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예수를 다룬 책 <젤롯>을 읽었습니다.
논란이 될 작품이고 신앙의 영역에서 이 책을 비난할 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거짓들이 많을 가능성이 있지만
제가 읽어본 예수라는 인물을 다룬 책 중에는 짜임새가 잘 구성된 작품이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를 다녔었고 그 때 들었던 의문은
구약성경의 신을 왜 이리 무서운 사람이고, 신약의 예수는 왜 이리 나약할까였습니다.
제가 교회를 나오고 결론은 성경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치려고 한 이야기로 정리했습니다.
<젤롯>을 읽고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지가 상당히 설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었고, 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를 들었고, 다윗의 왕의 후손이기도 한 예수를 성경으로 접합니다.
예수는 과연 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신의 아들이었을까요?
왜 유대인의 반란 시기에 활발한 종교는 그 대상인 로마제국의 종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책 속에서
공자는 그의 제자에 의해서
석가의 생각은 누군가에게 쓰여진 경전에 의해서
예수도 그의 제자 아니 정확히 그의 제자의 추종자들의 의해 쓰여진 글에 의해서
우리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예수, 당신은 정말 내가 듣고, 알게 된 내가 상상하고 있는 모습인가요?
오해가 아닌 신앙적 인물로 당신을 정말 제대로 알고 싶은 건 내 욕심일 뿐인가요?
예수는 곧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예수를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
- 16 –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문자적으로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믿음 말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 반박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수천 년에 걸쳐 수백명의 사람이 손을 댄 문헌이 다 그러하듯이, 성서 역시 빤한 오류와 모순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혼란스러워 영적으로 방황했다.
- 17 -
그 시대에 일어난 갖가지 종교적, 정치적 운동의 틈바구니 가운데 나사렛 예수를 도대체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엄밀하게 자리매김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매우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설교하나 싶더니, 바로 박애정신이 깃든 보편주의를 설교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무조건적인 평화를 요구하고, 어떨 대는 폭력과 갈등을 조장한다.
- 22 –
메시아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 57 –
마태나 누가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역사’를 기록할 의도가 아예 없었다. 마태 공동체와 누가 공동체 역시 그것을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72 –
창조의 근원인 영원한 로고스로서의 예수라든지,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베들레헴의 더러운 말구유에서 포대기에 싸인 채 태어났다. 곁에는 목자들과 선물을 들고 온 동방박사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러니 진짜 예수는 기원전 4년과 기원후 6년 사이에 피폐한 갈리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농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나사렛의 어느 작은 마을, 벽돌을 엉기성기 쌓아 진흙을 발라 만든, 흙이 풀풀 날리는 초라한 집이었다.
- 75 –
1세기 팔레스타인에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유대인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자신들의 ‘열심’이라는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극단적인 폭력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과 이방인뿐 아니라 로마에 빌붙어 아첨하는 동료 유대인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열심’을 의미하는 ‘젤롯(zealots)’이라고 불렀다.
- 85 –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 민족이 바람처럼 사방으로 흩어진 직후, 유대교라는 종교가 로마 사회에서 모습을 감춘 직후에 전쟁의 승리에 도취된 로마에서 ‘요한 마가’라는 유대인이 펜을 들고 첫번째 복음서의 첫 구절을 썼다고 한다. 나사렛 예수로 알려진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언어인 히브리어도 아니고, 예수의 언어인 아람어도 아니고, 이교도의 언어인 그리스어로, 이것은 로마 제국의 언어였으며 승리자들의 언어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마가복음 1:1)
- 120 –
팔레스타인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도 아니고 왕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갈릴리 지역을 떠돌며 재주나 부리는 전문 축귀자일 뿐이었다.
- 162 –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가 우주 건너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종말의 시기에 나타날 미래의 나라도 아니라면, 그것은 오늘날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이고, ‘실질적인’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며, 이 세상에 곧 세월질 나라다. 유대인들도 분명히 이렇게 이해했다.
- 182 –
어떤 이유에서건 나사렛 예수는 한 번도 자기가 메시아라는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한 번도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역시 남들이 예수에게 붙인 것이다. 예수를 자기를 부를 때 완전히 다른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호칭이 하도 수상하고 독특해서 지난 수 세기에 걸쳐 학자들이 이 호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도대체 예수가 무슨 뜻으로 이 호칭을 사용했는지 연구한 것이다. 예수가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한 호칭은 바로 ‘사람의 아들’이었다.
- 206 –
로마 제국 내에 흩어져 사는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의 이야기에서 가능한 급진성이나 폭력성, 혁명이나 ‘열심’ 같은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 자신들을 유대인의 독립운동과 결별시키려고 한 것은 당연했다. 예수의 말과 행동을 자신들이 처한 새로운 정치적 상황에 잘 들어맞도록 각색한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 223 –
이러한 변화에는 늘 갈등이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예수의 가족이나 열두 제자 등 아람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추종자들은 그리스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공공연하게 충돌했고, 이 충돌의 중심에는 누구의 이해가 예수의 메시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이 두 그룹 사이에는 불화가 생기기 시작해 예수가 처형되고 몇십 년이 흐른 뒤에는, 급기야 기독교 안에 두 개의 진영이 경쟁하는 구도가 정착되었다. 한쪽 진영의 지도자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였고, 다른 쪽 진영 지도자는 바리새파 출신인 바울이었다.
- 250 –
물론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에 상응하는 그리스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바울의 ‘그리스도’에는 구약 성서의 ‘메시아’라는 용어에 함축된 의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는 한번도 예수를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 말하지 않았다.
- 272 –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결국 디아스포라 지역에 흩어졌던 교회들과 하느님의 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던 모교회의 관계가 영원히 끊어졌다. 동시에 기독교 공동체와 유대인 예수 사이의 마지막 물리적인 고리마저도, 이제는 젤롯 예수와의 고리도, 급기야는 나사렛 예수와의 고리도 끊어졌다.
- 304 –
바라건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모든 포괄적인 연구가 적어도 나사렛 예수(인간으로서의 예수)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만큼이나 주목할 만하다는 사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 예수만큼이나 카리스마가 넘치며 찬미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 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