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9) 사가라하와(Sagarhawa) :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에 의한 석가족(釋迦族, Śākya)들의

대학살(大虐殺)과 멸망(滅亡)

 

Greater Lumbini Buddhist Circuit (GLBC) in Nepal

 

사가라하와(Sagarhawa)틸라우라코트(Tilaurakot)의 왕궁(王宮) 터에서 약 8 km 떨어져 있고, 타울리하와(Taulihawa)<팔리어(Pali)로는 카필라바투(Kapilavatthu)로 알려져 있답니다.>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으로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들 비두다바(Pali: Viūabha, Sanskrit: Virūḍhaka, 毘琉璃: 비유리)<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사위성(舍衛城)의 왕(). 프라세나짓(Sanskrit: Prasenajit, Pali: Pasenadi, 波斯匿王: 파사니왕)의 아들> 복수심(復讐心, revenge)에 의해서 대학살(Massacre, 大虐殺)당한 곳으로 확인되었답니다.

네팔(Nepal)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지역의 유적지(遺跡地) 분포도(分布圖)

 

사가라하와(Sagarhawa)의 위치<네팔(Nepal)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지역의 유적지(遺跡地) 분포도(分布圖)>

 

사가라하와(Sagarhawa)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대학살(Massacre, 大虐殺)당한 장소(場所)>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의 비두다바 왕(Vidudabha, 毘琉璃王:비유리왕)에 의하여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들이 대학살(Massacre, 大虐殺)당한 이후, 숭고한 석가족(釋迦族, Śākya)의 기억속에서 당시 희생(犧牲)당한 그들의 자손(子孫)들이 이곳 사가라하와(Sagarhawa)수천 개(數千個)의 스투파(stupas, )를 세웠답니다.

룸부사가라(Lumbu Sagar)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사가라하와(Sagarhawa)는 1,059 피트(feet)의 길이(long)225 피트(feet)의 너비(wide)의 고대유적지(古代遺蹟)로서, 주로 스투파(stupa, ) 및 수도원(monastery, 修道院)의 유적(ruins)은 연못(pond)의 서쪽과 남쪽 비탈진 사면(斜面)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네팔정부(Nepal政府)를 대표하여 1897 년에 독일(獨逸)의 저명한 고고학자(考古學者) 푸헤러(Dr. Fuhrer, 1853~1930) 박사가 사가라하와(Sagarahawa)에서 첫 번째 발굴작업(發掘作業)을 수행했는데, 그 당시 가장 큰 정사각형 스투파(stupas, )의 네개의  면(四面, four sides)에 수천 개(數千個)의 작은 스투파(stupas, )대칭행(對稱行)으로 배열되어 있는 유물(遺物)을 밝혀 냈답니다.

중국(中國) ()나라의 고승(高僧) 현장(玄奘, Heuen Tsang, 602~664) 스님은 사가라하와 (Sagarahawa)의 방문과 그 곳에 수천 개(數千個)의 스투파(stupas, )의 존재를 묘사(描寫)하면서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의 많은 사람들이 도살(屠殺, slaughter)된 곳으로 지적하고 있답니다

 

비두다바 왕(Vidudabha,毘琉璃王)이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을

멸망(滅亡)시켰다.

고대(古代) 인도(印度)코살라국(Kosala)의 왕() 프라세나짓(Prasenajit, Pasenadi, 波斯匿)아버지로 두었고,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비두다바 왕(Vidudabha,毘琉璃王)석가모니(釋迦牟尼佛, Sakyamuni) 붓다(Buddha)조국(祖國)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멸망(滅亡)시켰다.

 

석가모니(釋迦牟尼佛, Sakyamuni) 붓다(Buddha) 당시 기원전 7~5세기 북인도(北印度)는 앙가(Aga), 마가다(Magadha), 카시(Kasi), 코살라(Kosala), 브리지(Vajji), 말라(Mahlah), 체티(Ceti), 바차(Vamsa), 쿠루(kuru), 판찰라(Panchala), 밤사(Maccha), 슈라세나(Sūrasena), 아슈바카(Assaka), 아반티(Avanti), 간다라(Gandhāra), 캄보자(Kamboja) 16대국(Mahājanapadas)이 서로 쟁패(爭霸)를 벌이며 끊임없는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전쟁(戰爭)이 계속되는 불안과 고통의 세월이었고 각 나라 모두 전제군주(專制君主)의 폭정(暴政)과 수탈(收奪) 속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참담(慘憺)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답니다.

 

이 시기에 거부장자(巨富長者)들이 생겼고, 수많은 수행사문(修行沙門) 들이 있었던 시대였고 수많은 자칭 붓다(自稱佛陀, self-styled Buddha)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답니다.

 

붓다(Buddha) 시대의 16대국(Mahājanapadas)

 

석가모니(釋迦牟尼佛, Sakyamuni) 붓다(Buddha)는 본국(本國)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의 왕족(王族)뿐 아니라, 당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최대(最大)의 강국(强國)이었던 마가다 국(Magadha, 摩揭陀國)의 빔비사라(Bimbisāra, 頻婆娑羅) ()까지 그의 제자(弟子)로 교화(敎化)·개종(改宗)시켰고 코살라 국(Kosala, 憍薩羅國)의 파세나디(Pasenadi, Prasenajit, 波斯匿) ()도 교화(敎化)시킵니다.

 

프라세나짓(Prasenajit, Pasenadi, 波斯匿) 왕(王)쉬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에서 아난다 보리수(Ananda Bodhi Tree)를 심고 있는 장면<나바 제타바나 사원(Nava Jetavana temple)의 벽화(壁畫), 쉬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비두다바(Vidudabha,毘琉璃) ()이 태어나던 시기,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사위성(舍衛城)의 왕() 프라세나짓(Sanskrit: Prasenajit, Pali: Pasenadi, 波斯匿王: 파사니왕)은 용맹(勇猛)하고 박학(博學)하지만 난폭(亂暴)하고 잔인(殘忍)하였으며,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등의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을 복속(服屬)시켰답니다. 그리고 석가족(釋迦族)을 정략적으로 지배(支配)하기 위해서 석가족(釋迦族)의 왕녀(王女)왕비(王妃)로 맞으려 했답니다.

비두다바(Vidudabha,毘琉璃) ()출생의 비밀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사위성(舍衛城)의 급고독 장자(給孤獨長者 :  Sudatta, 梵語 "Anāthapiṇḍada")의 집에서는 5백비구(五百比丘)들에 대한 음식(飮食)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답니다.

그와 같이 비사카(, Pali: Visākhā, Sanskrit: Viśākhā)주)의 집에서도 그러했고,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프라세나짓 (Sanskrit: Prasenajit, Pali: Pasenadi, 波斯匿王: 파사니왕)의 궁중(宮中)에서도 또한 그러했답니다.

- () :

비사카(, Pali: Visākhā; Sanskrit: Viśākhā)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붓다(Buddha)와 그의 제자(弟子)들에게 공양(供養)을 많이 하여 시여제일(施與第一)이라고 불린 여자신도(女子信徒)<우바이(優婆夷, upasika)>랍니다. 앙가국(Anga, 鴦伽國)의 수도 밧디야(Bhadaiya, 婆提)<현재 네팔(Nepal) 동남쪽 사가르마타 주(Sagarmatha Zone)에 있음>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일찍이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였고, 코살라(Kosala, 憍薩羅王國)의 수도인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 교외에서 미가라(Migara) 장자(長子)의 집에 며느리로 들어갔답니다.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와 관련해 주목할 내용은 자이나교(Jainism)를 신봉하던 시집을 불교(佛敎)로 개종(改宗)시키는 전법(傳法) 원력행(願力行)이랍니다. 미가라(Migara) 장자(長子)는 아들 푼나왓다나(Punnavaddhana, 鹿子)와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의 결혼(結婚)을 축하하기 위해 5백 명의 수행자(修行者)를 집으로 불러 공양(供養)하였답니다.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는 초대받은 수행자(修行者)들이 불교신자(佛敎信者)가 아니라 알몸으로 생활하는 나형외도(裸形外道)< 자이나교(Jainism)의 수행자(修行者)들임을 알아채고, 시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렸답니다. 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붓다(Buddha)님에게 귀의(歸依)해 정법(正法)을 실천할 것을 주창했답니다.

미가라(Migara) 장자(長子)는 불교(佛敎)에 대해 별 관심(關心)이 없었으나, 며느리의 청을 들어 다시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붓다(Buddha)와 그의 제자(弟子)들을 초대(招待)하여 공양(供養)을 올린 뒤 외도(外道) 수행자(修行者)들의 방해(妨害)를 무릅쓰고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붓다(Buddha)와 가르침을 들었답니다. 붓다(Buddha)의 가르침에 감복(感服)한 미가라(Migara) 장자(長子)는 자신을 진리(眞理)의 길로 인도(引渡)한 며느리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를 가리켜 ‘미가라의 어머니[鹿子母]<Migāramāta, literally "Migāra's mother">라 하였답니다.

뒤에
수다타(Sudatta須達多) 장자(長子)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붓다(Buddha)를 위해 기원정사(祈園精舍)<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를 지을 때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는 많은 돈을 내놓았답니다.

뒤에 비사카(,: Visākhā;: Viśākhā) 18십만 금()을 들여 목련(目連) 존자를 감독자로 하고 기원정사(祈園精舍)의 동쪽에 2층의 대강당(大講堂)을 지어 붓다(Buddha)에게 바쳤는데, 뒤에 이를 동사(東寺), 동원정사(東園精舎, Pubbarama Monastery),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 Migāramātupāsāda)<literally, "Migaramata's Palace">이라 한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이것은 기원정사(祈園精舍)와 함께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에 불교(佛敎)를 전파하는 중요 근거지가 되었답니다.

집이 큰 부자(富者)이므로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붓다(Buddha)와 그의 제자(弟子)들에게 공양(供養)하기를 힘썼답니다. 어떤 때는 일생 동안 비구(比丘)에게 우욕의(雨浴依), 비구니(比丘尼)에게 수욕의(水浴依), ()난 이에게 수병식(隨病食), 병간호(病看護)하는 이에게 밥을, 손님 비구나 멀리서 온 비구니들에게 쌀죽을 공양하기로 발원하여 붓다(Buddha)가 수희(隨喜)하는 게()를 주었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 파사니왕)의 왕궁(王宮)에서는 갖가지 맛난 음식(飮食)을 주었지마는 거기서는 아무도 비구(比丘)들에 친절(親切)하지 대()하여 주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비구(比丘)들은 그 음식(飮食)을 왕궁(王宮)에서 먹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급고독 장자(給孤獨長者 :  Sudatta, 梵語 "Anāthapiṇḍada")나 비사카(Visākhā, Viśākhā)나 기타의 친()한 사람 집에 가서 먹었답니다.

 

어느 날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은 보시(布施)할 만한 물건(物件)이 들어왔으므로 그것을 비구(比丘)들에게 보시(布施)하기 위해 왕궁식당(王宮食堂)으로 가져가게 했답니다. 그런데 왕궁식당(王宮食堂)에는 비구(比丘)들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을 듣고. ()은 물었답니다.


「그들은 다 어디 가 있는가?
「각자 친(
)한 사람 집에 가서 먹고 있습니다.
(
)은 아침을 먹고 붓다(Buddha, 佛陀)님께 나아가 여쭈었답니다.
「붓다(Buddha,
佛陀), 어떤 음식(飮食)이 가장 맛나는 것입니까?
「대왕(
大王), 친애(親愛)가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맛이 신(sour) ()이라도 친애(親愛)로써 주면 그것은 맛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붓다(Buddha,
佛陀), 비구(比丘)들은 누구와 가장 친()한 사이입니까?
「비구(
比丘)들은 그들의 친족(親族)이나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들입니다.

 

그래서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은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 처녀(處女)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내 첫째 왕비(王妃)로 삼아야겠다. 그렇게 하면 비구(比丘)들은 그 친족(親族)처럼 나와 친()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왕궁(王宮)으로 돌아와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석가족(釋迦族) 왕국(王國)의 수도(首都)카필라성(Kapila) 또는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으로 사람을 보내어 「처녀(處女) 한 사람을 내게 주시오. 나는 당신네와 친척(親戚)이 되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은 오만(傲慢)하였기 때문에 코살라 왕국(Kosala, 憍薩羅王國)에 지배(支配)당하면서도 내심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얕잡아 보고 있었답니다. 또 이미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의 권력(權力)이 강()한데 왕녀(王女)까지 시집을 보내면 장차 코살라 국(Kosala, 憍薩羅王國)이 샤카족(釋迦族, Śākya , Sākiya)을 지배(支配)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의 왕녀(王女)혼인(婚姻)을 요청해 오자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모여 의논(議論)했답니다.

 

「우리는 코살라 왕(Kosala, 憍薩羅王)의 명령(命令)이 행해지는 곳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젊은 여자(女子)를 주지 않으면 반드시 큰 복수(復讐)가 있을 것이요, 또 만일 준다면 우리 족통(族統)은 멸()하고 말 것이니 어쩌면 좋을까?
그 때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붓다(Buddha)의 사촌동생(四寸同生)>그들에게 말했답니다.

「걱정할 것 없다. 내게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주)라는 딸이 있는데 그는 나가문다(Nāgamundā)라는 노예(奴隸)의 소생(所生)이다. 나이는 열여섯(十六歲), 다시 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처녀(處女)로 그 아버지로 말하면 찰제리족(刹帝利族)이다. 이 처녀(處女)를 찰제리족(刹帝利族)의 딸이라 하고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에게 보내자.

- 주(註):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의 바사바(Vāsabha)는 비천(卑賤)한 종족(種族)이라는 뜻이고, 카티야(Khattiyā)나가문다(Nāgamundā)라는 노예(奴隸)의 딸이랍니다. 노예(奴隸)의 딸이므로 카스트 제도(Caste制度)에서는 노예(奴隸)와 같은 신분(身分)으로 보았답니다당시 인도(印度)의 네 종족(四種族)이 있는데, 찰제리족(刹帝利族), 바라문족(婆羅門族), 비사족(毘舍族), 수타라족(首陀羅族) 등으로서, 찰제리족(刹帝利族)은 왕()의 종족(種族)이며, 바라문족(婆羅門族)은 청정(淸淨)한 수행(修行)을 닦는 종족이고, 폐사족(吠奢族)은 장사꾼의 종족이며, 수다라족(戍陀羅族)은 백정(白丁)의 종족이다. 앞의 두 종족은 귀(貴)한 종성(種姓)이고, 뒤의 두 종족은 천(賤)한 종성(種姓)이었답니다.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사람들은 모두 찬성(贊成)하고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사자(使者, messenger)들을 불러 말했답니다. 「좋습니다. 처녀(處女)를 드리겠습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런데 사자(使者)들은 「이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사람들은 그 출신(出身)을 매우 자랑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출신(出身)이다」하고 말하면서 실은 같지 않은 여자(女子)를 주는 사람들이다.<이전에도 이미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음식(飮食)을 먹는 여자(女子)를 데리고 가자.」고 의논했답니다.

 

그래서 사자(使者)들은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에게 말했답니다. 「우리는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당신네와 한 자리에서 음식(飮食)을 먹는 여자(女子)를 데리고 가겠습니다.<왜냐하면 인도(印度)의 카스트 제도(Caste制度)에 따르면 낮은 신분(身分)은 높은 신분과 같은 자리에서 음식(飮食)을 먹을 수 없답니다. 따라서 같은 자리에서 음식(飮食)을 먹는다는 것은 왕()과 같은 고귀(高貴)한 카스트(Caste)라는 뜻이므로 왕녀(王女)의 증명(證明)이 된답니다.>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사람들은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사자(使者, messenger)들에게 숙소(宿所)를 정해 주고는 또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 때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은 또 말했답니다.

 
「걱정할 것 없다. 나는 한 가지 방편(
方便)을 쓰리라. 당신들은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를 아름답게 꾸며 데리고 오너라. 내가 한 숟갈쯤 먹었을 때 「대왕(大王), 이런 왕()이 편지(便紙)를 보냈습니다. 이것을 읽어 보십시오.」하고 편지(便紙)를 보여라.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사람들은 승낙(承諾)하고 그가 밥을 먹고 있을 때 그 여자(女子)를 아름답게 장식(裝飾)하여 두었답니다.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이 「내 딸을 데리고 오너라. 나와 함께 식사(食事)하리라.」 하고 명령(命令)하였답니다.
석가족(
釋迦族, Śākya, Sākiya) 사람들은 그 여자(女子)를 장식(裝飾)하고 조금 어름어름하다가 데리고 갔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같이 식사(食事)하려고 같은 그릇에 손을 넣었다.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은 그녀와 함께 한 조각 음식(飮食)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집으려 할 때 그녀는 「대왕(大王), 이런 왕()에게서 편지(便紙)가 왔습니다. 이것을 읽어 보십시오.」 하고 편지(便紙)를 내놓았다.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은 그녀에게 먹기를 권하고는 오른 손을 그릇에 둔 채 왼손으로 그 편지(便紙)를 집어 읽었다. 그가 그 편지(便紙)를 자세히 읽고 있는 동안 그녀는 음식(飮食)을 먹고 있었다. 그녀가 식사(食事)를 마치자 그는 손을 씻고 양치질을 했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사자(使者, messenger)들은 그녀가 확실히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의 딸임을 확신(確信)하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그 녀의 출생비밀(出生秘密)을 알지 못했답니다.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은 많은 시중 꾼을 붙여 딸을 보내었답니다.

 

사자(使者, messenger)들은 그녀를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사위성(舍衛城)으로 데리고 가서 「이 처녀(處女)가 정당한 출신(出身)으로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의 딸입니다.」 하였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매우 기뻐하여 성내(城內)를 장식(裝飾)한 뒤에 산()처럼 쌓은 보물 (寶物) 위에 그녀를 세우고 관정식(頂式)을 하여 첫째 왕비(王妃)의 지위(地位)에 두었답니다. 그녀는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답니다.

 

비두다바(Vidudabha,毘琉璃)의 탄생

 

뒤 오래지 않아 그 왕비(王妃)<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는 임신(妊娠)하여 충분한 간호(看護)를 받았고, 열 달이 차서 황금색 왕자(王子)를 낳았답니다. 그 이름 짓는 달에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자기 어머니<태후(太后)>에게 사람을 보내어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 ()의 왕녀 (王女)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가 왕자(王子)를 낳았습니다. 이름을 무어라 하리까?」 하고 물었답니다.

 

그 편지(便紙)를 가져간 대신(大臣)은 원래 귀가 조금 멀어 있었답니다. 그가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어머니에게 가서 전()하자, 그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모든 사람을 능가(凌駕)하였다. 이제는 더욱 왕()의 총애(寵愛)를 받을 것이다.」 하였답니다.

이 귀머거리와 대신(大臣)은 발라바(Vallabha)<총애(寵愛) 받는 자>라는 말을 잘못 들어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증장(增長) 하는자>라 알고 왕()에게 가서 「대왕(大王), 왕자(王子)의 이름을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라 하라 하십니다.」 하였답니다. ()은 그것이 그 조상(祖上)의 종족 種族) 이름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라 명령(命令)하였답니다.

그로부터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일반 왕자(王子)와 같이 존경(尊敬)을 받으며 자라났답니다.

 

비두다바(Vidudabha,毘琉璃)의 어린 시절

 

7세 때에 다른 왕자(王子)들에게 외조부(外祖父) 집으로부터 코끼리(elephant)나 말(horse) 등의 노리개(toy)들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어머니인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에게 「어머님,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 외조부(外祖父) 집에서 선물(膳物)들을 가지고 오는데 내게는 아무것도 가져오는 이가 없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도 없습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가야, 네 외조부(外祖父)는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의 왕가(王家)로서 아주 먼 곳에 살고 계신다. 그래서 아무 것도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고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를 속였답니다.

 

다시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16세 되던 해에 그는 「어머님, 나는 외조부(外祖父)를 만나 뵈옵고 싶습니다.」 하였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기까지 갈 것은 없다고 그를 만류(挽留)하였으나 그는 재삼(再三) 간청(懇請)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도 그의 가는 것을 승낙(承諾)하고는 그 부왕(父王)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에게 알린 뒤에 많은 시중 꾼을 딸려 보내면서 편지(便紙)로써 「나는 여기서 안락(安樂)하게 지냅니다. 아버지<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는 결코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에게 우리 비밀(祕密)을 알려서는 안됩니다.」 하였답니다.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 사람들은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가 온다는 말을 듣고도 그를 존경(尊敬)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 그 아이들을 모두 시골로 보내었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석가족(釋迦族) 왕국(王國)의 수도(首都)카필라성(Kapila) 또는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에 도착했을 때 석가족(釋迦族) 사람들은 공회당(公會堂)에 모여 앉아 있었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도 공회당(公會堂)에 모여 앉아 있었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가 공회당(公會堂)에 가서 서 있자 사람들은 「이 분이 당신의 할아버지요, 이 분이 당신의 아저씨다.」 하기 때문에 그는 돌아가면서 그들에게 인사(人事)하였답니다.

그러나 그가 허리가 아프도록 돌며 인사(人事)하였으나 아무도 답례(答禮)하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왜 내게는 답례(答禮)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물었답니다. 석가족(釋迦族) 사람들은 「아이들이 모두 시골에 가 있습니다.」 하고 그에게 큰 경의(敬意)를 표하였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에서 며칠 동안 머물다가 많은 종자(從者: 남에게 종속되어 뒤에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데리고 거기서 떠났답니다. 그러자 어떤 여자(女子) (servant)이 공회당(公會堂)에서 그가 앉았던 의자(椅子)를 보고 「이것이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 종년(servant girl)의 자식(子息)이 앉았던 의자(椅子).」 하면서 우유와 물로 의자를 씻고 있었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출생비밀(出生秘密)의 소문으로 왕위(王位)를 잃을

위기(危機)에 처하게 된답니

 

어떤 한 사나이 종자(從者)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를 따라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를 떠날 때 자기의 병기(兵器)를 잊고 갔다가, 그것을 가지러 와서 뜻밖에 그 여종(servant girl)이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를 욕()하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는 그녀에게 그 비밀(祕密)<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의 출생비밀(出生秘密)에 대해서는 석가족(釋迦族, Śākya , Sākiya)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알고 있는 사실(事實)이랍니다.>을 물어,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는 석가족(釋迦族) 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여종(servant girl)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다른 병사(兵士)들에게 이야기했답니다. 그래서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사실인즉 여종(servant girl)의 딸이라 하여 모두 떠들었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이 말을 듣고 석가족(釋迦族)의 오만(傲慢)함을 알고 격노(激怒)하였는데, 「좋아, 이년들은 내가 앉았던 의자(倚子)를 우유와 물로 씻고 있었지마는, 만일 내가 왕위(王位)에 나아가면 저 녀석들의 목통(throat)의 피(blood, )로 내가 앉았던 의(倚子)자를 씻고 말 것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가 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 사위성(舍衛城)으로 돌아오자, 대신(大臣)들은 일체의 사실을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에게 알렸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이 사실을 알자 황망(慌忙)해하며 「내게 종년의 딸을 주었구나.」 하고 석가족(釋迦族)에 대해 분격(奮激)하여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 왕비(王妃)와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 왕자(王子)에 대한 존경(尊敬)을 전폐(全廢)하고 그들을 노예(奴隸)의 남녀(男女) 처럼 취급했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 수시로 인생(人生)과 정치(政治) 문제에 대한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였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Śakyamuni, 釋迦牟尼) 붓다(Buddha)코살라국(Kosala, 憍薩羅王國)에 와서 이 사실을 알고 난 며칠 뒤에, 붓다(Buddha)님은 왕궁(王宮)에 가서 앉으셨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붓다(Buddha)님께 인사하고 「붓다(Buddha), 당신 친족(親族)들은 내게 종년의 딸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모자(母子)를 존경하지 않고 노예(奴隸)의 남녀(男女)처럼 취급했습니다.」 라고 말하였답니다.

 

「대왕(大王), 그 석가족(釋迦族)의 한 일은 무례(無禮)한 짓입니다. 이미 준다면 동족(同族)의 여자(女子)를 주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大王), 당신들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마하나마 왕(摩訶那摩王, Mahānāma, Mahānāman)딸로서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궁전(宮殿)에서 관정식(頂式)을 행했습니다. 또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찰제리 종족(刹帝利種族)의 출신입니다.

옛날의 현자(賢者)들도 「어머니()의 성()이 무엇이든 아버지()의 성()이 표준(標準)이다」 하여, 섶나무를 줍는 보잘 것 없는 여자(女子)에게 첫째 왕비(王妃)의 지위(地位)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난 아이는 12유순(由旬)<1 유순(由旬)고대(古代) 인도(印度)의 이수(里數) 단위로서, 소달구지(oxcart)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이나 되는 바라나시(Varanasi)의 왕위(王位)에 나아가 운신(運薪)이라는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붓다(Buddha)님은 채신녀(采薪女)의 전생(前生)이야기를 말씀하셨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이 설법(說法)을 듣고는 아버지의 성()이 표준(標準)이라 하여 기뻐하면서 그 모자(母子)<바사바 카티야(Vāsabha-Khattiyā)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를 본래처럼 존경(尊敬)하였답니다.

위와 같이 대우(待遇)를 원래처럼 왕족(王族)으로 돌리도록 했다고 하지만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왕위(王位)를 잃을 위기(危機)에 처하게 된답니다.

 

고대(古代) 인도(印度)의 법()에 따르면, 승려계급(僧侶階級) '브라만(Brahman, 婆羅門)'과 왕()과 무사계급(武士階級) '크샤트리아(Kshatriya)' 같은 재생자(再生者, Regenerator)가 신분(身分)이 낮은 여자(女子)와 결혼(結婚)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혼종(混種)'이 된답니다. '혼종(混種)'의 신분(身分)은 아버지와 동등하지만 어머니가 흠()집이 있어 비난(非難)을 받는다. 그런데, 두 단계(二段階) 차이(差異)가 나면 명칭(名稱)이 달라진다. 특히 크샤트리아(Kshatriya)  남자가 노예 계급(奴隸階級)수드라(Sudra) 여자에게 자식(子息)을 보면, 크샤트리아(Kshatriya)와 수드라(Sudra)의 성질(性質)이 섞여 포악(暴惡)해진다고 믿어, 그들을 '우그라(Ugra)'라고 불렀답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크샤트리아(Kshatriya)와 수드라(Sudra)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混種) 우그라(Ugra)로 여겨지게 된 것이랍니다.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왕위찬탈(王位簒奪)

 

, 코살라 국(Kosala, 憍薩羅王國)의 장군(將軍)인 반두라(Bandura)가 뛰어난 무예(武藝)와 공정(公正)함으로 명성(名聲)을 얻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정(公正)하지 못한 재판(裁判)에 진 사람들이 반두라(Bandura)가 사위성(舍衛城)에 돌아온 것을 보고 큰소리를 치면서, 법정관리(法庭官吏)들의 부정한 재판(裁判)의 종류(種類)를 그에게 말하였다. 그는 법정(法庭)으로 가서 그 사건(事件)을 다시 재판(裁判)하여 재판(裁判)에 진 사람들의 것으로 판결(判決) 해치웠답니다. 사람들은 큰 소리를 치면서 박수갈채(拍手喝采)를 보냈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그것이 무슨 까닭인가고 물어 그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답니다. 그리하여 그에 관련된 관리(官吏)들을 모두 파면(罷免)시키고 반두라(Bandura)로 하여금 그 법정(法庭)을 맡게 하였답니다. 그 뒤로 그는 공정(公正)하게 재판(裁判)하였답니다.

 

그런데 먼저 재판관(裁判官)들은 뇌물(賂物)이 들어오지 않아 수입(收入)이 적어졌기 때문에, 반두라(Bandura)가 왕위(王位)를 욕심(慾心)낸다고 거짓말하여 왕가(王家)들과의 이간(離間)질을 꾀하였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그들의 말을 믿고 마음이 매우 불안(不安)하였답니다.

 

이에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속임수를 써서 반두라(Bandura)와 그 자식(子息)들을 죽이고 만답니다. 반두라(Bandura)의 아내 말리(Mali)는 그 소식(消息)을 접하였으나 이미 석가모니(Śakyamuni, 釋迦牟尼)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전생(前生)의 업보(業報)를 받은 것이라고 하며 며느리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하였고, 이에 감동(感動)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그녀들이 모두 구시나가라(Kusinagara, 拘尸那伽羅)의 자기 친정(親庭)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답니다.

 

그 후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반두라(Bandura) 장군(將軍)의 생질(甥姪: 누이의 아들을 이르는 말)인 디가카라야나(Dīgha Chārāyana, 長作)라는 자()에게 장군(將軍)의 지위(地位)를 주었답니다. 하지만 반두라(Bandura)생질(甥姪)디가카라야나(Dīgha Chārāyana, 長作)()없는 반두라(Bandura)를 죽인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의 틈을 엿보고 있었답니다.

 

프라세나짓 왕(Prasenajit, Pasenadi, 波斯匿王)의 석가모니(Śakyamuni, 釋迦牟尼) 붓다(Buddha) 방문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죄() 없는 반두라(Bandura) 장군(將軍)을 죽인 뒤에 늘 후회(後悔)하면서 마음이 불안(不安)했답니다. 그 때에 붓다(Buddha)님은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anathapindasyarama)에서 살고 있었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호위군대(護衛軍隊)를 대동하고 그 곳으로 가서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영(野營)을 치고 몇 사람의 종자(從者: 남에게 종속되어 따라다니는 사람)와 함께 붓다(Buddha)님께 인사(人事)하려고 기원정사(祇園精舍)로 왔답니다.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의 다섯 가지 표지(標識)를 디가카라야나(Dīgha Chārāyana, 長作)에게 주고 혼자 향실(香室)에 들어갔답니다.

 

코살라국(Kosala)의 파세나디 왕(Pasenadi 王)이 붓다(Buddha)님을 방문하기 위해 사위성(舍衛城)을 출발하는 행렬도(行列圖) 

<산치대탑 1호(Sanchi Stupa 1) 북문(Northern gateway)의 부조(浮彫)>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이 향실(香室)에 들어가자 디가카라야나(Dīgha Chārāyana, 長作)는 한 마리 말()과 한 사람의 시녀(侍女)만을 남겨놓고, 그 왕()의 다섯 가지 표지(標識)를 가지고 사위성(舍衞, Sanskrit: Srāvastī, Pali: Sāvatthī)으로 가서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에게 바쳤답니다. 이렇게 비두다바(Vidūdabha, 毘琉璃)는 이 기회를 틈타 디가카라야나(Dīgha Chārāyana, 長作) 장군(將軍)과 함께 반란(反亂)을 일으키고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王位)에 오르게 된답니다.

 

한편,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붓다(Buddha)님과 즐거운 대화(對話)를 하고 나와 본즉 군대(軍隊)가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 시녀(侍女)에게 물어 그 사실을 안 파세나디 왕(Pasenadi, Prasenajit, 波斯匿王)은 조카인 마가다왕국(Magadha, 摩竭陀王國)아자타사투(Pali: Ajātasattu, Sanskrit: Ajātašatru, 阿闍世王)의 도움을 얻기 위해 라자그리하(Rajagriha, 王舍城)로 갔는데, 밤이 깊어 성문(城門)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에서 어떤 공회당(公會堂)있다가 바람에 시달려 탈진(脫盡)하여 그 밤에 거기서 운명(殞命)하였답니다.

 

날이 밝아 슬피 울고 있는 그 시녀(侍女)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대왕(大王). 코살라 왕(Kosala, 憍薩羅王)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알렸답니다. 아자타사투(Ajātasattu, Ajātašatru, 阿闍世王)은 그 숙부(叔父)를 위해 큰 공양(供養)으로 장례(葬禮)를 치렀답니다.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 ()에 위한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대학살(大虐殺)과 멸망(滅亡)

 

파세나디 왕(Pasenadi, 波斯匿王)의 죽음으로 거칠 것이 없어진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 ()잘 훈련된 군사(軍士)를 정비한 뒤 스스로 선봉(先鋒)에 서서 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이 행한 모욕(侮辱)에 대한 보복(報復)을 하려고 군대(軍隊)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로 진군(進軍)시킵니다.

 

붓다(Buddha)가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와 군사(軍士)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리며 명상(瞑想) 잠겨 있다.

 

이 사실을 안 석가모니(釋迦牟尼·Śākyamuni) 붓다(Buddha)는 늙은 몸을 이끌고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와 군사(軍士)들이 지나가는 길목의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죽은 고목(古木) 아래 앉아 뜨거운 뙤약볕을 그대로 맞고 홀로 앉아 그를 기다립니다.

진군(進軍)해 온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 ()붓다(Buddha)를 보자 멈추면서 "세존(世尊)이시여, 저쪽에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우거져 그늘이 시원한 나무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늘이 시원한 나무가 아니라 죽은 고목(古木) 아래 앉아 계십니까? 라고 물었답니다.

붓다(Buddha)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를 가만히 바라보며 "() 이여, 친족(親族)의 그늘은 시원합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지만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는 서늘함을 느꼈답니다. 만약 붓다(Buddha)석가족(釋迦族: Śākya, Sākiya)을 살려달라고 애원(哀願)했다면 그는 차갑게 비웃음을 던졌을 것이지만 붓다(Buddha)는 단지 "친족(親族)의 그늘은 시원합니다."는 한 마디 말씀 뿐이었답니다. 물론 그 짧은 말씀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었고 붓다(Buddha)를 차마 외면(外面)할 수 없었던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는 군사(軍士)를 돌렸답니다.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붓다(Buddha)의 고뇌(苦惱)는 점점 깊어졌고 한편 왕궁(王宮)으로 돌아온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어린 시절을 곱씹을수록 석가족(釋迦族)에 대한 원한(怨恨)은 점점 생생해져 이틀 후 그는 군대(軍隊)를 정비하여 전쟁(戰爭)에 나섰답니다.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비두다바(Viūabha, 毘琉璃)의 출정(出征)을 막은 붓다(Buddha) 덕분에 석가족(釋迦族: Śākya,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