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만송족유신족땡전족뉴라이트족

독재자 이승만 평전/[14] 파멸의 무덤 판 315부정선거와 국민저항 2012/05/19 08:00 김삼웅

 

자유당 말기 대학언론문화예술계에 이른바 만송족’(晩松族)이란 해괴한 어용집단이 등장하여 주류를 이루었다. 이기붕의 아호를 따서 불리게 된 만송족은 이기붕 부통령 만들기의 전위그룹으로 활동하였다. 여기에는 많은 어용 언론지식인예술인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이승만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에 놓이고, 이제 유사시에 그를 이을 이기붕 선생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는 일이 이들의 급선무였다. 이것은 이승만의 지침이기도 하였다.

 

한국현대사에서 이성과 지성, 정의와 양식이 가장 먹구름에 덮히고 천대받은 시기는 자유당 말기, 유신말기, 전두환의 5공세력 집권기, 이명박 집권기라 할 것이다. 자유당 말기는 뒷날 나타나게 된 말기현상의 시범이 되었다. 이승만 시대의 만송족’, 박정희 시대의 유신족’, 전두환 시대의 땡전 뉴스족’, 김영삼 시대의 ‘YS장학생’, 이명박 시대의 뉴라이트족은 그 때마다 정치언론학계문학예술분야를 장악하면서 한국사회를 어둠의 중세(中世) 시대로 몰아넣었다.

     

       김광섭

 

만송족은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투어 어용곡필을 지상에 실었다. 대표적인 몇 편을 골라본다. 문인 김광섭은 <부통령은 동일정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글을 썼다 

 

정치윤리상 정부통령은 서로 다른 정당에서 나올 수 없다. 만일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의 대통령하에 부통령을 들여보낸다면 그것은 일종 연립정부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는 점에서 부통령이 속한 정당에서 정부나 정당의 시책을 공격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윤리상 부통령이 대통령을 공격비난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인 것이다.정치도 다른 모든 것과 같은 바른 것이요, 바른 길인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간 부통령의 길이란 사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석 5)  

                                                                                                                                                           조영식

 

경희대학 총장 조영식은 <이기붕 의장과 현정국>이란 시론을 썼다.

이대통령의 유일한 보필자로서 비서실장과 서울시장 또는 국방장관과 민의원 의장을 역임하는 가운데 한결같이 아무런 사고없이 그 어려운 직책들을 무난히 감당하여 세인으로 하여금 그분의 청렴결백함과 탁월기민한 수완능력에 감탄케 하였음을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일들이다. (주석 6)  

 

동요작가 윤석중은여든 다섯 돌 맞이라는 이승만 찬양 동요(?)를 지었다.

 

1.

나날이 푸러가네

심어놓신 나무들

나날이 젊어가네

우리나라 산과 들

수많은 푸른 자손

거느리시고

여든 다섯 돌 맞이하신

우리 대통령.

 

2.

모시고 갔다 오자

흰눈 덮인 백두산

오다가 들러오자

진달래 핀 금강산

흰 머리 젊은 기운

어린 마음으로

여든 다섯 돌 맞이하신

우리 대통령. (주석 7)   

                                                                                                                                                                          윤석중

 

이들뿐만 아니었다. 종교계는 이승만이기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기도회를 열고, 기업인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두 이씨의 당선을 강요했다. 문인학자법조인한국노총여성계 등 대한민국의 기간조직이 총동원되어 315 부통령 선거에 두 이씨 선거운동의 전위가 되었다. 자유당과 관경은 물론 반공청년단 등은 완장을 차고 전국을 누비면서 부정선거를 강요하고 야당계 인사들을 테러하였다. 무법천지의 공포분위기에서 국민은 숨도 크게 쉬기 어려웠다.

 

이승만 정권의 불법과 횡포는 끝가는 줄을 몰랐다. 선거법이나 국민의 시선, 야당의 비판은 안중에 없었다. 각종 사회단체가 속속 자유당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립대학 총학장이 자유당선거대책위원회 지도위원이 되었다. 민주당에서 선거법 위반을 들어 시정을 촉구했으나 사회단체의 지지 성명은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야당 정치인들의 변신은 국민을 절망시켰다. 민주당 소속 의원 구철회김규만김삭송영주유승준허윤수허순회박창화 등이 돈에 팔리거나 권력에 눌려 선거구민을 배신하고 자유당으로 넘어갔다.

 

이 무렵에 시인 조지훈이 월간 <새벽><지조론>을 발표하여 변절자들을 질타하고 지조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서광이었다.

 

야당은 4년 전 신익회 후보의 유세장이었던 한강백사장을 선거 유세장으로 신청했으나 정부는 경비에 문제가 있다고 불허하였다. 자유당과 관경은 두 이씨의 ‘85%의 득표를 목표로 더욱 국민을 조여갔다.

 

신도환의 반공청년단, 임화수의 반공예술인단, 이정재의 사조직인 동대문시장 중심의 깡패집단이 반자유당 세력을 말살시키기 위해 정치테러에 광분했다.

 

39일 민주당 여수시당 재정부장 김용호가 당사 앞에서 7,8명의 괴한들에게 피습, 절명하고, 311일 전남 광산군에서 반공청년단 오세열이 자유당 선거유세가 끝난 후 민주당원 이상철을 살해하였다. 무법천지 광란이 1960년 봄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주석

5> <서울신문>, 196032.

6> <서울신문>, 1960312일부터 3일간 연재.

7> <서울신문>, 19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