캐묻더군요. 해고 사실을 서류로 통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에디터는 송별회 참석을 종용하더군요. 또 부당 해고와 관련한 제소나 진정을 할 계획인지를 돌려 물었습니다. 이 때쯤은 제가 경영지원실에 제 신분과 관련한 문의를 한 터라 제소나 진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회사에 떠돌았던 모양이더군요.

 

  에 등장한 에디터의 항변도 이상했습니다. 실제로 1년 전쯤 저와 함께 경력 기자로 입사한 기자 한 분이 회사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예를 들면서 저에 대한 해고가 일상적인 재계약 거부 조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기자분이 해고된 후 저와 같은 팀에 있던 기자들은 ‘너희들은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폭언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분의 해고 역시 명분과 절차가 잘못된 부당 해고였을 법한데, 불법도 한 번 하고 나면 적법한 것이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아마 중앙일보 같은 대언론사가 노사 문제와 관련해 노동부나 노동위원회, 심지어 지방법원에 밀리겠느냐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로 어느 노무사 한 분도 회사측이 그렇게 나올 경우 승산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직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는 제소나 진정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만, 솔직히 저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상처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며칠간의 말미를 두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해고 조치는 명분과 절차에서 부당했습니다. 이 점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이 참에 보도를 포함해 제 해고 조치와 관련해 몇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저는 중앙일보의 몇몇 선배들로부터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여전히 그 분들을 존경합니다. 어렵고 곤혹스러운 시기 그 분들이 마음으로 저를 염려해주시고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몇몇 선배분들의 언행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에 대해 근거 없는 뜬소문을 만들어내 저를 공격하기에 바쁩니다. 후배, 그것도 공채 출신도 아닌 후배 하나 자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그런 데 쏟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일 뒤가 캥기는 일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 분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 분들이 촛불집회에 대한 제 블로그 글을 보고 단순히 견해차나 글쓰기 방식에 대해 질책했더라면 저는 그 분들의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그 글을 보고 송필호 사장이나 김수길 편집인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는 투로 일관하면서 글을 내려라, 제목을 바꿔라 하는 주문만 했습니다. 이것이 양심에서 비롯된 글을 쓴 기자 3년차인 후배에게 할 말과 취할 태도란 말입니까?

 

  둘째, 저는 의 보도 가운데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먼저 나서서 저를 잘라야 한다고 했다고 한 부분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제 신분상의 이유로 노조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노조원이라는 자격도 없었고 노조 활동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이해와 기자 개인으로서 제 이해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한 번도 노조를 오해한 적이 없습니다. 그 결과 심정적으로 노조는 내 편이라고 늘 믿었습니다. 저는 기사의 해당 대목이 편집국 내에서 이야기가 떠도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종류의 결별은 아픈 법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딛고 더 성숙해질 수 있기에 결별은 인생의 자산일 수 있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번 중앙일보와의 결별도 그렇게 생각하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를 감추고 조직에 훨씬 더 순응했더라도 중앙일보와의 결별이 이렇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중앙일보와는 어느 정도 추하게 결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결론을 요즘에 와서는 내리게 됐습니다. 현재의 여건 그대로라면 말입니다. 이제 저는 중앙일보에서의 열정과 노력을 기억하며 기자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유수한 전통 위에 혁신의 필요성도 가끔씩 되새기면서 더욱 성장하길 바라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혜와 용기를 가진 존경할 만한 선배들이 건승하길 더욱 더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