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회] “그놈의 사진 밑씻개로 하자”
독재자 이승만 평전/[15장] 4월혁명으로 몰락한 독재자 2012/05/27 06:00 김삼웅
4ㆍ19혁명의 현장에서 무자비한 경찰에 의해 살상 당하는 어린 학생들을 지켜 본 시인 김수영은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시를 발표했다.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첫 연) (주석 6)
이승만은 하야한 지 한 달 3일 만인 5월 29일 오전 8시 5분, 부인 프란체스카만 동반하고 하와이 동포 몇 사람이 제공한 대만 CAT 전세기편으로 비밀리에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세번째의 망명이고 마지막 망명길이었다. 김포공항에는 허정 과도정부 수반과 이수영 외무차관이 전송을 나왔을 뿐이다. 망명 사실을 국민에게는 밝히지 않고, 신새벽에 줄행랑을 친 것이다.
이승만은 하야성명이나 이화장의 칩거, 망명길에서 한 번도 폭정 12년과 4ㆍ19학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4월 30일 국회에서는 이승만 망명에 대한 책임추궁이 있었다.
민주당 양일동 의원의 추궁에 허정은 “이박사는 건강이 나빠 하와이로 요양차 여행한 것이며 외교관 여권을 주선해주었다”고 말하고, “이박사의 리한은 오히여 시국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 장면 민주당 대표는 과도정부에 이승만 탈출의 경위와 진상을 밝히도록 요구하고, “부패와 독재와 학정에 인책ㆍ사과하지 않고 망명함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정부를 비난했다.
12년 동안이나 전제군주처럼 군림하면서 독재와 전횡을 일삼아 온 이승만은 국민의 민주혁명으로 쫓겨나 해외에 망명하고, 이승만을 등에 업고 부정선거를 획책한 이기붕 일가는 집단자살로서 영화와 비행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권력무상’을 보여준 셈이다.
이승만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폐간되고, 4월혁명 과정에서 복간한 <경향신문>은 ‘여적’의 <이승만 하야>에 이렇게 썼다.
△ “선을 쌓은 집안은 경사스럽게 되고, 악을 쌓은 집은 재앙이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너무나도 소연한 인과업보의 법칙에는 숙연하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 이번 4ㆍ19의 학생의거가 우리나라에 분명히 정치적 혁명을 가져온 데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도의진흥에도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 아~뉘라서 지금 세상에는 도의가 없다고 하였던고. 아~뉘라서 지금 세상에는 천도가 무심하다고 하였던고. 금성철벽 같은 자유당 권세가 이십 전후의 청년학생들의 의거로 인하여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을 누가 꿈엔들 짐작하였으랴! 그러나 불의는 드디어 굴(屈)하였다. 도의는 소생되었다. (주석 7)
이 신문은 또 <4ㆍ19의거>란 ‘여적’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 장미가 핀 것이 사실인 이상 한국이 쓰레기통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 세계 역사상 이번 한국학생의 의거처럼 성공적인 것은 없었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가르켜 아무것도 배울 것 없는 나라로만 여겨왔는데 4ㆍ19의거는 전세계적으로 절찬을 받았으며 이미 일본이나 터키 같은 나라에서는 “한국학생을 본받으라”는 슬러건을 내걸고 데모운동이 전개중이라고 하니 이만하면 대한민국 사람들도 어깨가 으쓱하다 △ 장미꽃은 장미동산에서 피는 것이요, 쓰레기통에서 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번 학생들을 구구하게 장미꽃에 비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훌륭한 무궁화동산이다. 이 무궁화동산에서 무궁화가 피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학생들은 바로 이 무궁화다. 그러므로 이번 의거를 계기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필 수 없다”는 수치스러운 속담 대신에 “무궁화동산에서는 무궁화가 핀다”는 새로운 격언을 세계적으로 전파시켰으면 좋을 것 같다.
(주석 8)
4ㆍ19혁명은 민주공화제의 정부를 수립하고도 전제군왕처럼 군림한 ‘국부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장미가 피지 않는 ‘쓰레기통’으로 비난받다가 장미와 무궁화를 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ㆍ시민들은 6ㆍ25전쟁 발발 10년, 휴전성립 7년 만에 반독재 민권승리의 위대한 민주혁명을 이룬 것이다.
주석
6> 최하림, <김수영 평전>, 278쪽, 실천문학사, 2001.
7> <경향신문>, 1960년 4월 29일.(요약)
8> 앞의 신문, 1960년 4월 30일.(요약).
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민주화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해 왔다. 역사바로잡기와 민주화ㆍ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 분야 저서 30여권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