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타르타(Siddhattha) 우루벨라(Uruvela, 優樓頻螺)<마가다 왕국

(Magadha kingdom, 摩竭陀王國)>에서 6 고행(苦行)

 

싯타르타(Siddhattha)는 전통적(傳統的)수정주의(修定主義)의 수행자(修行者)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음을 깨닫고, 싯타르타(Siddhattha)는 다섯 수행자(五修行者)와 함께 다시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을 나와 남서쪽으로 80㎞ 가량 떨어진 가야(Gaya, 伽倻)<인도(印度) 비하르 (Bihar) 의 주도(州都) 파트나(Patna)에서 남쪽으로 10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都市)이다> 교외(郊外), 우루벨라(Uruvela, Sk. Uruvilra, 優樓頻螺)의 네란자라(Neranjara, Sk. Nairanjana, 尼連禪河) (江)<지금의 팔구 강(Phalgu River)>) 근처의 숲 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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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란자라강(Niranjana River, 尼連禪河)<지금의 팔구 강(Phalgu River)> at 가야(Gaya)

 

 많은 경전(經典)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싯다르타(Siddhattha)6년 고행처(苦行處)우루벨라(Uruvela, Sk. Uruvilra, 優樓頻螺)의 네란자라(Neranjara, Sk. Nairanjana, 尼連禪河) ()<지금의 팔구 강(Phalgu River)> 근처라고 합니다.

 

 

다나-숫따(Padhana sutta, 精進經, Snp3.2)에서는 붓다(Buddha)님은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의 기슭에서 멍에(yoke)로부터의 평안(平安) 얻기 위해 힘써 정진(精進)하여 선정(禪定)을 닦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아리야파리예사나숫따(Ariyapariyesana sutta, 聖求經, M26)마하삿짜카 경(Mahaasaccaka Sutta, M36)에서도 "나는 마가다국(Magadha)을 차례로 유행(遊行)하면서 마침내 우루벨라(Uruvela) 근처의 세나나니그라마(Senanigrama)<바끄라우르(bakraur 또는 Bakrour)>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고요한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托鉢)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마음에 드는 지역을 발견했다.”라고 설명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호흡(呼吸, breathing)을 중지하고 좁쌀로 연명하는 등의 고행(苦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답니다.

 

방광대장엄경(Lalitavisutra, 方廣大莊嚴經) 18 니련선하품에서도 싯다르타(Siddhattha)6년 고행(苦行) 할 때 마라(Mara, 魔羅)<불교(佛敎)의 마신(魔神)으로, 욕계(欲界)의 최상층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지배자(支配者)이랍니다. 석가모니(Śakyamuni, 釋迦牟尼) 붓다(Buddha)<싯다르타(Siddhattha)>가 수행(修行)할 때 그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방해(妨害)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유혹(誘惑)한 일화(逸話)가 《불설보요경(佛說普曜經), 방광대장엄경(Lalitavisutra, 方廣大莊嚴經)》에 수록(收錄)되어 있답니다.>가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언덕으로 싯다르타(Siddhattha) 보살(菩薩)을 찾아왔다고 설명하고 있답니다. 보요경(普曜經) 17품에서는 33(三十三天)에 태어났던 마야부인(摩耶夫人, Maya Devi)이 천신(天神)이 되어 고행(苦行)하다가 쓰러진 싯다르타(Siddhattha)를 찾아왔는데 그 장소가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 제방(堤防)이라고 나타난답니다.

 

우루벨라(Uruvela)라는 단어자체가 '큰 모레'라는 뜻으로모하나 강(Mohana River)과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이 흐르다가 만나서 팔구 강(Phalgu or Falgu River)을 이루는데 우기철(Monsoon)에만 강물이 흐를 뿐 나머지 계절에는 모래사장(a wide expanse of sand )으로 변한답니다.

 

싯타르타(Siddhattha)는 다섯 수행자(五修行者)와 함께 고행림(苦行林)에서 절식고행(絶食苦行)히고 있는 장면

 

싯타르타(Siddhattha) 그곳에서 다섯 수행자(五修行者)와 함께 적합한 장소를 찾아서 고행수행(苦行修行)을 하였답니다. 고행림(苦行林)으로 불리던 이 곳은 현재(現在)인도(印度) 비하르 (Bihar)) 가야(Gaya)구역의 도시(都市)인 보드가야(Bodh Gaya)<붓다(Buddha)가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성도(成道)한 장소>동쪽에 있는 곳으로, 이곳은 부근에 고요한 삼림(森林)이 있었고 강(江)물은 맑아 경치(景致)가 매우 아름답고 풍요(豐饒)로운 곳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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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印度) 비하르 (Bihar) 가야(Gaya)구역의 도시(都市)인 보드가야(Bodh Gaya)

비하르 (Bihar)는 현재 인도(印度)면적으로는 12 번째로 (州, state)이며 서쪽으로 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북쪽으로는 네팔(Nepal), 동쪽으로는 서뱅갈(West Bengal)의 북쪽부분(northern part), 남쪽으로는 자르칸드(Jharkhand)와 인접한 지역이며, 비하 평야(Bihar plain)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갠지스 (Ganges river)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고대(古代)에는 마가다 왕국(Magadha kingdom, 摩竭陀王國), 비데하 왕국(Videha Kingdom)<현재의 인도(印度) 우타르프라데시 (Uttar Pradesh)비하르 (Bihar), 네팔(Nepal)의 일부자역(一部地域)>의 수도(首都)인 미틸라(Mithila) 및 보즈푸르 지역(Bhojpur region) 3개 지역을 포함하는 영역(領域)이랍니다. 고대(古代)십육대국(十六大國, Mahājanapadas) 중의 하나로서 마가다 왕국(Magadha kingdom, 摩竭陀王國)으로 병합(倂合되었답니다. 그 수도(首都) 파트나(Patna)파탈리푸트라(Pataliputra)라고 불렸으며 약 2,500년의 역사(歷史)를 지닌 세계적(世界的)으로 오래된 거주지(居住地) 중의 하나로서 아래와 같은 역사적 유저지(歷史的遺跡地)가 있답니다..

불교(佛敎), 힌두교(Hinduism)자이나교(Jaininsm)의 성지(聖地)바이샬리(Vaishali)<베살리(Vesali: 팔리어) 또는 비사리(毗舍離)>가 있으며, 이곳은 리차비족(Licchavis)밪지(Vajji, Sanskrit: Vji or Vrijji) 동(同盟)의 수도(首都)였으며,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佛陀)의 시대에 매우 큰 부유(富裕)하고 번영(繁榮)하며 사람들로 붐비며 음식(飮食)이 풍요(豊饒)한 도시(都市)였으며, 고급(high class) 창부(娼婦, prostitute) 암바팔리(Ambapālī)는 그녀의 미모(美貌)로 유명하였고 도시를 부유(富裕)하게 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라즈기르(Rajgir, 王舍城)<또는 라즈그리하(Rajgriha)>가 있으며, 이곳은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시대에는 마가다왕국(Magadha kingdom)의 수도(首都)였으며, 이 성() 밖에는 최초(最初)의 불교사원(佛敎寺院)인 죽림정사(竹林精舍, Veluvanarama)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佛陀)보리수(菩提樹, Boddhi Tree) 아래서 깨달음(正覺, enlightenment)을 얻은 장소(場所)로 유명한 보드가야(Bodh Gaya, Buddha Gaya)가 있답니다.

또한 세계사(世界史)상 최초(最初)의 대학(大學) '날란다 대학교'(Nālandā, university, 那爛陀大學校)<The Buddhist school, 기원전 7세기에 설립>과 서기 8세기에 설립된 비크람실라 대학(Vikramshila大學)이 있는 고대(古代) 인도(印度)의 교육중심지(敎育中心地)이었답니다.

 

또한 자이나교(Jaininsm)의 성지(聖地)파바(Pava)가 근처에 있답니다. 기원전 5 세기 경, 마하비라(Mahavira)<인도(印度)자이나교(Jaininsm) 창시자(創始者), 24번째이자 최후(最後)의 티르탕카라(Tirthankara: 깨달음을 얻은 성인(聖人)>가 바이샬리(Vaishali)에서 태어나서,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佛陀)와 마찬가지로 비하르(Bihar) 지역에서 활동(活動)하다가 바(Pava)에서 사망(死亡, 涅槃)하였답니다. 또 파트나(Patna)는 시크교(Sikhism)의 성지(聖地)이기도 하답니다. 10번째이자 마지막 인간 예언자(人間豫言者, Prophets) 시크 구루(Sikh Guru)인 구루 고빈드 싱(Guru Gobind Singh, 1666~1708)이 여기 파트나(Patna)에서 태어났답니다.

고대(古代) 인도(印度)에 창건된 첫 제국(帝國)난다 왕조(Nanda dynasty, BC 343년경∼BC 321)마우리아 제국(Maurya Empire, BC 322년∼BC 185)의 중심이었답니다.

 

고행림(苦行林)에서 싯다르타(Siddhattha)고행 실천(苦行實踐)

 

싯타르타(Siddhattha)는 네란자라강(Neranjara, 尼連禪河) 지역에 있는 고행림(苦行林)에서 오직 혼자서 여러가지 고행(苦行)을 실천하였답니다. 그곳은 천민(賤民)들이 죽은 후 시체(屍體)를 갖다 버리는 시타림(屍陀林, Sita-Vana)<인도어(印度語) 시타바나(ita-Vana) 'Sita' '차갑다()', 'Vana' '()'이란 뜻이며, 이를 한자(漢字)로 소리와 뜻을 가지고 시타림(屍陀林) 또는 '시다림'으로 불렀답니다.>이었답니다. 이미 이곳은 시체(屍體)가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惡臭), 온갖 짐승(animal)과 해충(害蟲)들이 시체(屍體)를 훼손(毁損)하고 해골(骸骨)들이 곳곳에 나 뒹구는 모습 등등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답니다.

 

이 곳에서 싯다르타(Siddhattha)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누구도 할 수 없는 극심(極甚)한 고행(苦行)에 들어갔답니다. 이것은 곧 브라만교(Brahmanism, 婆羅門敎) 수정주의(主義)주)을 버리고 고행(苦行)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곳에서 그는 새로운 결심으로 맹렬(猛烈)한 고행(苦行)을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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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주의(修定主義)브라만(Brahman, 婆羅門)들의 수행방법(修行方法)으로서, 브라만교(Brahmanism, 婆羅門敎)는 고대(古代) 인도인(印度人)들이 신봉(信奉)하던 종교(宗敎)로서 태초(太初)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브라흐마(Brahmā, 梵天)를 인정하고 이것이 전변(轉變, changeableness)하여 점차적으로 잡다한 우주(宇宙)가 이루어졌다고 믿고 일체만물(一切萬物)에는 그 브라흐마(Brahma, 梵天)가 내재(內在)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그것을 아트만(Ātman, 靈魂, 自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재신사상(內在神思想)입니다.

 그 아트만(Ātman, 靈魂, 自我)은 부정(不淨)과 죄악(罪惡)에 물들어 있으므로 해탈(解脫)을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肉體的)인 노력(努力)보다는 정신적 수양(精神的修養)을 하는 수련방법(修練方法)을 택하여 마음()을 제어(制御)하는 명상법(瞑想法)을 발전시켰답니다. 그것을 보통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한답니다.

 

그는 다른 수행자(修行者)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방법(方法)을 직접 체험(體驗)해보기로 했답니다. 사람들과의 모든 왕래(往來)를 끊고 호흡(呼吸)을 멈추는 고행(苦行), 음식(飮食)을 끊는 고행(苦行) 등을 극한(極限)까지 시도하면서 그의 몸은 갈수록 수척해졌답니다.

숲 속 수행자(修行者) 중에서 가장 더럽고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의 모습에 다른 브라만(Brahman 婆羅門) 수행자(修行者)들은 싯타르타 고타마(Siddhattha Gotama) 사문(沙門, Buddhist monk)을 검둥이(Negro)라고 놀렸고 심지어 지나가는 목동(牧童)들조차 더럽다며 욕했답니다.

 

고행(苦行)은 당시 아지비까(Ajivika)1) 자이나교(Jaina)2)의 사문(沙門, Śramaa)들이 즐겨 실천했던 수행방법(修行方法)이었답니다. 이러한 당시의 수행풍토(修行風土)에 따라서 싯타르타(Siddhattha)도 본격적으로 고행(苦行)을 실천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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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지비까(Ajivika)는 숙명론자(宿命論者)였던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가 이끌고 있던 교단(敎團)이었답니다. 아지비까(Ajivika)라는 명칭(名稱)은 원래 단순히 각각의 "생활법(生活法)에 따른 자()"라는 의미이지만 교단(敎團)의 명칭으로 사용하여 "생활법(生活法)의 규정(規程, Regulation)을 엄격히 지키는 자()"를 의미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사상(宗敎思想)에서는 "생활(生活)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手段)으로서 고행(苦行)하는 자()"로 이해되었고, 훗날 한역경전(漢譯經典)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로 폄칭(貶稱)되었답니다.

아지비까(Ajivika)에서는 고행(苦行)도 자연(自然)의 정해진 이치(理致), 결정론(決定論, determinism)으로 보았다거나 고행(苦行) 그 자체를 목적시(目的視)하였다거나, 혹은 고행(苦行)에 어떠한 실천적(實踐的) 의의(意義)를 인정하였을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학설(學說)이 추정되고 있답니다. 어쨌든 아지비까(Ajivika) 교도(敎徒)들은 생계수단(生計手段)을 위해서이건 철저한 고행주의(苦行主義)의 입장(立場)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2) 자이나교(Jaininsm)는 그 어느 종교단체(宗敎團體)보다도 고행(苦行)을 중요시(重要視)하는 교단(敎團)이었답니다. 자이나교(Jaininsm)의 교주 마하비라(Mahavira, 大雄)는 업(, karma)을 미세(微細)한 물질(物質)로 보고 이 업(, Karma)이 외부로부터 신체내부(身體內部)의 영혼(靈魂)에 유입(流入, asrava) 부착하여 영혼(靈魂)은 속박(束縛, bandha)하기 때문에 윤회(輪廻)의 생존(生存)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였답니다.

 

이러한 업(, Karma)에 의해 속박된 윤회(輪廻)에서 벗어나 영혼(靈魂)이 그 본성(本性)을 발현하여 해탈(解脫)하기 위해서는, 미세(微細)한 업(, Karma)의 물질(物質)을 지멸(止滅, nirjara)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율(戒律)을 지키고 고행(苦行)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출가수행(出家修行)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답니다. 출가 수행자(出家修行者)는 불살생(不殺生) · 진실어(眞實語) · 부도(不盜) · 불음(不淫) · 무소유(無所有) "다섯 가지 대금계(大禁戒)" 즉 오대서(五大誓)를 엄격히 지키고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형(裸形)으로 여러 가지 고행(苦行)을 행하였으며, 때로는 단식수행(斷食修行)으로 죽음(, death)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붓다(Buddha) 당시 가장 엄격(嚴格)한 고행주의(苦行主義)를 실천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이나교(Jaininsm)의 교(敎徒)들이었답니다.

 

불교경전(佛敎經典)에서는, 싯타르타(Siddhattha)가 실천(實踐)했던 여러 종류의 고행(苦行)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싯타르타(Siddhattha)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실제체험(實際體驗, hands-on experience) 수행(修行)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마음()을 제어(制御)하는 것, 호흡(呼吸, breathing)을 멈추는 것, 단식(斷食)에 의한 것, 절식(絶食)하는 것 등이었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시체(屍體) 인골(人骨) 버려져 있는 시타림(屍陀林, Sita-Vana)묘지(墓地)에서 노숙(露宿, sleep in the open) 하며, (grass clothes) 입거나 무덤(grave) 버려진 (cloth)으로 몸을 감싸고, 더위나 추위나 () 와도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파리나 모기가 몸에 붙어 피를 빨아도 쫓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이 침을 뱉고, 귀에 나뭇가지를 귀에 쑤셔 박아도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싯타르타(Siddhattha)는 그의 고행(苦行)을 본 사람들이 그가 죽어버렸다고 여길 정도로 '극심(極甚)한 고행(苦行)')을 실천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극심(極甚)한 고행(苦行)을 실천(實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안(平安)은 얻어지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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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甚)한 고행(苦行)의 경전설명(經典說明) : 앗기벳사나(Aggivesana), "()들은 나를 보고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沙門) 싯타르타(Siddhattha) 고타마(Gotama)는 이미 죽었다"라고, 어떤 신()들은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죽을 것이다"라고, 어떤 신()들은 이같이 생각하였다.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고 죽지 않을 것이다. 사문(沙門) 고타(Gotama)는 아라한(阿羅漢, araha)이다. 실로 아라한의 경지는 이와 같은 것이다"'. <중부경전(中部經典) I,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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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싯타르타(Siddhattha)의 고행상(苦行像), 기원전 2~3세기 간다라(Gandhara)<파키스탄(Pakistan) 라호르 박물관(Lahore Museum) 소장>

 

그래서 싯타르타(Siddhattha)는 일체의 음식(飮食)을 끊기로 결심하였답니다.

 

절식(絶食)에 의한 고행(苦行)으로 하루 한 알의 대추(jujube), (adzuki beans), (bean) 등을 한 번만 먹다가, 감식(減食)에 의한 고행(苦行)으로 사흘에 한 번 나중에는 보름에 한 번을 먹었답니다. 고행(苦行)을 계속한 결과 전신(全身)은 살이 빠져, 살갗(skin)생기(生氣)를 잃어 그때까지 아름답게 빛나던 황금색(黃金色)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 말라 비틀어진 오이(cucumber) 같았답니다. 수족(手足, hands and feet)은 갈대(reed)와 같았고, 갈비뼈(rib)는 헌 집(old houses)의 서까래(rafter)와 같이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척추(脊椎, spine)는 대나무(bamboo) 마디(joint)와 같았답니다. 뱃가죽(flesh of the belly)을 만지면 등뼈(spine)가 만져지고, (body)을 만지면 털(hair)이 말라 떨어졌답니다. 해골(骸骨, skull)이 드러나고 눈이 움푹 들어가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head)를 땅에 박고 넘어졌답니다.

 

그러나 눈만은 반짝이고 있었답니다. 싯타르타 고타마(Siddhattha Gotama)를 보고 어떤 사람은 "싯타르타 고타마(Siddhattha Gotama)는 죽었다",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나 7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답니다.

그때의 일을 회상(回想)한 '싯타르타(Siddhattha)의 말')을 경전(經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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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기벳사(Aggivesana),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옛날 어떤 사문(沙門) 바라문(婆羅門, Brahman)이 어떠한 격심(極甚)한 고통(苦痛)을 받았다 해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最高)이며 그 이상(以上)의 고통(苦痛)은 없었다. 또 미래(未來)의 어떠한 사문 ·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이며 그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이다. 또 현재(現在)의 어떠한 사문 ·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는다 해도 내가 받은 것은 최고이며 그 이상의 고통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격심한 고행에 의해서도 나는 일상(日常)의 인간(人間)이나 법(, dharma)을 초월(超越)한 최고(最高)의 지견(智見)에 도달(到達)할 수 없다.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에 이르는 다른 도()가 있을 것이다.<중부경전(中部經典) I, p.246>

 

경전(經典)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을 제어(制御)하는 고행(苦行)이란 단정히 앉아 아랫니(lower teeth)와 윗니(upper teeth)를 맞닿게 모으고 혀(tongue)는 위턱(upper jaw)에 붙이고 마음()을 억제(抑制, inhibition)하여 고통(苦痛)스럽게 하는 것이랍니다.

 

호흡(呼吸, breathing)을 멈추는 고행(苦行)이란 먼저 입(mouth)과 코(nose)로부터의 호흡(呼吸)을 막으면 귀(Ear)로 숨(breathing)이 들락날락하게 되며 커다란 이명(耳鳴, tinnitus)이 들려 격심(激甚)한 고통(苦痛)이 따른답니다. 이 귀(Ear)의 호흡(呼吸, breathing)을 막으면 날카로운 정수리(vertex)를 빠개는 듯한 고통(苦痛)이 일어나며 또한 질긴 가죽 끈으로 머리(head)를 휘감는 듯한 고통(苦痛)을 느낀답니다. 그 숨(breathing)이 하복부(下腹部)로 옮겨가면 배(belly, stomach)를 가르는 듯한 고통(苦痛)이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호흡(呼吸, breathing)을 막고 있으면 마치 힘이 센 남자(男子)들이 힘이 약한 남자(男子)의 팔을 잡아 잿불(banked fire, 埋火) 속으로 집어넣어 불()에 타는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온몸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답니다.

 

이 밖에 초기경전(初期經典)에서는 싯타르타(Siddhattha) 고타마(Gotama)가 실천(實踐)하였던 고행(苦行)으로서 식사(食事)에 관한 고행, 신체(身體)적인 고행, 항상 먼지나 오물로 더럽혀져도 결코 몸을 씻지 않겠다고 하는 따위의 맹세(盟誓)를 지키는 것 등의 고행(苦行)을 언급하고 있답니다. 이와 같이 싯타르타(Siddhattha)는 마음()을 제어(制御)하고 호흡(呼吸, breathing)을 멈추고 감식(減食)하고 혹은 단식(斷食)하였답니다. 죽음(, death)에 직면할 정도로 육체(肉體)를 괴롭혔으며, 그러한 고통(苦痛)을 극복(克復)함으로써 강()한 의지(意志)를 확립하여 해탈(解脫)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하려고 하였답니다. 이러한 고행(苦行) 6년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싯다르타(Siddhattha) "극진(極盡) 고행(苦行) 6 동안 하였지만 깨달음(enlightenment, 正道) 추구(追求) 때에 (, body) 마음(, mind) 괴롭혀서 고통(苦痛) 받는 이런 고행(苦行) 도무지 이익(利益) 없다" 것을 이제야 알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답니다. 출가(出家) ()에는 욕망(慾望) 따라 갔고, 출가(出家) ()에는 욕망(慾望) 억압(抑壓)했는데, 욕망(慾望) 따라가는 것도 욕망(慾望) 싸우는 것도 욕망(慾望) 노예(奴隸)임을 발견했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고행 포기(苦行抛棄)

 

싯다르타(Siddhattha)이렇게 죽음(, death)의 문턱을 넘나드는 이처럼 격렬하고 모진 고행(苦行)에도 불구하고 만족(滿足)스러운 결과(結果)는 얻지 못했고 역시 궁극(窮極)의 해탈(解脫)의 길은 얻을 수 없었답니다.

 

"해탈(解脫)은 커녕 성스럽고 거룩한 진리(眞理)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싯다르타(Siddhattha)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싯다르타(Siddhattha)는 고행(苦行)이 해탈(解脫)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이것을 포기(抛棄)하였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고행(苦行)은 심신(心身)을 훼손(毁損)시키는 것일 뿐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에 이르는 도()는 아니라고 명확(明確)하게 단정(斷定)하였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는 문득 어릴 때, 농경제(農耕祭)의 파종식(播種式)에 참가하여 생태계(生態界)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목격하고 농민(農民)의 고달픈 노동현장(勞動現場)을 체험(體驗)하고서 큰 충격(衝擊)을 받아 숲 속 잠부나무(Syzygium Cumini, 閻浮樹) 아래에서 선정(禪定)에 든 순간(瞬間)이 떠올랐답니다. 당시의 선정(禪定)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새로운 길이 보였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정(禪定)에 들자면 고행(苦行)으로 망가진 육체(肉體)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는 고행(苦行)을 중단(中斷)하고 음식(飮食)을 먹기로 결정했답니다.

 

고행림(苦行林)에서 수자타(Sujata: 善生)의 우유죽(牛乳粥) 공양(供養)을 받다.

 

싯다르타(Siddhattha)가 붓다(Buddha)되기 전  6년 고행(苦行)고행림(苦行林) 지도(map)

 

싯다르타(Siddhattha)고행림(苦行林))에서 고행(苦行)을 중단(中斷)하고 음식(飮食)을 얻자면 마을로 나가야 하고 그러자면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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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림(苦行林)싯다르타(Siddhattha)6년 고행(苦行)한 곳으로서, 우루웰라(Uruvela, Sk. Uruvilra, 優樓頻螺)모하나 강(Mohana River)과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 사이에 있는 숲 속이며, 싯다르타(Siddhattha)가 고행(苦行)을 하고 앉아있던 나무는 수자타(Sujata: 善生)목신(木神)<나무귀신(鬼神)>에게 공양(供養)을 올리던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Tree)이며 그 나무는 수자타(Sujata: 善生)집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고 무찰린다(Muchalinda) 연못<보드가야(Bodhgayā)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대탑(大塔)에서 남쪽으로 2km떨어진 곳에 모짜림(Mocarim)마을에 있답니다.>의 동쪽에 있었답니다. 그곳의 세나니그라마(Senanigrama)<바끄라우르(bakraur 또는 Bakrour)> 마을(village)에는 수차타(Sujata: 善生) 집터(site for a house)에 세운 수자타 수투파(Sujata Stupa)와 싯다르타(Siddhattha)가 수차타(Sujata: 善生)로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을 받은 탑(, Stupa)이 있답니다.

 

지금 걸친 (grass clothes)을 입거나 무덤(grave)에 버려진 천(cloth)으로 몸을 감싸고 속살조차 가리지 못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시타림(屍陀林, Sita-Vana)의 묘지(墓地)에 버려진 옷들을 주워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으로 찾아가 더러워진 몸을 씻었답니다. 시체(屍體)의 피고름(bloody pus)이 묻었던 더러운 옷을 빨고서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현재 팔구 강(Phalgu or Falgu River)으로 불린답니다> 강변(江邊) 그늘에서 말리자 출가자(出家者)에게 어울리는 분소의(糞掃衣: 누더기 옷)가 되었답니다.

 

발우(鉢盂)도 없이 우루벨라(Uruvela) 인근 세나니그라마(Senanigrama)<바끄라우르(bakraur 또는 Bakrour)> 마을(village)로 들어선 싯다르타(Siddhattha)고행(苦行)을 하며 앉아있던 용화수(龍華樹, Oil-nut Tree , Beauty Leaf)로 불리는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Tree) 아래에서 수자타(Sujata: 善生)의 우유죽(牛乳粥, rice milk) 공양(供養)을 받았답니다.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염소치기(Ajapala)가 주로 찾았던 반얀나무(Banyan Tree)<니그로다(Nigrodha)라고 함>라는 뜻이랍니다.

 

수자타(Sujata: 善生)가 싯다르타(Siddhattha)께 우유죽(牛乳粥, rice milk) 공양(供養)을 올리는 모습<Chedi Traiphop Traimongkhon Temple, Hatyai, Thailand> 

 

수자타(Sujata: 善生)로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받아먹은 싯다르타(Siddhattha)는 후에 네란자라 강(Neranjara)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는 발우(鉢盂, Bowl)를  강물에 띄웠다.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발우(鉢盂, Bowl)를 건져 올린 싯다르타(Siddhattha)는 생각했다. "인간(人間)이 이 생명(生命) 없는 바리때<발우(鉢盂, Bowl)>와 같아서는 안 된다. 자신(自身)의 의지(意志)로 저 흐름마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Tree)가 있었던 이곳에서, 싯다르타(Siddhattha)가 수차타(Sujata: 善生)로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을 받은 것을 를 기념(記念)하기 위하여 세워진 스투파(Stupa)가 발굴되지 않은 상태에 있답니다.

 

 

수차타(Sujata: 善生)가 싯다르타(Siddhattha)께 공양(供養)올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 스투파(Stupa)

 

싯다르타(Siddhattha)가 공양(供養)을 받았던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Tree)는 수자타(Sujata: 善生)가 목신(木神)<나무귀신(鬼神)>에게 공양(供養)을 올리던 나무이며, 수자타(Sujata: 善生)는 공양(供養)을 올릴 때, 그와 같은 싯다르타(Siddhattha)쇠약해진 외모(emaciated appearance)을 보고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그녀의 소망(her wish for having a child)"을 허락(granted)했던 나무()의 정령(精靈)<Tree-Spirit, Dryad>으로 잘못 믿고 있었답니다.

 

수자타(Sujata: 善生)는 우루웰라(Uruvela, Sk. Uruvilra, 優樓頻螺)보드가야(Bodh Gaya)<인도(印度)비하르 주(Bihar) 가야(Gaya)()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석가모니(Sakyamuni, 釋迦牟尼) 붓다(Buddha, 佛陀)보리수(菩提樹, Bodhi Tree) 나무 아래서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얻은 장소(場所)로 유명하다.>에서 약간 동쪽으로 모하나 강(Mohana River)과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 사이에 있는 숲 속의 고행림(苦行林), 싯다르타(Siddhattha)에게 공양(供養)을 올렸던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Tree)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 세나니그라마(Senanigrama)<바끄라우르(bakraur 또는 Bakrour)> 마을(village)에 살고 있었답니다. 아자빨라(Aja-Pala)염소치기라는 뜻인데 이 마을의 이름이 바끄라우르(bakraur 또는 Bakrour)이며 힌디어(Hindi) '염소'라는 뜻이랍니다.

현재 수자타(Sujata: 善生)가 살았던 집터(site for a house)에 세운 수자타 수투파(Sujata Stupa) 있답니다.

 

수자타(Sujata: 善生)의 집터(site for a house)에 세운 수자타 수투파(Sujata Stupa)

 

   

(왼쪽)아쇼카 석주(Pillar of Ashoka)는 원래 수자타 스투파(Sujata Stupa) 앞에 있었는던 것을, 1956년 보드가야(Bodh Gaya)로 옮겨 설치되었답니다.(오른쪽)수자타(Sujata)가 싯다르타(Siddhattha)께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하고 있는 상아조각(象牙彫刻)<Roundel 23 Buddha ivory tusk>

싯다르타(Siddhattha)가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받아 맛있게 먹자, 함께 정진(精進)을 격려하며 수행(修行)하며 따르던 5명의 도반(道伴)<5비구(五比丘)>들은 싯다르타(Siddhattha)가 고행(苦行)을 버리고 타락(墮落)했다고 비난(非難)하면서 등을 돌리고 그를 버리고 고행림(苦行林)을 떠나 사르나트(Sarnath)<녹야원(鹿野苑)이라고 하며, 현재 인도(印度)의 우타르프라데시 주(Uttar Pradesh州)에 있는 불교 유적지. 붓다(Buddha)가 성도(成道)한 후, 함께 정진(精進)을 격려하며 수행(修行)했던 5비구(五比丘)에게 처음으로 설법(說法)을 한 곳으로서 불교의 4대 성지의 하나이며, 굽타 양식(Gupta style)의 불상(佛像)이 많이 만들어진 곳이다.>으로 떠나버렸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가 수자타(Sujata)로부터 우유죽(rice milk)을 공양(供養)받아 먹자, 함께 수행(修行)하며 따르던 5명의 도반(道伴)들이 가 고행(苦行)을 버리고 타락(墮落)했다고 비난(非難)하면서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Siddhattha)는 타락(墮落)이 아닌 중도(中道)의 길을 걷기 위해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받았답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을 걷기 위해 싯다르타(Siddhattha)는 고행(苦行)을 버렸답니다.

 

중도(中道)의 실천(實踐)으로 깨달음(正道)을 얻기 위해

전정각산(前正覺山, Prakbodhi Hill)에 오르다.

그리고는 싯다르타(Siddhattha)가 수자타(Sujata: 善生)로 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받으시고 맛있게 먹고, 먼저 고행(苦行)에 의해 극도(極度)로 쇠약(衰弱)해진 심신(心身)을 회복(回復)한 후 깨달음(enlightenment, )에 이르는 자기 자신만의 수행방법(修行方法)중도적(中道的)인 수행(修行)강구(講究)하였던 것이랍니다. 이것이 바로 브라만(Brahman, 羅門)의 수정주의(修定主義)와 자유사상가(自由思想家)인 슈라마나(Śramaa)<사문(沙門)>들의 고행주의(苦行主義), 두 극단(兩極端, both extremes )을 떠난 중도(中道, Majjhim Patipada)인 것입니다.

욕망(慾望) 일어나면 욕망(慾望)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욕망(慾望) 다만 지켜볼 뿐이지 거기에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慾望) 억누르지도 않는 3 길을 발견(發見)했답니다. 가지의 극단(兩極端) 버리고 중도(中道) 길을 찾게 되었답니다.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모든 욕망에 따라 쾌락에 탐닉하는 것으로, 열악하고 야비하며 범부가 행하는 것이며 천하고 이익이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피로하게 하는 것에 탐닉하는 것으로, 괴롭고 천하며 이익됨이 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붓다(Buddha)>는 이 두 가지 극단에 가까이 가지 않고 중도(中道)주)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이 되고 지()가 되어 적정(寂靜) · 증지(證智) · 정각(正覺) · 열반(涅槃)으로 이끄는 것이다."<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 V. p.42.>

- 주(註) :

 

중도(中道, Majjhim Patipada)는 구체적으로는 팔정도(八正道, Ariya-atthangika-magga)라고 한답니다.

 

이러한 중도(中道)를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中道)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팔정도(八正道, Ariya-atthangika-magga)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답니다. 팔정도(八正道)란 고() · 집() · 멸() · 도() 네 가지 진리(眞理)<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 가운데 고()를 끊는 길()에 대한 여덟 가지 구체적(具體的)인 방법(方法), 즉 (1) 바른 견해(, Right Understanding)<연기(緣起)사제(四諦)에 대한 지혜(智慧)>, (2) 바른 사유(, Right Thought), (3) 바른 말(, Right Speech), (4) 바른 행동(, Right Action), (5) 바른 생활(, Right Livelihood), (6) 바른 노력(, Right Effort), (7) 바른 새김(, Right Mindfulness), (8) 바른 정신통일(, Right Concentration)을 제시한 것으로, 결국 각 개인(個人)이 수행(修行)을 통해 몸소 추구(追求)하고 실천(實踐)해야 하는 것이랍니다. 그것은 몸[]과, 언어[]와 마음[]을 스스로 갈고 닦는 일이요, 자신(自身)을 정화(淨化)시키는 과정(過程)이랍니다. 그리하여 도덕적(道德的), 정신적(精神的) 완성(完成) 을 통해 자유(自由)와 행복(幸福)에 이르는 길이랍니다.

 

팔정도(八正道)는 바로 ‘열반(涅槃)으로의 삶’이랍니다. 열반(涅槃)은 모든 번뇌(煩惱)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眞理)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 (法) 체득(體得) 경지(境地)로서 불교(佛敎) 궁극적인 실천 목적(實踐目的)이랍니다.

중도(中道)는 고()도 아니고 낙()도 아닌 중도(中道)를 말하지만 이는 단지 중간적(中間的)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붓다(Buddha)가 스스로 실천(實踐)하여 정각(正覺, enlightenment)에 도달한 도(),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얻으려는 자라면 누구든지 실수(實修)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초기경전(初期經典)에서 ‘도()’라고 할 경우 여기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하나는 중도(中道)라고 할 때의 도(, patipada)로서 붓다(Buddha)가 정각(正覺, enlightenment)을 얻은 행도(行道)로서의 도()이며, 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도법(道法)으로서 도(, magga, Sk. marga)이랍니다. 전자는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얻으려는 수행자(修行者)붓다(Buddha)의 실천방법에 따라 스스로 실천하는 주체적(主體的) 도()이고, 후자는 객관적(客觀的)인 도()로서의 도()이랍니다. 중도(中道)라는 것은 두 가지 극단(兩極端)을 떠나 정각(正覺, enlightenment)을 얻은 붓다(Buddha)에게 있어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으로 이끄는 도()이기 때문에 다만 객관적(客觀的)인 진리성(眞理性)을 나타내는 도()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주체적(主體的)인 도()라고도 할 수 있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는 가야산(伽耶山, 象頭山, Brahmayoni Hill)에 올라 네란자라 강(Neranjara River) 건너편 언덕 둥게스와리(Dungheswari)의 전정각산(Prakbodhi Hill, 前正覺山)이 수행(修行)하기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 곳으로 갔답니다.

전정각산(前正覺山, Prakbodhi Hill)붓다가야(Buddhagayā)<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네란자라(nerañjarā) 강변(江邊)에 있는, 싯다르타(Siddhattha)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이루고 붓다(Buddha)가 돤 장소>에서 가야(Gaya)<인도(印度) 비하르 (Bihar)의 주도(州都) 파트나Patna)에서 남쪽으로 10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都市)> 방향으로 15km 정도 이동하면서 오른쪽 네란자라 강(nerañjarā River)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rocky mountain)으로 싯다르타(Siddhattha)가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이루기 전()에 오른 산()이라고 하여 이와 같이 불린답니다.

이곳이 함께 수행(修行)하던 다섯() 도반(道伴)들이 떠나버린 후 싯다르타(Siddhattha)가 혼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 왔다는 전정각산(前正覺山, Prakbodhi Hill)이랍니다.

현장(玄奘, Hiuen Tsang, 602~664) 법사(法師)<중국(中國) ()나라 초기의 고승(高僧)>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설명에 따르면, 전정각산(Prakbodhi Hill, 前正覺山) )싯다르타(Siddhattha)가 고행(苦行)을 포기(抛棄)하고 깨달음(enlightenment, )를 얻기 전에 수자타(Sujata: 善生)로 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받으시고 기운(energy)을 얻고 난 후, 새로운 방법으로 수행(修行)할 장소(場所)  찾다가 올랐던 바위산(rocky mountain)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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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 산(前正覺山, Prakbodhi Hill) 정상

 

전정산(Prakbodhi Hill, 前正覺山)에 대한 현장(玄奘, Hiuen Tsang, 602~664) 법사(法師)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설명에 따르면,

"싯다르타(Siddhattha)가 고행(苦行)을 포기(抛棄)하고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를 얻기 전에 수자타(Sujata: 善生)로 부터 우유죽(牛乳粥, rice milk)을 공양(供養)받으시고 기운(energy)을 얻고 난 후, 전정산(Prakbodhi Hill, 前正覺山)에 올라가서 이 산()을 두루 관찰하니 고요하고 그윽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리하여 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증득(證得)할 자리를 찾기 위해 동북쪽 언덕으로부터 산()을 올라 정상(頂上)에 이르자 대지(大地)가 진동(振動)하고 산()도 기울고 흔들렸답니다. 산신(山神)이 놀라고 당황(唐慌)하여 싯다르타(Siddhattha) 보살(菩薩)에게 고()하였답니다. "이()깨달음(enlightenment, 正覺)을 이룰 만한 복()있는 땅이 아닙니다. 만일 이곳에 머물면서 금강정(金剛定)<온갖 분별(分別)과 번뇌(煩惱)를 깨뜨려 버리는 선정(禪定)>에 드신다면 땅(大地)이 진동(振動)하고 함몰(陷沒)하며 산()도 기울어지고 말 입니다."

 

싯다르타(Siddhattha) 보살(菩薩)이 서남쪽으로 내려가 산() 중턱의 낭떠러지에서 바위를 등지고 깊은 계곡(溪谷)을 바라보니 거대한 석실(石室)이 있었답니다. 싯다르타(Siddhattha) 보살(菩薩)이 이곳에 머물면서 가부좌(跏趺坐)하시니 땅(大地)이 다시 진동(振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