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Siddhartha)와 예수(Jesus)의 탄생 이야기(birth story)등을 비롯한

불교(Buddhism, 佛敎) 기독교(Christianity, 基督敎) 비교(比較)

 

 

탄생 이야기(birth story)의 유사점(類似點, some parallels)

 

붓다(Buddha)<싯다르타(Siddhartha)>예수(Jesus) 탄생 이야기(birth story)와 몇몇 유사점(類似點, some parallels)이 있답니다.

상좌부 불교(Therevada Buddhism)<붓다(Buddha)의 계율(戒律)을 원칙대로 고수하는 불교(佛敎)> 팔리어 경전(Pali Cannon) '붓다의 생애 이야기(life story of the Buddha)'에서,  "마야데비(Maya Devi, 摩耶夫人) 왕비(王妃) 임신 전(prior to conception)성적활동(性的活動, sexual activity)을 하지 않았고 또 다른 남자들에 대한 어떠한 생각(any thoughts of other men)을 품지 않은 상태에서, 마야부인(摩耶夫人, Queen Maya Devi)은 계시적 꿈(revelation dream)<태몽(胎夢, Conception dreams)>을 꾸고 난 후 붓다(Buddha)임신(pregnancy)했다는데, 그 꿈(dream)에서 도솔천(Tuita, 兜率天)에서 온 호명보살(護明菩薩, Bodhisattva)<붓다 예정자(Buddha-to-be)>이 작은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 모양으로 변신하여 자궁(子宮, womb)에 강림(descent, 降臨)함을 보았다"는 이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Christian Bible)에서, "예수(Jesus)가 인간 아버지(human father)의 개입이 전혀 없이 성령(Holy Spirit, 聖靈)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에로 강림(descent, 降臨)하여 잉태(孕胎, pregnancy)를 했다"는 이야기와 유사점(some parallels, 類似點)이 있답니다.

 붓다(Buddha) 탄생(birth)에 대한 이야기가 서방(西方)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예수(Jesus)의 탄생(birth)에 대한 이야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데 대한 주장이 있답니다.

자카리아 피 툰디(Zacharias P. Thundy)는 마야데비(Maya Devi)의한 붓다의 탄생 이야기(birth stories of Buddha)리아(Mary) 의한 예수의 탄생 이야기(birth stories of Jesus) 사이의 유사점(類似點, similarities)과 차이점(差異點, differences)을 조사(surveyed)를 했답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동정녀 탄생(童貞女誕生, virgin birth)의 유사점(similarities)이 있을 수 있지만 차이점(differences)도 있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Mary)는 예수(Jesus)님을 키우고 나서 오래 살았지만(outlive), 부처님들의 모든 어머니들(all mothers of Buddhas)이 불교전통(Buddhist tradition)에 따라 하던 대로 마야데비(Maya Devi) 붓다의 출생 후(after birth of Buddha)에 곧(soon) 사망(die)했답니다.

자카리아 피 툰디(Zacharias P. Thundy)는 이 예수의 기독교 출생 이야기(Christian birth stories of Jesus)는 불교의 전통(Buddhist traditions)에서 유래(由來)되었다는 어떤 역사적 증거(historical evidence)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어쩌면 기독교 학자(Christian scholars)들이 불교의 전통(Buddhist tradition)에서 아이디어의 원천(sources of the idea)을 찾았을 시기(time)였다"고 암시(暗示, suggest)하고 있답니다.

 

도상학(Iconography)의 유사점(similarities)

 

두 수행자(修行者)에 측면에서 부축을 받는 성모 마리아의 영면(Dormition of Virgin Mary)에 대한 고전적 장면(classical scene)마야부인(摩耶夫人, Queen Maya Devi)의 잉태(孕胎, pregnancy)의 불교테마(Buddhism theme)와 비슷하며, 아마 초기(初期) 기독교 예술(基督敎藝術)의 도상학(Iconography)에 영향 받은 것일지 모른답니다.

  

(왼쪽)마야여왕(Queen Maya)의 붓다 잉태꿈(Dream of Buddha's Conception)<BC 2세기 간다라(Gandhara) 작품,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오른쪽)성모 마리아(Virgin Mary)의 죽음(Dormition)<ivory plaque, 10세기 후반~11세기 전반 작품, 프랑스의 '뮤제 드 클루니(Musée de Cluny) 소장 

 

두 수행자(修行者)에 양측면에서 부축을 받는 석가모니(釋迦牟尼佛, Sakyamuni) 붓다(Buddha)반열반(般涅槃, final Nirvana)성모 마리아의 영면(Dormition of Virgin Mary)도상학(Iconography)에서도 유사점(similarities)이 보입니다.

 

 

 

왼쪽)붓다(Buddha)반열반(般涅槃, final Nirvana)<기원전 2~3 세기 간다라(Gandhara) 부조(浮彫, relief) 작품, Museos de Dahlem. 소장>, (오른쪽)성모 마리아의 영면(Dormition of Virgin Mary)<14세기, 프레스코화(fresco), Church of St Peter in Berende village, Dragoman Municipality, Sofia Province, westernmost Bulgaria.>

 

 

누워 있는 석가모니(釋迦牟尼佛, Sakyamuni) 붓다(Buddha)반열반(般涅槃, final Nirvana)성모 마리아의 영면(Dormition of Virgin Mary)도상학(Iconography)에서도 유사점(similarities)이 보입니다.

 

 

누워 있는 붓다(Buddha, 부처님)반열반(般涅槃, final Nirvana) 상(像)<인도(印度) 쿠시나가르(Kushinagar, 拘尸那揭羅)의 마하파리니르바나 사원(Mahaparinirvana Temple, 涅槃)>

 

누워 있는 성모 마리아의 영면(Dormition of Virgin Mary)의 상(像)<18세기 후반, 그리스(Greece)작품. A.G. Makris collection>

 

 

  5세기~6세기까지 서양(西洋)에 알려지지 않은 아기 예수(Jesus)에게 수유(授乳, nursing)하는 마리아(Mary)의 도상학iconography)아마도 초기(初期) 기독교 예술(基督敎藝術)의 돋을새김(freeze: 프리즈)<부조(, relief)>의 시대(時代)헬레니즘(Hellenism))적인 의상(衣裳, clothes)을 입고 수유하고 있는 하리티(Hariti, 鬼子母神)<2세기~3 세기 간다라(Gandhara)시대 작품.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불교(佛敎, Buddhism)여신(女神)으로, 유아(幼兒)의 순산(順産), 보호(保護)와 양육(養育) 등의 보호(保護)와 소원(所願)을 들어준다고 한답니다>의 작품보다 훨씬 더 오랜 간다라(Gandhara)그레코 불교예술(Greco-Buddhist art)<희랍(希臘, Greece) 불교예술(佛敎藝術)>의 도상학(Iconography)과 연관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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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Hellenism)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63년 독일(獨逸)의 역사가(歷史家)인 드로이젠(Johann Gustav Bernhard Droysen, 1808~1884) 1833년 그의 첫 저서(著書)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로서 벌써 당대 역사가(歷史家) 중 석학(碩學) 반열에 올랐답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재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고대(古代) 그리스(Greece) 북부의 왕국(王國)인 마케도니아(Macedonia)아르게아다이 왕조(Argead dynasty, 기원전 700~기원전 310)  26대 군주(君主)>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Cleopatra VII Philopator, 재위 기원전 51년~기원전 30년)<프톨레마이오스 왕국(Ptolemaic Kingdom, 기원전 305년~기원전 30) 여왕(女王)>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여 사용하면서부터였답니다.

 

그리스 문화(Greece文化)와 오리엔트 문화(Orient文化)<이집트(Egypt),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 페니키아(Phoenicia), 페르시아(Persia) 등 아시아 서남부와 동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고대(古代) 오리엔트(Orient)에서 발달한 문명(文明)>가 서로 영향(影響)을 주고받아 질적 변화(質的變化)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文化)로 보는 것이 타당하답니다.

일반적으로 BC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페르시아제국(Persia帝國)<기원전 559년에 키루스 2(Cyrus II, 재위 BC 559년∼BC 529)가 현재의 이란(Iran) 땅에 세운 나라> 정복(征服)에서 BC 30년의 로마(Roma)가 이집트(Egypt)를 병합(倂合)하기까지의 300년간이 그 시대범위로 간주된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정복지 전역(征服地全域)인 마케도니아(Macedonia)그리스(Greece)에서부터 인도(印度) 인더스강(Indus River) 유역 등까지 그리스문화(Greece文化)는 오리엔트(Orient)의 오지(奧地)에까지 침투하였답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사후(死後), 그의 후계자(後繼者)는 각지에 왕국(王國)을 세웠는데,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기원전 312~기원전 63)의 수도 안티오키아(Antiochia, Antakya)<터키어로 안타키아(Antakya)라고 하며, 터키(Turkey) 남부와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 연안에 위치한 하테주(Hatay ili)의 주도(州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 BC 305~BC 30)의 수도(首都) 알렉산드리아(Alexandreia)<이집트(Egypt) 북부에 있는 이 나라 제일의 무역항.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때 건설하였으며, 오랫동안 고대(古代) 이집트(Egypt)의 수도(首都)였다>는 종래 폴리스(polis)<고대(古代) 그리스(Greece)의 도시국가(都市國家)>의 개념으로는 더 이상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대도시(大都市)<코스모폴리스(Cosmopolis)>로 발전하여 헬레니즘 문화(Hellenism文化)의 일대 중심지(一帶中心地)가 되었답니다.

 

 

(왼쪽)하리티(Hariti, 鬼子母神)<간다라(Gandhara), 2세기~3 세기 작품, 파키스탄(Pakistan),브리타니아 박물관(Museum Britania)소장> : Hariti has been suggested as a source for depictions of the Virgin Mary.

(오른쪽)성모 마리아(Virgin Mary : Madonna)와 아기(child)<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년~1455년)의 작품>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의 도상법(Iconography)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의 도상법(Iconography)은 그리스(Greece)의 여신(godesss) 티케(Tyche)와 유사한 점이 있으며, 이것은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의 영향(影響)을 통하여 동양(東洋, east Asia)에 전달(傳達)되었을 것으로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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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코 불교(Greco-Buddhism)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 사이, 현대(現代)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인도(印度), 파키스탄(Pakistan)의 영토(領土)에 해당하는 박트리아(Bactria)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 사이에서 발전한 헬레니즘(hellenism) 또는 그리스주의(Greece主義) 문화(文化)불교(佛敎)의 문화(文學)와의 혼합주의(混合主義)를 의미한답니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년 ~ B.C. 323년) 시대에 인도(印度)에서 그리스(Greece)로 진출(進出)로 시작되고, 인도-그리스 왕국(India-Greece王國)의 설립에 의해 상호영향(相互影響)중합체(重合體) 추가로 그리스화(Greece)쿠샨제국(Kushan Empire, 30~375)의 번영(繁榮) 동안 연장된 상호작용(相互作用)의 긴 일련의 문화적 결과(文化的結果)였답니다.

 

    

왼쪽=> 티케(Tyche)<그리스(Greece)의 여신(godesss)>가 그의 손에 플루토스(Plutus)<그리스신화(Greek Mythology)에 나오는 재물의 신(god of wealth)>으로서 아기(child)와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들고있다. 기원전 1세기의 헬레니즘(hellenism)의 예술(art)<이스탄불 고고학의 박물관(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 소장>,

오른쪽=>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은 불교의 여신(Buddhist Goddess)로서 순산(順産, Easy Delivery), 산모(産母, Giver of Children), 아동 보호자(兒童保護者, Guardian of Children)를 상징(象徵)하며 종종 오른 손에 석류(石榴, pomegranate)<많은 종자(種子)로 인한 다산(多産)의 상징(象徵)>와 함께 표시된답니다. 1세기 간다라 예술(Gandhara art)<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미술관(Los Angeles state museum of USA) 소장>

 

그리스 예술(Greek art)에서 여신(godesss) 티케(Tyche)는 아이들의 존재(the presence of children)에서 운명(運命)의 여신(女神)으로서 '풍요의 뿔(horn of plenty)'을 뜻하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배의 방향타(ship's rudder), 즉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를 뜻하는 구베르나쿨룸(Gubernaculum)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描寫)된답니다.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에 대하여

 

원래는 인도(印度)의 《베다(Vega)》에 나오는 신()적 존재(存在)열매의 수확을 관장하는 여신(女神) 하리타(Hariti)이었지만 나중에는 인간(人間)을 잡아먹는 식인귀(食人鬼)가 되었답니다.

 

어린이 먹는 악마(惡魔)하리티(Hariti, 鬼子母神)가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한답니다. 그 후 불교의 여신(Buddhist Goddess)로서 순산(順産, Easy Delivery), 산모(産母, Giver of Children), 아동 보호자(兒童保護者, Guardian of Children)를 상징(象徵)하며 종종 오른 손에 석류(石榴, pomegranate)<많은 종자(種子)로 인한 다산(多産)의 상징(象徵)>와 함께 표시된답니다. 힌두교(Hinduism, 印度敎) '풍요(豊饒)의 여신(女神)' 측면에서 볼 때는 수많은 알이 들어있는 석류(石榴, pomegranate)많은 종자(種子)로 인한 다산(多産)풍작(豊作)을 상징(象徵)하는 것으로 해석(解釋)된답니다.

 

식인귀(食人鬼)였던 하리티(Hariti, 鬼子母神))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여 불교(佛敎)의 수호신(守護神)이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傳說)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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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티(Hariti, 鬼子母神) 지위가 높은 야차녀(夜叉女)<숲의 나무에 사는 수신(樹神), 산신(山神) 등의 정령(精靈)으로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초자연력(超自然力)을 갖추고 복신(福神)과 귀신(鬼神)의 양면(兩面)을 가진답니다.>로서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수()는 전설(傳說)에 따라 다르지만 오백(500)~일만(10,000) 명까지 다양하며 식인귀(食人鬼)인 하리티(Hariti)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수많은 인간(人間)의 아이를 납치(拉致)해 잡아먹었답니다.

이에 비탄(悲嘆)에 잠긴 아이들을 잃은 부모(父母)들은 석가모니 붓다(Sakyamuni Buddha)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붓다(Buddha)는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하여 하리티(Hariti)가 아기를 납치(拉致)하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하리티(Hariti)가 제일 아끼는 그녀의 막내아들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숨어버린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하리티(Hariti)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광분(狂奔)하여 울며 난동(亂動)을 부리고 있을 때, 붓다(Buddha)가 나타나서 "너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단 하나가 없어졌다고 그리 슬퍼하느냐?, 하나나 둘 밖에 없는 자식을 네게 잡아 먹힌 부모들의 슬픔을 너는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하며 하리티(Hariti)를 엄하게 질타(叱咤)했답니다.

하리티(Hariti)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는 절대 인간(人間)을 잡아먹지 않겠다고 맹세(盟誓)했답니다. 붓다(Buddha)가 그 맹세(盟誓)를 듣고 숨겨놓았던 자식을 돌려주자 하리티(Hariti)는 불교(佛敎)에 귀의(歸依) "자식을 보호하여 어머니들의 슬픔을 없애주겠다"고 다시 한 번 서약(誓約)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하리티(Hariti)는 어린아이들을 수호(守護)하는 여신(女神)이 되었다고 한답니다.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는 불교(佛敎)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Lotus Sutra) 26 (26th chapter)의 인물(人物)이며 특히 대승불교(大乘佛敎, Mahayana Buddhism)의 일본(Japanese) 일연종(日蓮宗, Nichiren Buddhism)에서 특별히 중요(重要)하게 여기는 인물(人物)이랍니다. 애당초 인도(印度)의 《베다(Vega)》에 나오는 '열매의 수확을 관장하는 여신(女神)' 하리타(Hariti) 유래(由來)된 것으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는 불교(佛敎)와 함께 일본(日本)에도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을 숭배(崇拜)하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일본계 불교(Japan Buddhism)인 일련종(日蓮宗, Nichiren Buddhism) 및 진언종(眞言宗, Shingon Buddhism)과 네팔(Nepal)의 힌두교 사원(Hindu temple)이 있답니다. 

 

일본계 불교(Japan Buddhism)에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를 숭배(崇拜)

 

일본의 불교전통(Japanese Buddhism tradition)에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śvara, Kannon)<자비(慈悲)의 여신(女神)>의 화신(化神, Avatar)으로 환희모(歓喜母) : 기쁨의 어머니)<행복의 전달자(Bringer of Happiness)>자안귀자모신(子安鬼子母神)<산모(産母, Giver of Children) 순산((順産, Easy Delivery) >별칭(epithets)지니고 있답니다.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하리제(訶利帝, Karitei) 또는 가리제모(訶梨帝母, Karitei-mo)라고 부른답니다.

 

일본(日本)  헤이안 시대(平安時代794~1185)의 승려(僧侶)구카이(空海, 774~835)<시호(諡號)는 홍법대사(弘法大師)>에 의해서 9세기 초에 열린 일본(日本)의 진언종(眞言宗, Shingon Buddhism)에서는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는 하리제(訶利帝, Karitei) 또는 가리제모(訶梨帝母, Karitei-mo)라고 부른답니다.

일본(日本)에서 법화경(法華經)에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의 딸들인 십나찰녀(十羅刹女)와 함께 불법(佛法)과 불경(佛經)을 수호(守護)하며 장군(將軍)의 자식(子息)을 점지(blessing)해주는 신()으로서 에도시대(江戶時代 : 강호시대)<일본 1603~1867년의 봉건시대>부터 장군(將軍)의 자식(子息)을 낳고 싶어하는 많은 여성(女性)들이 앞다투어 참배(參拜)했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은 출산(出産)의 여신(女神)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상당한 신자(信者)를 보유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日本)불교종파(佛敎宗派) 중 하나인 일련종(日連宗)에서도 적지 않은 신도(信徒)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법화경(法華經)』에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이 십나찰녀(十羅刹女)<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의 자식(子息)>와 함께 『법화경(法華經)』을 수호(守護)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일련종(日連宗)>

일련종(日連宗) 계열에서 묘사(描寫)하는 이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Kishimojin)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답니다.

하나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이며, 또 하나는 합장(合掌)하고 있는 부인(婦人)의 모습이랍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은 아이를 수호(守護)한다는 뜻이며, 합장(合掌)하고 있는 모습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밀교(密敎)에서 묘사(描寫)하는 이 여신의 모습은 상당히 독특하다. 여기서는 대단히 아름다운 천녀(天女)로 등장하는데, 오른손에 길상과(吉祥果)<석류(石榴)>를 들고 옆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답니다. 석류(石榴)는 이전의 풍요(豊饒)의 신()으로서의 신격(神格)이 남아 있는 것이며,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것 역시 그녀의 다산성(多産性), 즉 풍요(豊饒)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답니-.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의 도상법(Iconography)Dai Yakusha Nyo Kangimo Narahini Aishi Jōjuhō( 成就 )을 기본(基本)으로 한답니.

 

네팔(Nepal)에서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를 숭배(崇拜)

 

네팔(Nepal)의 힌두교 사원(Hindu temple)에서는 하리티(Hariti, 鬼子母神)야차왕(夜叉王) 배우자(consort)이자 아이들의 보호자(protector of children)로 인식된답니다. 네팔(Nepal)의 카트만두(Kathmandu) 계곡(Valley)에서는 하리티(Hariti, 鬼子母神) "Hārītī Mā"<Mother Hārītī>로서 알려져 있고, 그녀의 주요사원(主要寺院)카트만두(Kathmandu)의 스와얌부나트 사리탑 단지(Swayambhunath stupa(Monkey Temple) complex)의 일부(一部)라고 합니다.

 

카트만두의 8명의 아지마들(The eight Ajimas of Kathmandu)은 역시 아싸마트리카(Asthamatrika)<eight matriarchs>로 숭배(worshipped)된답니다.

 

네팔(Nepal)카트만두(Kathmandu), 박타푸르(Bhaktapur) '랄릿푸르(Lalitpur)<파탄(Patan)이라고도 한다> 지역(District)원주민(原住民)들인 네와르족(Newar) 사람들의 주신(主神)으로 숭배(崇拜)받는답니다.

네와르족(Newar) 사람들은 하리티(Hariti, 鬼子母神)를 아지마(Ajima)라고 부르는데, 네와르 언어(Newar language)"할머니(grandmother)"를 의미한답니다.

아지마(Ajima)는 네와르족(Newar) 제신(諸神, pantheon)의 여신의 그룹(group of goddesses)이며, 이 여신(goddesses)은 네와르족(Newar)여성 조상(female ancestors)을 대표한답니다. 이 여신(goddesses)들은 힌두교(Hindu) 불교(佛敎)의 모든 종파(宗派)네와르족(Newar)) 카스트(castes)들로부터 존경(尊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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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와르족(Newar)은 초기에는 모계사회(母系社會,  matriarchial society)였답니다. 인종적(人種的)으로는 몽골로이드(Mongoloid)<인도(印度)에서 동아시아 대륙(Asia 大陸), 태평양제도(太平洋諸島) 및 아메리카대륙(American Continent)에 분포한 인종(人種)>에 속하며, 티베트·버마 어계((藏緬語)인 네와르 언어(Newar language)를 사용하고, 데바나가리계(Dēvanagari )의 문자(文字)를 가진답니다.

구르카(Gurkhas 또는 Gorkhas) ()<현재의 네팔왕국(구르카 왕조)을 세운 부족>에게 정복(征服)되기 전에 이 카트만두(Kathmandu) 분지(basin)를 지배하여 네와르 왕조(Newar王朝)를 세웠는데, 이 왕조는 인도(印度)에서 온 크샤트리아(Kshatriya)<인도(印度)의 카스트제도(caste) 중 두 번째 계급인 왕()과 무사(武士) 계급을 일컫는다>이며 베다문화(Vedic culture), 산스크리트어(Sanskrit)와 힌두교(Hindu religion)등을 가져와 현지문화(local cultures)와 동화(同化)되어 이들의 독특한 도시문화(都市文化)를 발달시켰답니다. 카트만두(Kathmandu) 분지(basin)에는 농민(農民)과 공예(工藝)와 상업(商業)에 종사하는 시민도 있고, 힌두교(Hinduism), 불교(Buddhism, 佛敎)의 건축과 미술품이 많이 남아 있답니다.

불교도(佛敎徒)도 있으나 대부분은 힌두교도(Hinduism敎徒)이며, 승려(僧侶)계급에서 직인(職人)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카스트사회(caste社會)를 구성하고 있답니다. 상업민족(商業民族)으로 알려졌고, 목조(木彫)·금세공(金細工)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제식의례(祭式儀禮)가 발달하였답니다.

 

불교(佛敎)기독교(基督敎)상당한 영향(影響) 주었다는 연구(硏究)들이 존재한답니다.

 

불교(佛敎)기독교(基督敎)보다 약 6세기 전에 성립(成立)

 

불교의 역사(The history of Buddhism) 기독교(基督敎, Christianity)보다 약 6세기 전에 인도(印度) 지금의 부다가야(Bodh Gaya)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며, 기독교(基督敎, Christianity)의 기원(起源)1 세기 초에 로마 유대(Roman Judea)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基督敎, Christianity) 네 개의 정식 복음서(canonical gospels)<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 AD 70~ AD 90 년 전후에 작성되었다고 보며, 바울 서신서(Pauline epistles) AD 50~ AD 60 년 경에 쓰여졌답니다. 초기 2 세기까지, 사도 기독교 신학(post-apostolic Christian theology)이레니우스(Irenaeus, 130년~202))와 같은 작가(authors)의 작품(works)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비록 기독교(Christianity)는 시대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시야(Messiah)"<'하느님(God)으로부터 각별한 권능(權能)과 사명(使命)을 받은 자()'란 뜻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의 히브리어(Hebrew)이며, 헬라어(Hellas: Greek language) 크리스트(Christ)하며, ‘인류(人類) 구원(救援)하는 자()’를 뜻하는 구세주(救世主, Saviour, Salvator)고도 니다.>에 대한 유대인의 예언(Jewish prophecy)의 성취(fulfillment)로 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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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니우스(Irenaeus, 130년~202)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영토였던 갈리아(Gallia) 지방 루그두눔(Lugdúnum)<오늘날의 프랑스(France) 리옹(Lyon)>기독교 주교(基督敎主敎)이자 초대교회(初代敎會) 신학사상(神學思想)을 구축한 교부(敎父)로 구분된답니다. 이단(異端)<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그노시스파(Gnosticism, 靈智主義派)<유대교(Judaism), 동방(東方)의 종교(宗敎), 기독교(Christianity), 점성학(占星學) 등과 그리스(Greece)·이집트(Egypt)의 다양한 철학(哲學)과 사상(思想)이 혼합(混合)되어 만들어졌답니다.>와 논쟁(論爭)하여 그리스도(Christ) 의 구원(救援)을 역설(力說), 신학(神學)의 성립(成立)·발전(發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답니다. 그의 저서 중 《모든 이단에 반대하여(Adversus haereses)(5)는 그노시스파(Gnosticism), 즉 영지주의(靈智主義)를 비판(批判)한 글로서 유명한데, 그는 만물(萬物)의 창조자(創造者)는 하느님 단 한 분뿐임을 강조한답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동방원정(東方遠征)으로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가 형성(形成)

 

알렉산더 대왕 제국(Alexander the Great's empire)과 그의 정복루트(his conquest route)의 지도(Map)

 

그 당시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 사이에는 동부쪽 그리스 세계(in the eastern Greek world)에서는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그리스 문화(Greece文化, Hellenism)불교(佛敎)의 문화(文化)혼합주의(混合主義)>가 현저(顯著, prominent)하였고, 헬레니즘 사상(Hellenism思想)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왕()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재위 BC 336BC 323년)의 동방원정(東方遠征)에서부터 기원전 30년 로마(Roma)의 이집트(Egypt) 병합(倂合) 때까지 그리스(Greece)와 오리엔트(Orient)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긴 역사적 현상을 말한답니다.

알렉산더 대왕 제국(Alexander the Great's empire)그리스 후임 왕국(Greek successor kingdoms)그레코-박트리아 왕국(Greco-Bactrian Kingdom, 기원전 250~기원전125)과 인도-그리스 왕국(Indo-Greek Kingdom, 기원전 180 ~기원후 10)에서는 불교(佛敎, Buddhism)가 공식적인 종교(official religion)이었답니다. "Mahadharmaraksita" "Dharmaraksita"와 같은 몇몇 유명한 그리스 불교 선교사(Greek Buddhist missionaries)가 알려져 있답니다. 그리고 인도-그리스 왕(Indo-Greek king) 메난드로스 1(Menander I, 재위 기원전 155년경~기원전 130년경)는 불교(佛敎)로 개종(改宗)하였고, 불교(佛敎)의 큰 후원자(great patrons of Buddhism) 중의 1 명으로 간주된답니다. 당시 승려(僧侶) 나가세나(Nāgasena, 伽犀那)<십육나한(十六羅漢)의 하나>와 문답(問答)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내용이 팔리어(Pali)로 적인 "밀린다왕문경 (Milinda王問經) "<Milinda Pañha ("Questions of Milinda")>에 남아있답니다.

 

아소카 왕(Asoka, 阿育王) 선교사(宣敎師) 초기 기독교(初期基督敎)에 영향(影響)

 

기원전 270년경, 인도(印度)에서는 아소카 왕(Asoka, 阿育王, 재위 BC 268~BC 232)<인도(印度)의 첫 통일제국(統一帝國)의 건국자(建國者). 인도(印度) 마우리아 왕조(Maurya Dynasty, BC 321~BC 185)의 제3대 왕>집권 이후에 불교(佛敎)로 개종(改宗)하였으며, 선교사(宣敎師, missionary) 들을 전 세계(全世界)에 파견해서 석가모니(釋迦牟尼 · Śākyamuni, 기원전 624~기원전 544)의 가르침을 전파했답니다. 아소카 왕(Asoka, 阿育王)은 그의 불교포교(佛敎布敎) 서방 국가(西方國家)들에게 우호적(友好的)으로 수용(受容)되었다고 기록하였답니다.  

 

아소카 왕재위 (Asoka, 阿育王, 재위 BC 268년~BC 232년)의 통치 당시의 불교개종(佛敎改宗) 지역

 

1930 년대에, 리암 제임스 듀란트(William James Durant, 1885 ~ 1981)<미국(美國)의 유명한 역사학자(歷史學者)와 철학자(哲學者)이자 저술가(著述家)>아소카 왕(Asoka, 阿育王, 재위 BC 268~BC 232)남긴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도 불교(佛敎)를 북인도(北印度)의 지방종교(地方宗敎)의 지위에서 세계적 종교(世界的宗敎)로 격상시킨 것이랍니다. 아소카 왕(Asoka, 阿育王, 재위 BC 268~BC 232)그레코 불교신자(Greco-Buddhist)선교사(宣敎師, missionary)들을 스리랑카(Sri Lanka)<실론(Ceylon)>, 미얀마(Myanmar), 시리아(Syria), 이집트(Egypt), 마케도니아(Macedonia), 그리스(Greece), 북아프리카(North Africa) 등 유라시아(Eurasia) 여러 지역(地域)에 까지 보냈으며, 아마도 이 선교사(宣敎師)들이 초기(初期) 기독교 윤리학(ethics of Christ)의 기반(基盤, groundwork)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답니다.

 

케네스 스코트 라투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미국(美國)예일대(Yale University) 교회사학자(敎會史學者)>에 따르면, 예수(Jesus, 기원전 4~기원후 30) 가 태어난 시기에, "불교(佛敎)는 이미 인도(印度), 스리랑카(Sri Lanka)<실론(Ceylon)>, 이집트(Egypt), 그리스(Greece), 북아프리카(North Africa), 중앙 아시아(Central Asia), 중국(中國) 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답니다.

 

이집트(Egypt)와 그리스(Greece)와의 상호작용(相互作用)이 얼마나 영향력(影響力)을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부 학자(一部學者)들은 헬레니즘 사상(Hellenism思想)<원전 334년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왕()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재위 BC 336BC 323년)의 동방원정(東方遠征)에서부터 기원전 30년 로마(Roma)의 이집트(Egypt) 병합(倂合) 때까지 그리스(Greece)와 오리엔트(Orient)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긴 역사적 현상을 말한답니다>불교사상(佛敎思想)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가 어느 정도 당시 그리스(Greece)의 땅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논평(論評)했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시기에,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5))언급한 것은, 헬레니즘(Hellenism) 세계(世界)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이집트(Egypt)의 항구도시(港口都市)>에서 불교공동체(佛敎共同體)의 존재(存在)그리스도교 이전(pre-Christian) 유대인(Judea, Jew)들의 고행자(苦行者, ascetics)수도승수도회(修道僧修道會, monastic order)인 "태라페우태(Therapeutae)"를 지적했는데, "태라페우태(Therapeutae)"는 팔리어(Pāli word)로 된 경전(經典)을 근간으로 하는 테라바다(Theravada)<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 또는 소승불교(小乘佛敎)>변형(變形, deformation)으로서거의 완전히 불교(佛敎)의 금욕주의(禁慾主義)의 가르침과 관행(慣行)으로부터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얻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아마도 이집트(Egypt) 프톨레마이오스 황조(Ptolemaeos dynasty, BC 305BC 30년) 시대의 불교 묘비(佛敎墓碑, Buddhist gravestones)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발견되었으며, 법륜(法輪)<달마 바퀴(Dharma wheel)>의 묘사(描寫)가 장식(粧飾)되어있었답니다.

일부 학자(一部學者)들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있는 불교신자(佛敎信者)들의 존재(存在)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은 아소카 왕(Asoka, 阿育王, 재위 BC 268~BC 232) 서방(西方)에 파견(派遣)한 불교선교사(佛敎宣敎師, Buddhist missionary)들의 후손(後孫)일 수도 있다고 하였으며, "후대(後代)에 기독교(基督敎)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중심지(中心地)의 하나가 바로 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설립되었다"고 한답니다.

 

2 세기에, 기독교(基督敎) 신학자(神學者)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5))는 박트리아(Bactria)의 불교도(佛敎徒, Buddhists) 슈라마나(Sramanas, 沙門)와 인도(印度)의 나체고행주의자(裸體苦行主義者, Gymnosophist)가 그리스사상(Greece思想)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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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5)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학파의 기독교 신학자(Christian theologian)이며, 그의 유연(柔軟)한 사상(思想) 초대 교회(初代敎會)에서도 귀중한 존재(存在)로 되어 있답니다. 한편 불교(佛敎)에 대해서도 언급한 최초의 신학자(神學者)이랍니다. 그리스(Greece) 철학적(哲學的) 전통(傳統)을 기독교(基督敎) 교의(敎義)와 결합(結合)시켰으며, 일종의 기독교 플라톤주의(Christian Platonism)를 전개하였답니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기원후 150~215)는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 Romanus)라 불리는 교황 클레멘스 1(Pope Clement I, 기원후 35~99)<4교황(재위: 88~99)이며, 기독교의 첫 번째 교부로 여겨지기도 하답니다.>와 구분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라고 알려져 있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n school)의 기독교 신학자(Christian theologian)였으며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신학교(Catechetical School of Alexandria)의 수장이었다. 또한, 그는 오리게네스(Origen, 185 ~254 )<알렉산드리아(Alexandrian school)를 대표하는 기독교(基督敎)교부(敎父)이다>의 스승이었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는 개종(改宗)하기 전에 각지를 편력하며 철학(哲學)기독교(基督敎)를 배웠답니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는 판타이노스(Pantaenus, ?~200)<그리스 신학자(Greek theologian)로서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Catechetical School of Alexandria)에서 저명인사(著名人士)이었답니다.>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신학교(Catechetical School of Alexandria)의 수장(首長)이 되었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Ancient Greek philosophy)에 대해 이전의 어떤 신학자(神學者)보다도 깊은 이해(理解)와 존경(尊敬)을 보이고 있었답니다. 조직된 교회에 대해서는 여러 교부(敎父, Church Fathers) 중 가장 냉담(冷淡)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유연(柔軟)한 사상(思想)초대 교회(初代敎會)에서도 귀중(貴重)한 존재(存在)로 되어 있었답니다. 한편 불교(佛敎)에 대해서도 언급(言及)한 최초(最初)의 신학자(神學者)이랍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고대 그리스 철학(Ancient Greek philosophy)전통(傳統)을 기독교 교의(基督敎敎義)와 결합(結合)시켰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Ancient Greek philosophy)그노시스(Gnosis, 靈知主義)<'지식(知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Greece)이지만, 1~2세기에 걸쳐서 로마(Roma) 를 비롯하여 그리스 문화(Greece文化)의 영향을 받은 서아시아(西Asia) 일대(一帶), 즉 유대(Judea), 이란(Iran), 바빌로니아(Babylonia), 이집트(Egypt) 등지에서, 이들 지방의 토착종교(土着宗敎)와 그리스(Greece)의 철학적(哲學的)인 사고(思考)가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종교적(宗敎的) 색채(色彩)를 지니는 말로 되었답니다. 또한 기독교(基督敎)에 침투(浸透)한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 그노시스 파(基督敎Gnosis)를 발생시켰답니다.>를 높이 평가(評價)하여, 그노시스(Gnosis, 靈知主義)보편적인 영적 친교(普遍的靈的親交, catholic: communion for all people)와 더불어, ()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일반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영지주의(靈智主義者, Gnostics)들이 정의(定義)하는 바의 그노시스(Gnosis, 靈知主義)의 개념(槪念)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반대(反對)하기는 하였으나, 로고스(Logos)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얻은 기독교인(基督敎人)들에 대해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靈的)인 지식(知識 또는 그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 체계(宗敎體系)를 주장하는 종교사상(宗敎思想)>()이다. 그노시스주의자(Gnostic)<영적인 앎(靈知)이 있는 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답니다

성서(聖書)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