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문(놀이로 세상과 만나는 사람)

일러스트레이션 최호철

 

 

어렸을 때 나는, 곧 철거될 산동네에 살았다. 물이 안 나와 지게를 지고 아랫동네까지 내려가 길어다 먹었고, 한 번 불이 났다 하면 어느새 옆집 뒷집으로 불이 옮겨 붙어 한 동네가 홀라당 다 타버리는 허름한 집이 다닥다닥 붙은 그런 곳이었다. 연탄가스를 마셔 학교에 못 오는 동무들도 가끔 있었다. 아버지는 채석장에 돌 깨러 가시고 어머니는 남의 집 일을 가셨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동생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우리는 놀았다. 우리끼리 놀았다. 잘 놀았다. 하루 종일 놀았다. 더워도 추워도 놀았다. 꼭 밖에서 놀았다. 온 산동네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멀리 야산에 가서도 놀았고 까마득히 높은 축대에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도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오래 앓는 아이는 없었고, 요즘처럼 놀이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아이는 더더욱 없었다. 그때도 부모님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부모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이웃을 둘러보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사니 못 사니 싸움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고통과 아픔에 요즘 아이들처럼 사로잡힐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형들과 놀기에도 시간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 놀다가, 해가 빠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와 밥 먹고 또 몰래 나가 캄캄해지도록 놀다가 돌아오면 코 골며 잠자기 바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거의 그랬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세계는 우리에게는 잘 모르는 세계였고, 무척 작은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들 세계는 너무나 컸다. 그 큰 세계는 바로 놀이의 세계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마당과 골목과 동무를 잃어버려 자신들의 세계는 손톱만큼 작아졌고, 어려서부터 어머니 아버지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자란다. 또래 세계와 놀이터는 온통 위험과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차지해 버렸다. 부모에게 너무 의지하며 자라고 조금 더 자라면 컴퓨터에 빠져버린다. 이 모든 것이 놀이가 없기 때문이라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산동네는 철거됐고, 우리 가족은 쫓겨났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던 산언덕은 불도저가 밀어버려 평지가 되고 그곳에 덩그러니 아파트가 세워졌다. 놀이가 넘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뜬금없지만 그래서 나는 아이들 놀이와 노래와 이야기 공부를 악착같이 한다. 어려서 즐겁게 놀았던 짧은 행복의 기억이 지금 어른이 된 나를 밀어가는 결코 바닥나지 않는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놀았던 놀이는 이런 힘이 있다.

 

 

고래가그랬어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