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항거로 독재정권의 실질적인 몰락을 가져왔던 1987년 6월항쟁. 6월을 맞아 다시 그날의 거리를 생각해 본다. 1987년, 군사정권 등장을 반대한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억누르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수·학생·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용공, 빨갱이로 몰려 희생됐다. 그해 1월 경찰이 서울대생 박종철 씨를 고문, 끝내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야당과 여론의 개헌요구를 거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종교계와 지식인 대학생들의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서명과 농성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고 이를 시발점으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은 5월 27일 광범위한 민주세력을 묶어세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은 국민운동본부를 통해 본격적인 반독재 민주화 국민투쟁인 6월 항쟁을 이끌어내게 된다.
6월항쟁 기간 중 국민들의 참여 열기는 갈수록 높아져 6월 18일 전국 16개 도시에서 항쟁 기간 중 최대 인파인 1백50만 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에 의한 사망은 전두환 정권의 종말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분노어린 투쟁은 노태우에 의한 6.29선언 즉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의 일련의 민주주의 개헌을 약속하는 것으로 1987년 뜨거웠던 6월 항쟁은 막을 내렸고,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노동자들의 대투쟁이 이어졌다.
6월항쟁, 그 시절 그 거리에서 국민과 함께한 노래들이 있다. 그날 그 거리엔 과연 어떤 음악이 울려 펴졌을까? 가장 대표적인 노래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지난 1982년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는 물론 지금까지 민중들의 노래로 굳건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아침이슬’이다. 대학생, 노동자, 시민 등 누구나 쉽게 마음을 담아 부를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노래 가운데 하나로 ‘아리랑’이 있었다. 아리랑은 1980년 광주에서도, 1987년 유월항쟁 가운데서도 2002년 촛불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노래다.
강한 투쟁가가 아니라 아리랑, 아침이슬 등 대중적인 노래가 그날 그 거리에서 불려진 건 6월항쟁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주게 한다. 6월항쟁은 국민들의, 민중들의 항쟁이었다. 그들 스스로 나서 민주주의를 회복한 항쟁이었다.
국민이 나서 민주주의를 세웠던 6월항쟁이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6월항쟁 28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유월항쟁으로 일군 우리의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투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고, 그 소중한 직선제로 우리의 대통령을 뽑아야 하지만 , 우리는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지도자가 저지르는 폭압의 정치를 오늘 만나고 있다. 오늘 우리는 국민의 투쟁으로 만든 87년 헌법, 그 헌법으로 세워진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전교조를 불법화하는 현실을 보고 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장을 떠올리며 그날 그 거리의 다짐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날 그 거리에서 불리던 노래들을 이곳에 정리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6월항쟁 다큐멘타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김민기의 ‘아침이슬’
노래 ‘그날이 오면’. 문익환 목사는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조사를 했다. 그 날의 조사와 노래는 보는이의 가슴을 적신다.
노래 ‘6월의 노래’. 6월항쟁을 기념하며 만든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