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이석민
햇살은 내 그림자를
선명히 땅바닥에 눕히는데
그림자 위로 흥건히
쏟아지는 빗줄기
그 지나가는 비를
맞으며 생각한다
살면서 준비하고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출장 중 걸려 온
어머니 입원 소식이나
지친 몸 늘어뜨린 휴일 오후
전해 온 친구의 부음
말 한 마디 툭 던진 것이
큰 다툼으로 돌아오는 일상
생각지도 않았던 경품 당첨이나
잊혀져 가던 사람과의 만남
빗줄기에 뜰 수 없는 눈을
깜박이며 보는 풍경엔
선명한 듯 흐릿하게 나타나는
깨우침의 무엇이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왔다가
떠나 가 버린 사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