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山水의 새로운 樣式定型化成功重鎭 박항환(Park, Hang Hwan)

   원문:  http://galleryartkorea.kr/Main/Main.asp?BK_Main=200507&GotoPage=200507/11/12/200507111212





김남수 /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예술양식 가운데 근간을 이루는 소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산수화가 불변의 화목 (畵目)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치 한국화가로 입신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산수화를 이수를 하고 산수화가로 명실상부하게 공인을 받을 때 한국의 화가가 되는 그런 수순이 관행처럼 지켜져 왔다. 그 까닭은 농경사회로 부터 산수경은 우리네 조상님네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본향이었다. 한마디로 산수를 떠나서는 하루도 생애를 살아 갈 수 없는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온 것이다. 산신께 풍년을 기약하는 것도 그렇고 성황님께 기우제를 드리는 등 우리의 기복신앙도 산과 물()에 의지를 해왔다. 조선시대의 우리의 선배작가들 가운데는, 그리고 근대에 이어지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조형양식, 사투리적인 자기언어를 만들어낸 화가만도 상당수가 있다. 가령 겸제 정선, 오원 장승업, 허백년, 이상범, 노수현, 허건 등은 각기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드는데 성공한 미술인들이다. 현역 작가들 가운데도 상당수의 화가들이 자기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산수화의 심층연구 등 독자적인 자기양식을 만들어낸 원로, 중진, 중견 등 상당수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강능일우> 42 x 55cm

  

이번호 표지작가로 선정된 전정 박항환은 한국산을 주제로 한 일관된 작업을 해 왔다. 마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후 자기를 길러준 고국을 버릴 수 없듯이 그는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집요하게 화폭에 담아왔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는 현대미술의 태동기여서 서구주의가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 미술인들은 방향타를 잃고 갈등과 혼돈기를 맞았다. 당시 박항환은 사숙에서 스승에게 사승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최후의 보루처럼 지켜왔다. 작가는 초기 산수화의 연찬기에도 오히려 산수화 작업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점진적인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餘秋> 31.5 x 34.5cm / <松下> 51 x 35cm

 

그의 지론을 소개하면 근대화라는 미명 때문에 우리의 안방까지 서구화로 자리매김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다고 조상이나 선배가 뿌려준 씨앗이나 핏줄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 현란한 조형이론으로 위장되고 과학화된 물량주의적인 서구식 모더니즘보다는 우리 미술의 창조적인 계승과 발전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요, 과제기 아닌가 생각해요. 해학과 익살, 관용과 용서의 미학이 바로 우리 미술의 사상이자 정신이죠라고 신념을 펴는 그는 이어 서양화의 파렛트 대신에 먹과 벼루를 선택한 것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요, 나의 길은 숙명처럼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주장하는 박항환의 신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연을 거스른 적이 없고, 인간을 버린 적이 없는 우리 미술의 전통회화사상과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생명을 가장 중히 여기는 값진 미술의 본령이며, 한국미술은 이러한 철학 속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그는 불과 나이 19세 되던 소년시절 최연소 작가로 국전에서 입선을 따내어 화단에 등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기량을 배운 것이 아니요, 정신과 인품을 배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의 자신을 있게한 스승에게 한없는 홍은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群松圖> 365 x 60cm

 

  

<여름> 51 x 35cm / <향촌> 48 x 40cm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의 심오한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상당기간 오래 계속되어 왔다 . 그 후 그가 선회한 것은 현장사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진경산수화 작업이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생동감, 인간으로서의 삶을 의식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었다. 이른바 사생현장에서 피사체를 생생하게 화폭에 담는 희열을 만끽했다.


하지만 장황하고 실명적인 묘사는 일순에 지나지 않았다. 이른바 가시적인 현장세계를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에서의 한계 같은 것이 그의 작업에 침체를 불러들였다. 이 무렵 그는 많은 갈등과 방황을 하면서 몸부림했다. 장황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덧살이 주절주절 왜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서 그가 탐색한 해답은 소재의 정일(靜逸)한 생략과 축쇄와 응집이었다.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의 천착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순도 높은 신선감을 더해 갔다 . 과장이나 허세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내 버린 것이다. 이번 그가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특히소나무연작들은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한국의 많은 이미지와 향수를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얼핏 보면 작가의 영감이 농축된 최소한의 축약을 통하여 작가의 조형언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지금도 우리의 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시골길이나 강변, 암벽과 계곡의 모습, 듬성듬성 강과 바다 위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그 위의 점경(點景)인물, 태공망의 낚시꾼과 일엽편주 등이 수묵기조의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파묵과 갈필, 파필과 발묵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되는 붓작업은 그 동안 그가 갈고 닦은 숙련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그의 작품경향은 작품의 완성을 위해 많은 시추작(試錐作)과 그리고 완성작까지 버린다. 결코 자신이 흡족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는 미완성작업은 수십점의 같은 소재에서 한 점의 작품을 걸러내는 어려운 작업공정을 이어 가고있다 . 공인으로서의 세심한 배려와 책임을 느끼는 양식있는 작가 박항환은 예술품은 작가의 분신이요, 자화상이기 때문에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조형정신은 요즘 무책임하게 작품을 다작하여 양산해내고 남발하는 상업주의의 세시풍속과는 차별과 위상이 크게 다른 화가다. 이번 작품전이 또 한 번 그가 도약하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結論

전정 박항환의 작품세계는 뒤 틀리고 비틀어진 토속적인 한국의 소나무를 흉중일기(胸中逸氣)처럼 내밀하게, 최소한의 언어로, 축쇄해버린, 간결하면서도 표현질의 진수만을 표출해 내는 개성주의가 강열한 자기만의 예술양식을 완성해 내고 있다. 화가에게 자기만의 트레이드가 형성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가 형상화하고 있는 한국의 산수화와 소나무들은 그만의 독자적인 올리지날리티요, 가장 사투리적인 박항환의 예술양식인 것이다. 그가 한국산수의 이미지 창출과 새로운 형상의 전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고 몸부림할 때 마다, 필자는 창조적인 그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봤고 그때마다 그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특히 오는 9월 제2회 북경 비엔날레에 선정된 (이종상, 이철주, 김병종, 박항환) 것이라던지, 오는 923일 중국 항주의 塘雲미술관(박행보, 김영철, 박항환) 등에 초대된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한국미술이 국제감각 등 한국성이 세계의 양식과 접목되면서 공감을이루고 있음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미술이 세계의 양식과 공존하고 국제질서의 반열에 낄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미술은 우리만이 향유할 수 있는 한낮 국제적 고아에 불과한 것이다. 한마디로 회화의 본질과 양식에서 세계질서와 공존이 가능한 그런 자구적인 노력과 창작정신이 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삼월> 60 x 42cm


 <松鶴圖> 51 x 35cm

  

<유달소견> 66.5 x 36cm

 

이상의 시각에서 볼때 전정 박항환의 예술은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한국화가라고 볼 수 있다 . 앞으로 작품세계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는 자못 궁굼하지만 많은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것 같다.


田丁 朴亢煥1947년 유서 깊은 예향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남단 아열대 기후로서 천혜보고가 많은 고장으로 소치 허유,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소전 손재형 등 한국 화단의 거목들을 배출한 고장이며, 또한 유림과 남도창, 선비 등이 배출된 이름 그대로예향이다. 전정 박항환은 남농 허건을 스승으로 사사를 했으며, 도촌 신영복 문하에서 사승을 했다. 그는 불과 19세의 나이로 국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40년의 외길을 걸어오며 한국화단의 확고한 重鎭 자리를 굳혔다.

 

  

<봄날에> 51 x 35cm / <바라> 34 x 39cm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 했으며 후학양성에 진력해온 그는 역량있고 유능한 후배작가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동안 국내외 초대전 등 많은 작품전을 가져왔으며 20여회의 개인 발표전을 가졌다.


<여름> 69.5 x 35cm

  

<휴식> 66 x 40cm

   

  

<파초> 31 x 34.5cm / 기다림 51 x 35cm

   

<秋夜> 44 x 35cm

   

<迎春> 51 x 36cm

  

 

<고향> 180 x 60cm / <고향> 51 x 35cm


 

  

<겨울> 53 x 37.5cm / <세월> 60 x 180cm

 


<赤松> 51 x 35cm / <> 48 x 48cm

  

<> 44 x 35cm

  

자연과의 탐색을 통해서 서정과 향수를 담아내

 

운림산방의 문하인 남농선생과 도촌선생에게서 사승한 田丁 박항환 의 개인전이 갤러리 상에서 열렸다. 문인화를 비롯한 산수화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그는 30여 년 동안 점진적인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른바 신자연주의 산수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굳혀가고 있는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에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그의 작업과정을 상술해보면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의 심오한 진실을 캐내려는 작업을 추구하면서 자연이 살아있는 생동감, 인간으로서의 삶을 의식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조형행위를 통한 화혼(畵魂)으로 불살랐다. 이른바 사생현장에서 생생한 피사체를 화폭에 담는 희열을 만끽하였다. 그 후 그의 작업은 탐색을 통해 소재의 생략과 감필, 축쇄와 응집을 통해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한마디로 과장이나 허세 ,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 내버리고 작가의 영감이 농축된 조형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 파묵과 갈필, 발묵법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해 낸 붓작업은 작가의 원숙한 기량을 읽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평하고 있듯이 그의 작업은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자연을 농축된 조형언어로 화폭에 펼쳐 보이고 있으며 동양미술의 사유철학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앞으로도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작가만 의 진수를 보여주기 바란다.

- 편집부 -

 

<고향> 53 x 35cm

 

  

<洗心圖> 51 x 35cm / <夜話> 51 x 35cm

  

조선 소나무

박시교 / 시인, <유심>주간

 

오오래 벼른 꼿꼿한 정신의 붓끝으로

마침내 한 그루 소나무를 세웠구나

그아래

話者처럼

홀로 지켜선 이여 ,

마치 카랑한 기침소리가 묻어날 것 같은

餘白에 드리운 곧은 가지 끝 푸른 서슬

옹이도

아픈 세월의 결도

다 보듬어 안았다 .

무얼까 , 저처럼 차고 넘치는 到底한 기운

다스리고 갈무리할 힘 펼치게 한 것은

濃淡

이 세운 산 높고

강은 또 끝이 없어라 .

  

<洗心圖> 53 x 35cm

   

<소나무 이야기> 51 x 35cm 

 

<太山河海> 51 x 35cm

  

전정 박항환(田丁 朴亢煥)



   

南農 許楗 先生 , 稻村 辛永卜 先生 門下

1947 전라남도 진도 出生

1975 지방작가 초대전 출품 (문예진흥원)

1979 한국의 자연전 초대 출품(국림현대미술관)

1982 문인화 연구회전(백상기념관)

개인전(미도파화랑)

1983 KBS초대 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

국전 출신 작가회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3~91 현대미술 초대전(국립현대 미술관)

1984 개인전(롯데미술관)

서울신문사 정예작가 초대전(경인미술관)

1985~96 국제예술문화 교류전(한국,일본,중국)

1986 86한국화 58인전(중앙청역 지하미술관)

상원전(동국대학교 개교80주년 기념 : 동덕미술관)

1987 인천광역시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88 한국현대 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

전남도전 심사위원 역임

88서울 회화제, 롯데미술관초대

1989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0 개인전 (백악미술관)

1991 미국LA타이그레스화랑 초대전

동아일보 문화센터 강사 역임

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3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 전국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5 한국전통산수화전(국립현대미술관)

한국자연대전(한원미술관)

1996 전남도전 심사위원 역임

의재미술상 기념 초대전(광주 문화예술회관)

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7 전국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8 서울신문사 초대 유명화가가 본 서울 한강 환경전

개인전(갤러리 상)

1999 1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개인전(목포문화방송국 미술관)

2000 전국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개인전(갤러리 상)

2001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2002~03 전국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Korean Arts Festival(예술의 전당)

22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2003 라혜석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안견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2004 의재 허백연 예술상 수상자 선정 운영위원 역임

중견작가 순회전

2005 ·러 아트페어 (세종문화회관)

2회 북경 비엔날레 출품작가로 선정

()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현대한국화협회이사

 

주 소 120-77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1455 벽산APT 114601

전 화 02-395-5526 H.P:011-207-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