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맛 기행은 반드시 2일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 당일치기는 맛의 본 고장 전주에 대한 모독이다. 우연한 방문객으로 이 곳을 찾은 우리 일행이 정작 그런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대부분 험한 직종에 종사하는 우리 일행으로서는 다음 날인 일요일 밤 전까지는 상경해야 했다. 어떤 맛을 선택하고, 어떤 맛을 생략할 것인가? 후보는 둘로 압축됐다. 막걸리 골목이냐, 가맥이냐? 힘겨운 결정이었다. 둘 다 반드시 경험하고 싶은 맛들이었다. 다만 지난 번 전주를 스쳐갈 때 막걸리는 경험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삼천동 막걸리 골목은 아니었으되 그 곳을 빼다 박은 서신동 막걸리집 옛촌(관련 포스팅 바로가기)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가맥이었다.

 

 

 

가맥은 가게 맥주집의 줄임말로, 전주만의 고유한 술 문화의 일부다. 귀가길 슈퍼마켓에 둘러앉아 맥주나 소주 한두 병을 들이키는 방식이다. 서울에서야 캔 맥주에 스낵 한두 봉지가 전부다. 그러나 전주는 맛의 본고장답게 가맥 안주가 일품이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황태. 잘 말린 강원도 황태를 정성껏 두드린 후 질긴 껍질을 벗겨낸다. 이 누드 황태를 화롯볼에 죽 걸어놓은 풍경이 가맥의 상징이다. 연탄불에 골고루 구워낸 이 황태는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다. 여기에 오징어나 갑오징어, 튀긴 닭발, 그리고 계란말이 정도가 주메뉴다.

 

 

 

전주의 가맥을 전국의 명소로 만든 곳은 전일슈퍼. 어렵사리 그 곳을 찾았더니 상호가  바뀌어 있다. 문도 닫혀 있었다. 주변을 탐문해가며 이유를 물었다. 현재 이 곳은 영업정지 상태라고 했다. 그 원인을 두고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고도 하고 계란말이라는 요리를 해서 슈퍼마켓 관련 규정을 어겼다는 얘기도 있었다. 가맥 메카의 몰락을 둘러싼 진실을 확인할 길이야 없었다. 하지만 가맥의 참맛을 확인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 곳 인근에는 가맥이 몰려 있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비슷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일행이 들른 곳은 예전 전일 슈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동슈퍼.

 

 

 

 

 

 

고추장에 버무려 구워낸 닭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튀겨낸 닭발의 모양새에 놀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단 입에 대고 나면 의외로 닭튀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 감고는 누구라도 먹을 만한 맛이다.

 

 

  숙소에서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선잠을 청했다. 빨리 자고 심야에 하드코어 맛을 또 찾아 나설 계산이었다. 그러나 일행 모두가 눈을 떴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지나치게 빡빡한 일정에 모두 힘겨워 하는 것이 역력했다. 이럴 때는 제 맛도 못 느끼는 법이다. 새벽녘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귀경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3~4시간을 달리려면 또 두둑하게 배를 채워둬야 할 일이었다. 이번에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 IC 진입을 앞두고 불야성을 이룬 역전을 찾았다. 거기서 찾은 전주식 야식집. 엄청나게 싸고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놀랄 만큼 다양한 메뉴 구성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역시 하드코어 맛 기행은 운에 기대서는 안 된다. 철저히 몸으로 때우고, 입으로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