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 법률조항은 심의기관인 공연윤리위원회가 음반의 제작.판매에 앞서 그 내용을 심사하여 심의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한 음반에 대하여는 판매를 금지할 수 있고, 심의를 받지 아니한 음반을 판매할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공연윤리위원회는 공연법에 의하여 설치되고 행정권이 그 구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음반에 대한 위와 같은 사전심의제도는 명백히 사전검열제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10월31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음반 사전심의제도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음반을 사전에 검열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온 관행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위헌이라며 제청한 이는 가수 정태춘이었다. 정태춘은 음반 사전심의제도에 맞서 이른바 ‘불법음반’을 배포하며 맞섰고, 기나긴 법적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정태춘은 1990년 음반 사전심의제도에 맞서 앨범 ‘아! 대한민국’을 발표했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음반 심의를 거치지 않은 ‘비합법’, ‘불법’ 음반이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래로 세상에 맞선 것이다. 이른바 ‘불법음반’을 내던 당시 정태춘은 1970년대 후반 ‘시인의 마을’을 시작으로 가요계의 중심에 섰고, 이미 7장이나 앨범을 발표한 중견가수였다. 그런 그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정태춘 ‘아! 대한민국’ⓒ기타
정태춘이 1990년 발표한 ‘아! 대한민국’은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부하고 제작된 앨범이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대학가 서점이나 공연장에서 판매됐다. 물론 불법이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와 3당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거대 여당’ 민자당은 기존의 검열 제도를 더욱 강화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을 1991년 2월 발효시켰다. 정태춘은 1991년 1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몸소 사전검열 제도 폐지를 위한 전면전에 뛰어들었다.
1992년 정태춘은 또 다른 불법음반 ‘92 장마, 종로에서’를 발표했다. 이 음반 역시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부하고 배표됐다. 정태춘은 이 불법음반을 가지고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1993년 11월 문화체육부에 의해 고발되고, 1993년 1월 서울지검에 의해 기소됐다. 그의 투쟁에 자극을 받은 문화계는 정태춘과 함께 투쟁에 나섰고, 1994년 4월 위헌심판제청과 5월 위헌제청 결정 판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다루게 됐다. 이후 정태춘 등이 앞장서 대중들의 여론을 이끌었고, 결국 1996년 10월31일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은 사전심의 제도를 폐지하며 표현의 자유를 이끌어낸 우리나라 문화계를 뒤흔든 판결이었다.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이끌어낸 시발점이 된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음악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태춘은 ‘아!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사전 심의 때문에 에둘러 표현해야 했던 제약들을 벗어버리고 이 세상을 향해 직언을 쏟아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담아냈고, 음악적으로도 우리의 전통 악기와 서양의 포크 음악이 결합되면서 보다 강렬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앨범엔 타이틀곡 ‘아 대한민국’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대한민국을 노래했지만 정태춘은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라고 노래하며 이땅의 민중은 배제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비판했다. ‘형제에게’라는 노래를 통해 “아~ 묶여서도 통일이라네, 다시 만나야할 형제 있으니, 아~ 갇혀서도 해방이라네, 조국의 역사로 살아 숨쉬니”라며 조국의 통일과 해방을 갈구했다.
특히 ‘우리들의 죽음’엔 정태춘이 사전 검열에 저항하며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것이 무언인지 잘 드러나 있다. 이 노래는 맞벌이 영세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에 집에서 놀던 아이들이 불이나 집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다룬 노래다. 두 아이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가수 박은옥, 정태춘ⓒⓒ민중의소리 김철수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 노래 ‘우리들의 죽음’ 가사 마지막 부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이 노래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공연윤리심의위원회는 “어떤 가정의 부주의가 우선된 불행한 사태를 굳이 이념적인 사회문제로 결부한 것은 대중가요로 부적당하므로 전면 개작 바람”이라고 거부사유를 밝혔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에 실린 노래 가운데 심의를 통과한 노래는 단 한곡에 불과했다. 지금도 그때도 사회가 책임져야하는 우리 아이들과 이웃들의 불행과 죽음은 ‘어떤 가정의 부주의’로 취급되며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만다. 정태춘은 우리나라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이기를 바라며 그 모든 것이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를 내기위해선 심의제도와 맞서야했고, 결국 정태춘은 정공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모해보이는 도전은 결국 세상을 바꿨다. 그의 노래는 세상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무기가 됐다.
아 대한민국
우리들의 죽음
형제에게
일어나라 열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