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음악산책 28. 뒤집어진 세상을 향한 신랄한 풍자… 양병집 ‘넋두리’

   

양병집 1집 ‘넋두리’ⓒ기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뜨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 쉰다.”

 

대중들에겐 김광석의 노래로 잘 알려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노래 구절이다. 자동차는 두 바퀴로 가고, 자전거는 네 바퀴로 간다. 비행기는 물속으로 가고, 돛단배가 하늘로 날아간다. 뒤집힌 세상,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세상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노래는 원래 밥 딜런의 노래(Don’t think twice, It’s alright)다. 양병집이 1973년에 전국포크송콘테스트에 나가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불렀던 번안곡이다. 이 노래는 포크가수 양병집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이 노래는 이연실, 그리고 고 김광석이 부르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역(逆)’, 그리고 1974년 3월 발표한 1집 ‘넋두리’ 등 양병집은 외국 포크송에 사회를 비판하는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를 발표했다. 양병집의 시도는 당시 유신정권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양병집이 1집 ‘넋두리’를 발표하기 불과 2달 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양병집이 1집 ‘넋두리’는 발매 3개월 만에 전량 수거 조치를 당했고, 줄줄이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유신정권은 왜 그의 노래를 금지했을까? 담배를 물고 삐딱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1집 ‘넋두리’ 표지부터가 유신정권에겐 불경스럽고, 불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양병집의 가사엔 당시의 시대상과 이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가득 담겨 있다. ‘서울하늘’이란 노래에선 “나도 돈 좀 벌고 싶어서나도 출세 좀 하고 싶어서/일자리를 찾아봤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습디다/나는 내일 떠날랍니다 나는 내일 떠날랍니다”라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잃어버린 전설’에선 “휘몰아치는 바람속에/참다 참다 스러져간/아름다웠던 꽃송이야/누구위해 태어난 꽃송이던가/누구위해 자라온 꽃송이던가”라고 노래하며 최루탄 가득한 거리에서 스러져간 청춘들을 기억했다. 반공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시절 그는 ‘너와 나의 땅’이란 노래를 통해 “이 땅은 내 땅 이 땅은 너의 땅 백두산에서 제주도 까지/먼 엣날 부터 먼 훗날까지 이 땅은 너와나의 땅 아침해 뜰 때/황소를 몰고 둑길을 지나 밭에나가면 파란하늘에 제비날으며/즐거운 노래 부른다 이 땅은 내 땅 이 땅은/너의 땅 백두산에서 제주도 까지 먼 옛날부터 먼훗날까지/이 땅은 너와 나의 땅 메마른 땅에 새싹이 나고 돼지우리에 개나리 피니/동네아이들 모두 나와서 즐거운 노래 부르네”라며 하나된 나라를 꿈꿨다.

 


이런 양병집의 목소리가 유신정권에겐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금지곡’이란 딱지가 붙어야만 했다. 사회와 음악에 회의를 느끼던 양병집은 지난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도 그는 음악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고, 1980년대 말부터 수많은 금지곡들이 풀리면서 음악적 표현이 자유로워질 무렵이던 지난 1999년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영주권을 영구 반납하고 조국에서 음악을 다시 하겠다고 결심하고 귀국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으로 다시 고국에서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2005년엔 일곱 번 째 앨범을 통해 그의 지난 음악들을 다시 복원해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초 ‘2015 타복네’ 공연을 열며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항과 풍자,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를 이곳에 소개한다.

   

역(逆)


서울하늘


소낙비


타복네


잃어버린 전설


나는 보았지요


너와 나의 땅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