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김선규


왜무는 소금에 절여 동치미 만들고
배추 역시 짠물에 띄워 백김치 만들었다
고춧가루 귀해 허옇게 무친 조선무 깍두기,
그것들 올려놓고 먹는 저녁밥.
양지쪽에 말렸던 고사리국 따뜻해
큰애는 국그릇 벌써 뚝딱 해치웠다.
둘째 아들 막내 아들도 입맛이 돌아
동치미 꺽둑 베어문 입 속에 밥숟갈 가득,
손주새끼들 우선이라 듬뿍 뜬 할미의
밥덩이 하난 큰애 쪽에 척 얹혔다.
섣달 상순은 춥고 따뜻한 날은 멀고
추위가 끝나기 전에 부엌 쌀독 바닥날 게다.
사매기 갯벌 가면 바지락 남아 있을까
그거 캐다 끼니 얹을 요량 해야지.
바람 씽 지난 바깥은 우수수 떠는 울타리.

시집 『어머니』 창작과비평사 1997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선 음식 아닌 것이 없다. 하늘과 땅과 어우렁더우렁 만든 것들은 모아 사람의 몸에 맞춤형 식단을 만들어 낸다. 못 먹어서 설움이 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얼마나 착하고 순한 음식이던가? 자기가 씨 뿌리고 물 줘 기른 것을 자기 밥상에 얹혀놓는 저녁밥을 생각해 보라. 동치미, 백김치, 깍두기는 어려서부터 키운 자식 같은 거라서 그 힘으로 평생을 살았다. 큰애도 다 먹고, 막내아들은 입 터져라 먹는 밥상머리. 할머니의 밥덩이도 춤을 추며 큰애한테로 날아가는 정(情). 처마에 고드름 녹을 줄 모르고 봄소식은 먼데, 쌀독 비어가는 문풍지 소리는 속 긁는 듯해도 겨울은 따뜻했다.
출처 : 두꺼비와 밥 누리  |  글쓴이 : 섬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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