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벽파정에 남긴 시
벽파를 건너며 읊다. / 김정 (1486-1521)
渡碧波口號(도벽파구호)
宇宙由來遠(우주유래원}
人生本自浮(인생본자부)
扁舟從此去(편주종차거)
回首政悠悠(회수정유유)
우주는 예로부터 심원하나
인생은 원래부터 떠다니는 삶이라네.
작은 배 한척에 몸을 싣고 이제 떠나면
고개를 돌려 보아도 아주 아득하겠지.
조광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펼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금산으로 유배된 충암 김정은 1520년 5월에 진도로 이배된 후 그해 여름에 다시 제주로 유배 길을 간다. 진도에서 제주로 가는 배는 벽파진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 그는 위 시를 쓴다.
제주도로 귀양을 가는 것은 인생 막장으로 가는 것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풍랑을 만나 죽을 수도 있고 다시 못 돌아오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도 다반사이니까.
김정은 사림파의 주도 세력이다. 그는 일찍이 순창군수 시절 박상, 유옥과 함께 순창 강천사 근처 삼인대에서 신위복위소를 올려 사림들이 다시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조광조, 김식등과 함께 개력을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를 당하였다.
그는 1521년 10월 제주 유배 중에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그가 1520년 8월부터 1521년 10월 까지 제주에서 유배 살이 하는 동안 제주도의 독특한 풍물을 자세히 기록한 ‘제주풍토록’을 남겼다.
이 제주풍토록은 제주도의 지형·기후·동식물·특산물을 다루었으며, 특이한 가옥구조와 언어, 무당이 많고 뱀을 섬기는 신앙이 성행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폈고, 주민의 생활상과 관원의 횡포에도 관심을 가졌다. 귀양살이 하는 자신의 형편과 마음에 대해서도 기록한 귀중한 책이다.
벽파정 충암 김정 시에 차운하여 / 규암 송인수
孤忠輕性明(고충경성명)
端棹任沈浮(단도임침부)
日落芳洲遠(일락방주원)
招魂意轉悠(초혼의전유)
외로운 충성은 달처럼 밝고 가벼워
노 끝에서 가라앉았다 떴다 하는 구나
해는 지고 멀리 모래밭이 너무도 아름다워
가신님의 혼을 부르며 몹시도 그리워 하네
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사사를 당한 송인수는 전라감사 1543-44년 시절에 이곳을 방문하여 김정의 시를 보고서 위시를 짓는다. 그도 조선의 선비요, 사림으로서 기묘사화 때 순절한 김정을 애도하였으리라.
벽파정 시에 답하여 / 노수신(1515-1590)
二公天上在(이공천상재)
孤客海中浮(고객해중부)
幸緩今朝死(행완금조사)
前導尙自悠(전도상자유)
두 공은 천상에 있으나
외로운 나그네는 바다 가운데 떠 있네.
다행스럽게 오늘 아침까지 목숨을 이었으나
앞날은 오히려 멀기만 하네.
노수신은 진도에서 19년간 유배살이를 한 인물로, 진도에 살면서 진도(당시는 옥주) 사람들을 개화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1545년 을사사화로 인하여 1547년 순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도로 이배된 후 1565년 괴산으로 다시 옮겨지기 까지 19년간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시는 진도 벽파진을 통하여 진도로 유배 오면서, 기묘사화로 죽음을 당한 김정과 김정의 시에 차운한 송인수(1499-1547 당시 전라감사를 함)의 시에 답하여 쓴 시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두 공이란 바로 김정과 송인수를 말한다.
진도의 벽파정 정자는 지금은 없다. 벽파진은 예전에는 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뱃길이었으나 지금은 포구로서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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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碧波亭 [진도 벽파정] 朝鮮, 張維[장유] / (진도 벽파정에서)
天邊日脚射滄溟 [천변일각 사창명]
雲際遙分島嶼靑 [운제요분 도서청]
閶閤風聲晩急來 [창합풍성 만급래]
浪花飜倒碧波亭 [낭화번도 벽파정]
하늘가 햇발이 넓고 큰 바다를 내리쏘아...
구름 끝 아득히 섬 푸른 색갈을 갈라 놓네
천상문[天上門]으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저녁되니 급해지고
흰물결꽃 엎치락 뒤치락 철썩이는 벽파정!
張維[장유;1587-1638] 朝鮮, 宣祖- 仁祖간의 문신 학자로 字는 持國 號는 溪谷[계곡]이다. 우의정을 역임했고 문장에 뛰어나 申欽, 이정구, 이식과 함께 漢學四大家[한학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천문, 지리, 병서, 그림, 글씨 등에 두루 능했다. 저서에 “溪谷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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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古蹟)」편에 이주(李胄)의 한시 한 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天開寶刹兩三間 白業胡僧門不關
천개보찰양삼간 백업호승문불관
石塔百層半空入 鐵庭萬丈千古頑
석탑백층반공입 철정만장천고완
하늘이 열어 놓은 두세 칸 보찰에서
불도를 닦던 중국 승려가 문을 닫지 않는구나
석탑은 백층이나 반공에 솟아 있고
만장이나 우뚝 솟은 바위 천년 동안 변함없네
寒潮曉落出塩井 黑霧朝消多海山
한조효락출염정 흑무조소다해산
遊目天涯雲更遠 北書不至吾得還
유목천애운경원 북서불지오득환
차가운 조수가 새벽이면 물러가니 염정으로 나가는데
어둔 안개 아침 되어 사라지니 바다에는 산도 많아
하늘 끝까지 바라보니 구름은 더욱 멀어
서울 편지 오지 않으니 내가 돌아갈 수 있을까
이주(李胄:1468(세조 14)∼1504(연산군 10))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 진도로 귀양갔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전에 궐내에 대간청을 설치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김굉필(金宏弼) 등과 함께 사형되었다.
『옥주지』에는 고려시대의 한시 세 편과 조선시대의 한시 다섯 편이 들어 있는데 그중 이주는 특별히 진도와 관계가 있는 인물로 몇 편 전해지지 않은 고려시대 진도의 한시 중 이원이 벽파정을 노래한 시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데, 이원은 바로 이주의 증조부이다.
이러한 한시작품들도 모두 외지인들이 진도에 유배왔거나 진도를 유람하면서 쓴 것으로 진도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자신의 서글픈 감정을 술회하였음을 볼 수 있다.
벽파진 앞 바다에 떠 있는 섬은 '감부도',
벽파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은 '서낭산(215m)', 용장산성에서 오른쪽으로 봉긋∼ 솟아 있던 바로 그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