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의 중편 소설 2편은 함께 담은 <디디의 우산>을 읽었습니다.
제가 황정은 작가의 단편 소설만 읽다가 처음으로 중편을 읽어서 그런 걸 수도 잇지만
단편에서 못 보여줬던 문장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점에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오는 산만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부분적으로 보면 별로 흠이 없을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근데 다 읽고 나면 아직 뭔가 남아 있는데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더 있을 거 같은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 우산이 필요하다.”
아직은 우산을 피면 안됐는데 라는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2작품중에는 <d>가 좋았습니다.
세운상가, 죽음과 삶, 디디의 우산부터 흘러오는 남김과 떠남
기존 단편에서 한곡으로 전해졌던 것을 앨범으로 만들어준 느낌이 듭니다.
마치 <쇼팽의 녹턴>을 여러 버전으로 담은 앨범과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같은 음악이어도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책 속 표현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텍스트의 아름다움에 비해
그 텍스트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해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까지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니체, 한나아렌트, 들뢰즈 등 여러 철학과 동성애, 세월호 등 여러 사회 이슈가
중편 소설에 한번에 담기면서 서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중심을 잡아야할 동성애라는 주제를 사랑한다라는 주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간다라는 이야기로 바꿔어낸 부분이 제대로 못담긴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장편으로 담았으면 더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다른 책 토론 중에 한 분이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너무 많이 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 그런 소설이 많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작년에 나온 작품)
김봉곤, 최은영, 황정은 어쩌면 요즘 소설계에서 상품성 있는 작가들이
쉽게 이 코드를 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재로 너무 소모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커밍아웃을 안 한 것일수도 있지만 일단 제 중 김봉곤 작가만 동성애자입니다)
산다는 것은 (…)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
리뷰를 쓰면서 머리를 맴도네요. 위의 문장을 빌려 제목을 지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담아낸.
받아드릴 문장이 너무 비처럼 차갑게 다가와
우산을 저도 모르게 마음에 담아왔는지도 모르겠네요.
고요한 장소에 있을 때 d는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을 알았다. 소리의 흔적, 잡음들, 그것이 세계를 상시적으로 메우고 있었다. D는 별로 말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고 말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d에게는 세계가 이미 너무 시끄러웠다.
- 15 –
누군가가 없어져도 그를 기억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여기 없어도 여기 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냐? 사기를 치지 마라…. 인간은 너무도 사물과 같이….. 없으면 없어. 있지 않으면 없고 없으니 여기 없다…
- 24 –
벽 위로 밤이 스미고 낮이 그보다 밝은 빛깔로 번졌다가 다시 차츰 밤이 배어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 33 –
매번 그 꿈에서 깨어날 때 d는 자신이 듣고는 하는 소리, 세계의 잡음이 거센 물살처럼 그 뒷모습들을 쓰리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속수무책이란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D의 꿈은 엄청난 고함으로 끝났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현실이 엄청난 고요 속에서 이어졌다.
- 45 –
그 상처는 다갈색 흔적으로 남았다. 피부 아래 고인 피가 어디로도 흡수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작은 점이 되었다. 물방울처럼 생긴 다갈색 점. 그렇게 작은 상처도 흔적을 남기는데 dd의 죽음은….. 하고 d는 생각했다. 그 죽음은 내게 조그만 점도 남기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삶이 내게, 알량한 점 하나 남겨주지 않았어.
- 46 –
너무 유명하고 너무 익숙하고 너무 부드러워서, 더는 이상할 것도 없는 노래, 몇번이나 들어본 적 있는 노래였다. 그러나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 76 –
어쨌거나 저곳을 오가는 사람이 늘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 임대인들은 즉시 세를 올려 받으려 할 것이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자들의 계획에 다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 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 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 94 –
여기를 제대로 재생하려면 거짓말하지 말고 그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들이 되살리려는 것을 그들이 제대로 알아야 했다. 제대로 알려면 말이지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이 공간에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는 펼쳐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들이 각자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여행은 몇 번을 가보았는지를 알아보고 가족도 다 만나고 그들의 자녀는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직업을 얻었는지, 그중에 비정규직은 몇 퍼센트인지까지도 다 알아봐야 했다. 그 이야기들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이 거대한 상가의 내벽과 외벽을 몽땅 덮어버려야 했다.
- 95 –
d는 자기 오디오를 향해 앉아 있었고 그럴 때는 무엇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뭘 듣고 있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적막 속에, 어딘가 다른 세계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108 –
내가 현재나 과거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매번 죽음이고, 죽음을 경계로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엔 죽음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나요?
- 113 –
노란색 가름끈은 246페이지와 247페이지 사이에 깊게 끼워져 있었다. 246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거이었다. 이것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리스토퍼 알렉산터 <영원의 건축>) 247페이지의 첫번째 문장은 이것이었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 115 –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
- 134 –
dd와 더불어 삶에 권태롭게 되는 것, 두 사람 각자와 공동의 사물에 둘러싸인 채 조금씩 닳아 사라져가는 것. 삶이 없고, 닳아 없어질 물리적 형태도 없으므로 dd에게는 내내 도래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올 것이다. d는 현관에 서서 이승근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것을 깨달았다. 권태, 환명, 한조각의 정나미도 남지 않은 삶. 이와 같은 얼굴이 나에게 올 것이고, 나는 혼자 그것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138 –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은 d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장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 144 –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파씨의 입문> -
나는 매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단 한가지 이야기.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 151 –
니체에게 워드 프로그램이라는 툴이 있었다면 그의 초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무용하다지만 나는 이따금 공상한다.
- 159 –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168 –
산다는 것은 (…)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 (<롱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 211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말인 듯하다.
- 219 –
그의 절대무 개념이 “주체와 객체가 더는 이성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하나가 된다는 종교적 경지를 설파했다.”
- 226 –
그때 정진원이 내게 이모, 저 나무가 죽었으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 있어, 아직은…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대답을 해놓고 뜨끔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 229 –
어른은 부끄러움 뒤에 온다고 김소리는 말했지.
- 232 –
이전까지 그 일은 내가 수모를 ‘당한’ 일이지 내가 그 애들에게 뭔가를 ‘한’ 일이 아니었거든.
- 239 –
산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 산다는 것은 (…)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 (<롱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 242 –
우리의 관계를 안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존재를 혐오한 나머지 행할 수도 있는 언과 행의 가능성도.
- 262 –
볼 수 있는 세계가 중단된다면 그다음에 가능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읽고 쓸까?
- 272 –
나는 아직 그것을 볼수 있었으므로 거기 있었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상식의 세계라는 묵자의 플랫폼에서, 다시 한번
- 275 -.
그 시절의 도덕적 기준으로도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도 도대체 ‘건강’하지 못한 나는 <도덕의 계보>를 펼치고 그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두고두고 생각하고 싶기로는 유일했던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277 –
지난 세월 내내 서수경은 네가 조금도 지겹지 않은 화자였으니까.
- 278 –
우리는 그들을 재단할 수 없어.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어. 몇번이고 반복된 질문에 훈련되고 준비된 표정과 어조,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상투어가 아닐까? 2013년 비르케나우에서 우리가 들은 대답은 한나 아렌트가 “두려운 교훈”이라고 한 그것,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상투성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었을까…….
- 282 –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 저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지난 계절 내내 새로운 문장을 써왔고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제 그 문장은 완성되었다.
- 314 –
“한번 일어났다. 그러면 그것은 다시 일어난다”
- 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