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추석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는 저는 바쁜 회사일 때문에 잠시 출장을 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려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릉”

“네? 뭐라고요? 아버지가 회사에 나오셨다고요?”

 

 

거의 2년 가까이 중환자실에 있는 어머니 병간호를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불쑥 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찾아온 겁니다.

걱정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 오시면, 보이는 사람들을 무작정 붙잡고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너를 위해서라도 네 엄마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엄마가 병실에 있는 것이 마치 당신이 잘못한 양 제게 미안해하셨습니다.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면서 운이 좋아 제법 돈도 벌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병원비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러운 짐이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아버지는 점점 제게 기대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의논을 했습니다.

부쩍 잦아진 아버지의 전화에 안부를 채 묻기도 전에

늘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끊어버렸고,

빚쟁이에게 쫓기듯 그 상황만 냉정하게 넘기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불쑥 회사에 아버지가 찾아온 겁니다.

아버지는 직원들을 붙들어 놓고 당신의 신세를 하소연 하셨나봅니다.

 

 

“너무 안쓰럽더라.. 내가 너희 아버지께 회사 돈으로 50만 원 드리라고 했어.”

 

 

결국, 직원 중에 고교 동창이었던 친구가 아버지가 안쓰럽다며 회사 돈 50만 원을 용돈 하시라고 드렸다고 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아니,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습니다.

 

‘회사의 대표인 나는 무슨 꼴이 되는가?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저기 아버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것 아닌가?

그동안 어머니 병원비에 아버지 생활비까지 아낌없이 드렸다고 생각 했는데…….

아무리 친구가 챙겨준다고 해도 대표 이사인 아들을 위해서 받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 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무작정 화를 냈습니다.

 

 

“왜 회사까지 불쑥 찾아와서 이러세요? 아들 입장은 생각지도 않으세요?”

“....”

“제가 돈을 드리잖아요, 그걸로 부족하세요? 그렇게 돈이 좋아요? 네?”

“미... 미안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새벽에 부재중 전화로 아버지의 전화가 여러통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죄송하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닌가.

 

 

“빨리 와보세요!”

 

 

빨리 와보라는 외침에 무작정 아버지께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병문안을 가던 중,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순간 아버지께 화냈던 일들이 떠오르며, 마음 속으로 ‘아버지’를 수없이 되뇌었지요.

    

 

 

 

휴대전화에서 1번을 누르니 제 이름이 떴다고 합니다.

 

전화에 저장된 제 이름은 ‘사랑하는 아들.’

 

아버지의 휴대전화 통화목록에는 온통 제 이름뿐이었습니다.

 

 

 

 

통화시간 00:00

 

 

통화를 눌렀다가 종료를 눌렀다가,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저와 통화연결을 했지만,

저와의 통화는 고작 10초...

점점 짧아지는 통화에 그날도 아버지는 주저주저하다 회사로 찾아왔던 겁니다.

 

결국, 아버지의 살아 계신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아들인 내가 아니라, 회사의 직원들이었습니다.

아들에게 그렇게 혼나시고 맛있는 음식 제대로 사 드시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임종도 못 본 불효자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아버지께 몇 번이고 전화를 했습니다

내 삶의 1번이었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은 하늘에서 하얀 함박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집에 가서 집기들을 정리하는데 통장 몇 개와 작은 메모장이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글씨체로 나와 통화한 날과 내용, 그리고 내가 아팠던 날, 내 목소리가 지쳐서 힘들어 했던 날, 그리고 내가 용돈 드리고 즐거워했던 날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지치지 말자. 외로워하지 말자.

내가 힘들어하면 준수(가명)가 더 힘들다. 그러니까 기운내자.』

 

아..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셨구나...!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텅 빈 작은 아파트를 둘러보니 왜 그리 휑하게 느껴지던지…….

아버지가 혼자 외로워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고 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갔다가 혼자 외로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의 적막감과 쓸쓸함을 생각하니 자식으로서 죄스러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명의의 통장에는 잔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한 개의 통장……. 예금주가 딸 아이 이름이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났습니다.

통장에는 돌아가시기 전날 입금한 돈 50만 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지금도 추석이 돌아오는 이맘때쯤이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제 마음 속 단축번호 1번...

 

그 뜨거운 사랑을 제가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찾아 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이곳에 들어와 벌써 2년 넘게 성묘를 못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매년 아버지와 약속합니다.

‘내년에는 꼭 갈게요.’라고. 그 소원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며...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글= 성동구치소 000

이 글은 ‘새길(통권 413호)’에 실린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 중에 약 1/4은 3년 내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복역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수용자 수가 4만 8천여명에 달합니다. 이 중 1만 500여명(22.7%)이 3년 내에 재복역하는 인원입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재범방지 사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수형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 취업 알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형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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