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소(1867-1928)


   나중소는 고종 4년 출생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본관은 나주, 아명은 봉길이며 경기도 고양 출신입니다. 호는 포석.


   무과출신자로 여겨지며, 대한제국의 무관학교에서 수학합니다. 연성학교에서 육군정위로 복무했고, 1907년 9월, 군대해산 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돼 국비유학생으로 유학했습니다. 1908년 귀국해 1910년 국권이 일제에게 침략당하자 만주로 망명합니다. 거기서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만주망명 이전에는 나영훈을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 <고종실록>과<나영훈이력서> 등에서 보이나, 망명 이후에 비로소 나중소로 개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919년. 서일,김좌진,현천묵,이범석 등과 북로군정서를 조직합니다. 독립군양성을 위해 왕청현에 설립된 사관양성소 교성대장을 맡아 무장항일투쟁의 실력을 길렀습니다. 1920년 10월. 대소 10여회의 청산리대첩에서 참모장으로서 총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사상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해 겨울, 대한독립군단의 일원으로 노령에 들어갔다가, 소련의 기만을 예견하고 김좌진과 함께 북만주 영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소는, 그후 애국지사들을 규합, 신민부를 조직해 참모부위원장을 맡아, 무장항일투쟁의 구체적계힉을 작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