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섬의 서쪽 산 깎여 절벽을 세운 선착장매표소 지나

   농협구판장을 지나

   흐드러진 아카시아꽃이 이정표를 대신했던

   풀메기언덕에 올라선다


   여기가 어딘가 어드멘가 모르면서, 그것을 모르면서

   질경이 씀바귀들 한가운데로

   목숨 끝을 세우고 돋아난 신작로를 십리나 걸어

   낙엽처럼 걸어갔던 북리 근처


   마을로 들어설 근력없어 내다뵈는 바다를 하늘이라

   길 옆에 앉고

   탈진으로 이긴 흙을 쌓아 만든 집


   황해도 옹진서 내려온 가족이 찔레순 잘라 먹고

   참쑥 삶아 연명했던 터전이었다  

   한 시절 보낸 과거의

   과거의 자리는 무언가, 무엇이 마음 아파 꽁꽁 접어둔

   책갈피를 다시 열게 하는가


   서럽고 철저히 서러운 까닭뿐인데,

   옛같지 않아 처다보는 이 산, 저 들, 저 논두렁

   모든 식물이 일어서서

   먼지 흠뻑 쓴 내 손 잡아 악수하고, 얼싸안고 있구나

   -김선규시집<이슬 속의 새벽>(1988)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