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고교생들이 든 민주봉화

독재자 이승만 평전/[14] 파멸의 무덤 판 315부정선거와 국민저항 2012/05/20 09:32 김삼웅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청년학생들은 민족이 고난에 빠져 있을 때 맨 먼저 횃불을 들었다.

1910년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무장독립운동, 191928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기미 31운동, 같은 해 의열단의 결성과 의열투쟁, 19266월의 610만세운동, 192911월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민족해방투쟁의 전선에는 언제나 청년학생들이 있었다.

 

1960년이 열리자마자 진행되는 이승만 정권의 폭압과 부정선거운동이 민주주의의 기본마저 허물어 뜨리고 전개되자 학생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맨 먼저 나선 것은 고등학생들이었다.

 

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대구 경북고교생들이다. 228일 학생들은 민주당 선거강연회 참석을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의 등교에 항의하여, 그동안 관제 데모에만 동원되어 온 학생들이 최초로 반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학원의 정치 도구화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저항에 나섰다.

 

이날 영화관람을 이유로 등교했던 1,2학년 학생 800여 명은 도청 광장으로 진출하여 오후 115분경 미리 준비한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위를 벌여 경찰과 대치, 일부 학생들은 오후 늦게까지 학원도구화를 일삼은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100여 명의 학생이 검거되고, 더러는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날 학생들이 낭독한 <결의문>(요지)이다.

 

인류역사에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가. 근세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일이 그 어디 그 어느 역사책 속에 끼어 있었던가?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요, 조국을 괴뢰가 짓밟으려 하면 조국의 수호신으로 가버릴 학도이다. 이 민족애의, 조국애의, 피가 끓는 학도의 외침을 들어주려는가? (주석 8)

 

이것은 가장 순수한 학생들이 오직 나라사랑 정신에서 제기한 시대의 경고음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귓등으로 흘리고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확산을 막고 배후조사에 나섰다. 이승만은 일주일 뒤인 35일 밀양역 유세에서 이기붕 씨를 뽑아야 나라 일이 더 잘된다고 러닝 메이트의 당선을 강조하면서 일부 학생의 난동을 비난했다. 37일에는 서울경찰국장이 학생들에게 경고문을 발표하여 시위를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협박했다. 학교 주변에는 반공청년단원들이 배치되어 학생들을 감시하였다.

 

1959812일 단장을 신도환으로 바꾼 대한반공청년단은 세칭 100만 단원을 거느리면서 전국 89개 시군 단부를 조직하여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우리 전 단원은 국부 이승만 각하와 서민정치가 이기붕 선생을 정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하여 엄숙히 약속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다니면서 경찰과 함께 학생들을 감시하고, 선거분위기를 공포로 몰아넣고, 부정선거의 일선 앞잡이 역할을 하였다.

 

3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는 자유당 정권의 사전 계획대로 철저한 부정선거로 진행되었다. 4할 사전투표와 3인조, 9인조 공개투표 외에 유령유권자 조작과 기권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 투표 내통식 기표소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시 혼표와 환표 득표수 조작발표 등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이성이 눈먼 시대에는 광기가 춤을 춘다. 전국에서 공무원, 교사들이 정부와 자유당의 지침에 따라 투개표소 참관인으로 선정되어 부정선거를 도왔다. 경찰과 반공청년단의 역할은 괄목할만 했다.

   

주석

8> <4월혁명 자료집 419의 민중사>, 55~56, 발췌, <419민중사> 표기.

 

 

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민주화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해 왔다. 역사바로잡기와 민주화ㆍ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 분야 저서 30여권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