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을 다룬 영국, 프랑스, 독일 3국 합작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Joyeux Noel, 2005)

  

첫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휴전(1914 년 이야기)

 

1914년 제 1 차 세계대전 발발 후 쾌속 진공하던 독일군의 진격이 마른전투 Battle of Marne 에서 멈춘 후 참호전으로 변한 전선에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습니다.

 

참호 속에 움크리고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면초가(四面楚歌)처럼 영국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 위한 독일의 심리전으로 처음에는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합창으로 변해가는 그 노래소리는 바로........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었습니다.....그러자 영국군 쪽에서도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포격이 반복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 캐롤 아카펠라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Christmas Future 재현행사]

 

밤새 캐롤이 울려 퍼진 전선에 동이 터오자 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와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방아쇠에 손이 간 영국 병사들은 그 독일 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총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독일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트리였던 것입니다.

 

[ 기념 박물관 ]

 

순간 영국군측에서도 몇 몇 병사들이 참호 밖을 빠져나가 그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양측 지휘관의 만류에도 병사들은 양측 참호 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No Man's Land 로 불리던 죽음의 땅에 잠시간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 입니다. 참호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그때서야 그들 사이에 무수히 널려있던 양쪽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측 지휘관들이 시체수습을 위한 잠시 동안 휴전에 합의를 합니다. 영국 병사들을 묻을 때는 곁에 있던 독일군들이 기도하고 독일 병사를 묻을 때에는 반대로 영국군 병사들이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시신을 함께 수습하는 양국 병사들]

 

그리고 시체가 치워지자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의 축구경기가 벌였습니다. 피탄공이 가득찬 진흙벌판에서 공을 차고 쫓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찼습니다. 경기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가족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성탄을 축복하는 모습]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양쪽 군수뇌부는 경악하고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내려옵니다. 일선의 지휘관들에게는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하달됩니다.

 

다음날 포탄이 상대편의 머리위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전선의 병사들에 의하여 멈춰졌던 전쟁은 명령에 의해서 다시 시작 되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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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휴전(1944 년 이야기)

 

프리츠 빈켄 Fritz Vinken 이라는 독일인이 어려서 겪었던 잊지못할 감동적인 실화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인 Resder's Digest에 소개되었던 에세이입니다. 원문을 조금 축약하여 올려 봅니다.

 

[1944 년 크리스마스 때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1944 년 12 월 이른바 발지 전투 Battle of Bulge 로 알려지던 서부전선 대회전 당시에 벨기에 국경 부근 독일 휘르트겐 숲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헨에서 살다가 연합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피난 온 열 두 살 먹은 프리츠 빈켄 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야포의 포격,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때였습니다.

 

비록 쉴새 없이 포소리가 이어지는 전쟁터이기는 하였지만 민방위 대원으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빈켄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촛불을 끄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눈쌓인 겨울 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 둘이 유령처럼 서있었고 조금 뒤 눈 위에는 부상을 당한 병사가 누워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빈켄은 거의 동시에 그들이 적군인 미군들 임을 알아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빈켄의 어깨 위에 한손을 올려 놓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무장한 그들은 구태여 우리 허락없이 강제적으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그냥 문앞에 서서 잠시 쉬어 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낙오하여 부상당한 미군들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사람과 프랑스어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부대에서 낙오한 그들은 독일군을 피해 사흘이나 숲속을 헤맸다는 것이었고 동료는 부상까지 입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모와 점퍼를 벗고 나니 그들은 겨우 소년 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들 같은 소년들로만 보였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부상자를 들어다 빈켄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부상자를 살펴보러 가면서 어머니가 빈켄에게 말했습니다. "저 두 사람의 발가락이 언 것 같구나. 자켓과 구두를 벗겨 줘라. 그리고 밖에 나가 눈을 한 양동이만 퍼다 다오" 빈켄은 어머니 말씀대로 눈을 퍼와 그들의 퍼렇게 언 발을 눈으로 비벼 주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를 가져와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가 흐른 뒤, 고소한 통닭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자 또다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미군들이겠지) 하는 생각하고 빈켄이 문을 여니 밖에는 네명의 독일군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들이 왔습니다]

 

순간, 빈켄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적군을 숨겨 주는 것은 최고의 반역죄로 즉결 총살감이라는 것을 어리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프뢸리헤 바이낙텐 ( 축 성탄 ) !" 어머니가 인사를 하자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물론이지요...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셔요."  막 구워지고 있는 통닭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와 있습니다....비록 그들이 당신들의 친구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 찰나 독일군들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숨어서 문 밖을 살피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방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 어머니가 다시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우리집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당신들은 내 아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 안에 부상당해 낙오한 미군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몸입니다....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서로 잊어버립시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마도 그 자리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것을 깨뜨린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뭣들 해요 ? ... 우리 빨리 맛있는 저녁을 듭시다. 총은 모두 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아요."  그러자 젊은 독일군과 미군들은 동시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관계로 저녁을 더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는 빈켄에게 감자를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창고에서 식량을 찾는 동안 빈켄은 미군 부상병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자를 가득 안고 돌아와 보니 독일군 하나가 안경을 쓰고 부상당한 미군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개심을 풀고 서로를 도왔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위생병이군요?" 그러자 안경을 쓴 독일 병사가 대답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몇달 전까지 하이텔베르그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꽤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추위 덕분에 환자의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고 미군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과도한 출혈 때문입니다.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적개심이 서서히 가시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다시 보니 나의 눈에까지도 군인들은 아주 어리기 보였습니다.

 

쾰른에서 온 하인츠 와 빌리는 열 여섯 살이었고, 스물 세살 난 하사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사가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내자, 하인츠는 호밀 빵 한 덩어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빵을 잘게 썰어 식탁 위에 놓고 포도주 반 병은 부상당한 미군소년을 위해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자 어머니는 모든 병사들을 식탁에 모아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귀에 익은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전쟁터까지 오게 된 병사들은 그 순간 어린 소년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기 바빴습니다.

 

[그들은 그해 크리스마스 때 가장 빛나는 별을 함께 보았습니다.]

 

자정 직전 어머니는 문 밖으로 나가 함께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니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그들에게서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독일군 병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히 가르쳐 준 뒤, 그들은 서로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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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대치한 영국군 소위, 당시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복원·공개돼
“양쪽 병사들 악수하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100년 전 오늘, 유럽의 서부전선에 있던 영국군 병사가 꽁꽁 언 손으로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사진)를 썼다. “어머니, 난 지금 참호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진짜 크리스마스 날씨지만, 모닥불을 피우고 지푸라기가 넉넉해 꽤 아늑해요.” 병사는 그날 경험한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가며 “오늘 세상에서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특별한 광경을 본 것 같다”고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25일 오전 10시께 팔을 흔들며 참호를 나온 독일군 병사 두 명이 영국군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총을 쏘려는 순간 그들이 총을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중 한 명이 나가서 그들과 만났다”고 썼다. 2분 정도 지났을까. 두 줄로 나란히 파여있던 참호 사이 지대는 양쪽 병사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악수를 하며 서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어요.” 그는 병사들이 각자 참호로 돌아가도록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30여분간 이 만남이 계속됐다고 적었다. 또 그날에는 총알 한 발 오가지 않아, 병사들이 자유롭게 참호 벽 위로 걸어다녔다고 묘사했다. 중간지대에 널부러져 있던 주검들을 함께 묻고 공동 장례의식도 치렀다. 그는 자신도 독일군과 악수를 나눴다며, 담배를 나눠 피고 기념사진을 찍은 병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휴전이 이어질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독일군이 (함께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1월1일에도 또 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피어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생생히 전한 편지의 주인공은 당시 영국 보병부대 ‘세컨드 고든 하일랜더스’ 소속 앨프리드 두건 차터 소위였다. 그는 이후 대위로 진급했으나 1915년 누브샤펠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1974년 사망한 차터의 편지를 영국 체신공사 로열메일이 1차 세계대전 기념우표 세트를 내며 복원·공개했다고 <가디언>이 24일 전했다.

 

1914년 12월25일 서부전선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유명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90m 거리를 두고 참혹한 ‘참호전’을 벌였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성탄절에 함께 캐럴을 부르며 서로의 머리를 깎아줬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이 축구시합을 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근 양국 군 축구 대표팀은 기념 시합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