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등대와 무릉계곡: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의 무릉계곡은 삼화사 서쪽에 금란정이라는 정자 부근에 수백 평의 넓은 암반이 있고 군데군데 맑은 못을 이루어 절경을 이룬다.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4에 달하는 계곡으로,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백두 대간의 두타산(頭陀山)과 청옥산(靑玉山)을 배경으로 형성된 곳으로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폭포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2,000여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무릉반석에는 이곳을 찾았던 많은 시인 묵객들의 기념 석각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선조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고, 푸른 못 등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하였고,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은 소()라는 전설이 있는 호암소가 계곡 입구에 있고, 한말 유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금란정이 있다. 용추폭포(龍湫瀑布)와 쌍폭(雙瀑)가 장관을 이룬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200825일 명승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고사성어 ‘무릉도원’의 유래: 중국 진나라 때 무릉이라는 곳에 한 어부가 살았어요. 어느 날, 고기를 잡던 어부는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작은 산 하나를 발견했어요.


“야, 이런 곳이 있었네. 고기잡이를 오래 해도 이런 곳은 처음 보네.”

자세히 살펴보던 어부는 그 산 아래에 작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어요. 조심스레 동굴을 빠져나가자 야트막한 언덕과 연분홍빛으로 피어 있는 복숭아꽃, 그 사이사이로 자그마한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졌어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 전쟁을 피해 그곳으로 숨은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는 아주 행복해요.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바깥세상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어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주었어요.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작은 동굴을 빠져나왔어요.

“다음에 또 찾아오려면 길목마다 표시를 해 둬야겠다.”

하지만 어부가 표시하려고 보니, 어느 길로 나온 것인지 도대체 길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 뒤로 속세와 동떨어진 새로운 세상이나 아름다운 곳을 가리켜 ‘무릉도원’이라고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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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등대와 담화마을 길] 묵호 등대와 논골담길이 있는 담화마을은 묵호항과 시원한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곳---묵호항 인근마을로 논골마을은 1941년 개항하여 동해안 대표적인 어업전진 기지였으며 영화촬영지로 유명하다.

 

2010년 묵호를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논골담길은 묵호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내 묵호의 대표관광지가 되었다.

 

묵호(墨湖)지명은 조선후기 순조때 큰 해일로 사람들이 굶주림을 구제하고자 당시 파견 나온 이유옹부사가 이곳의 물이 검고 바다가 검고 물새도 검다고 하여 먹 묵()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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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정과 무릉반석] 무릉계곡 매표소를 지나 다리를 하나 건너면 곧 넓디 넓은 반석을 만나는데, 이곳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반석 위에는 학문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도대체 이곳에 한시와 이름을 새긴 사람들은 누굴까?

 

조선왕조 500년 역사는 쇠퇴해 가고 외세의 횡포가 날로 어지로운 때에, 울분을 달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지방 선비들이 금란계라는 모임을 결성(1903)하여 활동하였는데, 무릉반석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은 바로 그 계원들의 이름이다.

 

무릉반석 옆에 있는 금란정도 그런 배경으로 세워진 정자인데, 여기에도 계원들의 이름이 걸려있다.

 

이와같이... 무릉반석에 새겨진 `이름석각`들은 단순한 이름석자가 아니라, 금란계원들의 `곧은 결심`을 후세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웅변`인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보면 꽤나 큰 글씨로 새겨진 초서가 보인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지금으로부터 430여년 전, 조선의 4대 명필 양사언이 이곳에 왔다가 그 풍광을 칭송하여 남긴 글인데, 관동의 제일가는 명작으로 꼽히며, 이 글씨를 썼을 때 그 필력에 감응하여 산천이 사흘 동안 흔들렸다고 전해진다.

 

그 의미를 해석하면, 여기는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 열리네.라는 뜻이다.

 

이 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석에 올라 글자 가까이에서 보지말고, 금란정 바로 옆에 무릉 반석으로 내려가는 길 왼편에 보면, 몇 사람 앉을만한 좌대 같은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서 바라보면 무릉반석이 한눈에 아주 잘 보이며, 특히 양사언의 초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아마, 이곳을 즐겨 찾았던 그 옛날 선비들도 여기서 지그시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으리...

 

양사언의 글씨 바로 아래에는, 이조중기의 학자 유한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게 보인다.

 

이 글자도 200여년 전에 새겨진 것인데, 아주 깊게 새겨져 있어서 지금도 또렷하다.

 

무릉반석은 이렇게, 옛날엔 대학자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요, 난세엔 울분을 달래던 선비들이 찾던 곳인데, 지금은 또 이렇게 우리를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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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三和寺)]: 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84(삼화동 176). 642(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라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642(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의병(義兵)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鐵佛), 3층석탑 및 대사들의 비()와 부도(浮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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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무릉계곡 입구인 삼화사 서쪽 2.5쯤에 있는 용추폭포는 청옥산(1,403.7m)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상, , 3개의 항아리 모양의 깊은 바위용소로 되어 있다.

 

용추폭포 아래(70m) 위치한 쌍폭포는 수원이 마치 하늘로 착각할 정도로 높고 아름다우며,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박달계곡의 물이 이곳에서 만남은 마치 자연의 음양의 섭리와 순리를 나타내는 듯하며 용추폭포와 함께 무릉계곡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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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