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결성 당시의 킹 크림슨ⓒ기타
웅장한 연주와 하께 우울한 듯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에피타프(Epitaph)’를 처음 들었을 때 전율이 일었다. ‘에피타프(Epitaph)’는 장장 9분에 육박하는 대곡이다. 가사의 뜻은 잘 몰랐지만 ‘묘비명(墓碑銘)’을 뜻하는 ‘에피타프(Epitaph)’는 그 말만으로 어린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에피타프(Epitaph)’가 실린 킹 크림슨의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을 구입하고, ‘에피타프(Epitaph)’의 메시지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킹 크림슨 (King Crimson)은 기타 연주자 로버트 프립(Robert Fripp)과 드럼 연주자 마이클 자일스(Mike Giles)가 결성한 영국의 록 밴드다. 시간이 지나면서 멤버는 여러 번 바뀌었다. ‘에피타프(Epitaph)’가 실린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을 발표할 당시엔 시인이자 작사가인 피터 신필드도 함께 했다. ‘에피타프(Epitaph)’는 로버트 프립이 작곡하고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가 작사, 그렉 레이크(Greg Lake)가 노래를 불렀다. 1969년 10월에 발표된 이 앨범은 당시 비틀즈의 ‘Abbey Road’를 꺾고, 영국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에피타프(Epitaph)’엔 시대를 향한 경고가 가득하다.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뇌가 가득하다. 이 가사를 쓸 당시에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는 만으로 26살이었다. 피터 신필드는 “혼돈은 나의 묘비명이 될 것”(Confusion will be my epitaph)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고, 정해진 운명을 의심하고, 혼돈하는 것이야 말로 젊은이의 사명인지 모른다. 그렇게 과거를 부정하며 젊은이들은 혼란과 혼돈으로 세상과 싸워왔다.
1971년 당시 스무살이던 가수 김민기는 ‘아침이슬’이란 노래에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라고 노래했다. 동서양의 젊은이 모두가 자신의 시대에서 묘지를 보게 된 건 우연일까? 묘지를 떠올린 건 허무함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는 “혼돈은 나의 묘비명”이라며 기성에 저항했고, 김민기는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이라며 거친 광야로 떠나길 다짐한다.
킹 크림슨의 데뷔 앨범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기타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을 때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 된다. 바로 이 시각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 빛나는 광장으로 나서라! 그리고 락밴드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碑銘)의 마지막 구절을 되씹어 보아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인용한 에피타프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민중이 우리의 헌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When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혼돈과 시련으로 정리되지 않은 거친 목소리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건 젊은이들이고, 또 많이 배우지 못한 민중들이다. 킹 크림슨이 노래한 경구를 다시 떠올려 본다. “민중이 우리의 헌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이 노래를 만들던 당시 시대를 향해 던진 외침은 2004년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2015년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이어지고 있다.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
킹 크림슨이 라이브로 부른 에피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