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시장


   <계약>

   노점에서 마시는 술은 적어도 나에게는 한결 부드러운 맛을 느끼게 한다. 우선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술안주라고 해봐야 그리 싱싱해보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만든 의자에 엉덩이를 맡기는 것이지만, 그렇게 딱부러지지 않은 격식이 좋다. 벌여놓은 장소가 개울 옆이거나 뒤에 나무라도 몇 그루 서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런 데서 술을 자주 마시는데, 주인이 바가지를 씌운다던가 퉁명스럽지 않은 한 물리지 않았다. 재래식 시장 안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어서 직접 운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월곡동은 우리집에서 한 시간 거리. 그 동네 시장으로 계약을 하러 갔다. 내게 자리를 넘겨 줄 사람은 자매였다. 일년 정도 장사를 했고, 계속하려고 했으나 동생이 아이를 갖는 바람에 그만 둔다는 것이었다.

   "언니 혼자 하셔도 되잖아요?"

했더니, "저는 한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는 성격이라 동생을 좀 돕기만 했지요. 게다가 저는 다음달에 지방으로 이사를 가거든요."

   큰 건물에 그 지하층을 음식코너, 건어물코너,생선코너,잡화코너 식으로 꾸며 놓은 곳이 월곡시장 풍경이다. 건물 밖에서는 채소트럭을 몰고 온 사내들이 벽을 등진 채 열심히 팔아대는 곳.

   이만하면 어련하랴 싶었고, 예비손님들이 한눈으로 봐도 어지간히 지나다니길래 주저없이 계약서 꾸밀 다방으로 갔다.

   노점은 원래 본주인이 있으나, 사정상 불참했으므로 임차인이 다른사람에게 인계하는 형식으로 서류작성을 했다. 저쪽에서는 실제로 장사를 했던 동생이 나왔고, 나는 집사람을 대동한 터였다. 계약을 마치자 저쪽의 동생이 이런 말을 한다.

   "절대로 후회는 없을 거예요. 첫 한두달은 기본 생활비만 버신다치면 어느새 단골이 븥거든요. 수입이 짭짤해요"

   시장 주위에 여자대학교.상점.중소공장.사무실 등이 있어, 좋은 말 따로 듣지 않고도 운영상 애를 먹지 않겠다는 자신을 나는 이미 했던 것인데,

   "돈은 버시겠지만, 이제부터 고생 꽤나 하시겠네." 라고 말하는, 다방 아주머니를 나는 잠시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아까부터 우리들이 작성하고 있는 계약서내용이 궁금했던지 어깨너머로 힐끔거리곤 했었다.


   <첫쨋날>

   시장 안 분위기는 솔직히 말해서 거리의 노점과는 사뭇 다르다. 하늘이 지붕인 거리의 노점은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노점이라기보다 일정한 수용시설을
쪼개고 쪼개 조금씩 나눠가진 분위기. 들어오는 입구 몇 개 외에는 사방이 막혔기 때문에 기분에 따라서는 음울한 인상을 풍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특성까지 독특한 운치를 만들어 내는 곳이 시장 안이다. 코너마다 백열전구를 밝히고, 음식을 좌판 위에 쫙 깔고, 앉아서 먹는 손님과 서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주인이 마주 보며 편안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니 정답지 않은가. 거리보다 음식값이 싼 것도 그런 느낌을 더하는 것이다.

   첫쨋날은 청소며, 이것저것 준비하는 일을 했다. 보잘것 없는 보증금에다가 월세 얼마를 내는 자리에 불과하지만, 자자분한 준비물이 들기는 어엿한 식당의 그것과 비교해 지지 않는다. 그런 잔가지들은 대개 먼저 사람이 넘겨준 터여서, 그것을 정리하고 빠진 용품을 추가로 준비하는 일을 했다. 오후 네 시쯤 돼서는 내일부터 쓸 음식 재료 주문을 했고.

   삶의 양태는 여기서도 다양하게 유추된다. 가령, 순대국을 만들려면 그 재료를 어디선가 구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수단인지라 싼 재료일수록 이윤 높은 음식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적당히 돕는 사람이 시간 맟춰 코너를 돈다. 이른바 중간마진 벌이를 하는 상인들이다. 이들은 새벽에 마장동같은 우시장을 돌며 주문 받은 양만큼 재료를 구해다 준다. 이때 그들은 차익을 챙길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지만, 이곳은 딱히 유리한 자리가 없는 듯하다. 시장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의 심리란 게 뻔하지 않은가. 이것저것 구경하는 맛을 즐기다가 앉게 마련이니 미리 계산된 자리가 아닌 것이다. 단골손님이 없지는 않아서 그런 이들의 자리는 정해져있다 해도, 나같은 신출내기가 꾸려갈 만큼 그럴싸한 기운은 한결같은 꼴로 널린 노점들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냉장고 두 대 중 하나는 손 볼 구석이 많아 한참을 낑낑거렸다. 프로판히터가 더러워 네 대를 일일이 닦는 둥, 그런 식으로 준비를 완료한 후 일부러 옆 코너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장사를 재미나게 하려면 이웃과 친해야 한다. 옆 코너 주인하고는 이미 인사를 나눈 셈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궁금한 것을 자주 물어보아도 싫다 않고 받아주었으므로, 그 보답을 겸한 저녁식사를 했다. 이 집은 여자가 주인이고 남자가 곁에서 돕는데, 솜씨로 보아 이력이 상당한 듯했다.

   "한 오 년은 넘게 하셨겠네요?"

했더니, 뒷코너의 주인이 듣고 한마디 거든다.

   "오 년? 십년이 넘었다우. 이 장사 해서 애들 넷 학교 보낸 거 아니겠수."

나는 그러는 뒷코너 주인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나서 장사준비를 줄곧 함께 했던 집사람과 의미있는 눈맞춤을 했다.


   <둘쨋날>

   노점음식은 가정에서 먹는 종류와 거리가 있다. 별 손질을 않고 양념 섞어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상등품이 아니라서, 재료가 음식이 되기까지 어지간한 공을 들여야 했다. 특히 돼지내장 다루기를 그렇게 해야 한다. 돼지내장은 순대국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느 재료이다. 출출한 시간에 소주를 곁들인 이 음식을 나는 좋아했는데, 그것의 재료가 상상 밖으로 조악한 것이다. 짐승의 몸속엣것이니 당연하겠으나, 냄새 없애는 방법을 배웠으면서도 큰 애를 먹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집사람도 이런 것 만지기는 처음인지라, 나보다 더 쩔쩔매는 것 아닌가.

   그래. 그 무엇을 얻는 일은 무심결에 하지만, 그리고 그것의 내용이나 됨됨이에 대한 감정표현은 얼마든지 쉽사리 하지만, 그것이 저들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이처럼 하소연 못할 과정이 있다는 이치를 또 직접경험으로 깨닫는구나. 조악한 것일수록 더 손이 가는 이런 과정은 도처에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다가 잊혀지고 있나.

   오전 열한 시가 지나서야 우리 '음식점'은 겨우 그럴싸한 모양이 됐다. 깜냥대로 했으니,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 주인이 교체된데다가 처음 뛰어든 것인만큼 아무래도 서툴 터. 그만큼 판매량도 어느 정도는 적을 거라는 각오는 했다. 차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 앞에서 절대 당황하지 말라는 다짐을 누차 집사람한테 준 다음 밖으로 나왔다. 우리 가게의 사실상 운영자는 집사람이니까, 에스오에스가 생기면 내가 달려가 냉큼 돕기로 하고... 그런 연유로 시장 주변만 빙빙 돌다가 궁금해지면 그쪽을 기웃대보곤 했다. 기다려주기와 기다리기는 현저한 심리적 차이가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후자의 처지인데, 실감을 독하게 하라는 걸까. 두 시간이 흘렀는데도 개시해 주는 이가 없다. 그 상태로 저녁 때가 되자 어기적거리던 술 손님 하나가 겨우 자리를 잡는 것을 시작으로, 새내기의 손놀림이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구경은 마음이 자유로워야 너그럽게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사물은 사람들로하여금 얼마나 감상적이게 하는가. 그리하여 얼마나 다채롭고 변덕스런 발상까지 하게 하는가. 그러나, 나하고 집사람은 이제부터 시간과 몸을 약정한 만큼 스스로 구속한 처지. 이곳을 퇴근하면 그 구속은 풀리지만 지금은 아니니 마음이 감상적이거나 자유롭지 못하다. 구경꾼 입장이 아니므로, 개울물 흐르는 저 거리의 노점 분위기가 어떠했노라는 따위를 나는 이곳에 묶인 시간만큼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심리가 제발로 숨어들어선지 시장문을 닫을 무렵 나는 얼마간 지쳐있었다. 난생처음 돈벌이를 해보는 집사람은 나보다 덜 지친 듯했다. 전에 없던 또록또록한 눈빛이 새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친 기색이 보여서

   "어때! 남의 돈 챙기는 기분이?"

라며 싱겁게 웃어주었다. 첫날 영업실적은 예상대로 그럭저럭.


   <기억>

   1981년 여름. 나는 직장 근처로 세를 얻어들었다. 그곳이 월곡동이다. 큰길 하나 건너면 한국과학기술원이 있다. 거기서 근무를 하던 참. 추운 계절에 얻은 방이 아니라서 몰랐으나, 겨울을 맞으면서 잘못 든 집이라는 걸 알았다. 연탄 보일러 설치를 애초부터 부실하게 하는 바람에 줄창 냉방신세였다. 제대로 고치려면 날이 풀려야 한다는 집주인의 말에는, 비용 드는 짓은 않겠다는 굳은 의도가 섞여 있었다. 내가 그때 거느린 식솔은 둘. 하나는 갓 두 살바기였다.

   추위를 몹시 타는 집사람은 아이를 끌어안고도 덜덜 떨었다. 체질이 그렇기도 하지만, 그 겨울은 유독 독했다. 하루는 늦게 퇴근을 해서 오니 방이 비어있었다. 집사람은 예고없이 밤 출입을 않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자정이 돼서도 아이와 함께 나간 집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감기로 열이 심상찮던 아이였지... 걱정이 발전하면 중심이 흔들리는 법이다. 흔들리면서 허둥대면서, 나는 병원을 찾아 헤맸다. 개인병원은 전부 문을 닫은 뒤였는데, 새벽 두 시쯤일까, 종암동 쪽 성가병원에서 집사람을 찾아냈을 때의 그 안도감이라니. 아이는 응급실 침대에서 이마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 훌쩍이고 있었다. 긴 시간을 그러고 있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손수건을 쥔 집사람은 밖에 나와 대기실에 앉아서 울고 있었고.

   "병원엘 왔으면 왔다고 전활 했어야지? 얼마나 가슴 탔는지 알아?"

   우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를 수는 없어서, 낮은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 집사람의 대답을 나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애기가 너무 가여워서 연락할 생각을 잊어버렸어요..."

   월곡동은 내가 가정을 꾸미고나서 두번째 옮겨 살게 된 곳이다. 그후 얼마나 많이 옮겨 다녔나. 응봉동,암사동,명일동... 그리고 다시 응봉동으로 왔다가 월계동으로, 월계동에서는 상계동으로...

   사람 됨됨이가 원래 그런 게 아닌 터수로는,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것들에게 그악스런 면도 보여야했겠으나, 나는 거의 그렇지 못했다. 착하고 정의로웠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복잡한 경우다싶으면, 또는 내 마음과 다르다싶으면, 자진해서 그 자리를 후퇴했다. 그런 태도 이면에는 떳떳해서 자랑삼을 일면도 있을 수 있겠으나, 뒤집어보면 약했던 경우가 왜 없었으랴. 후퇴를 하면 마음이나 편해야 할 터인데 그런 조건마련 없이 스스로를 내려앉혔더니, 정작 온몸으로 고달픈 짐도 본인 몫이었다. 생산적 상상의 자유는 얼마든지 허용되나, 그 상상을 실생활에 옮겨 득을 본 이는 적다.

   월곡시장의 달라진 점을 들라면, 낡은 외벽이다. 내벽도 덩달아 그렇게 된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라치고, 직장동료들과 어울렸던 어렴풋한 기억들이 그런대로 그립다는 정감까지 갖게 한다. 하긴, 어디로 또 흘렀든  쉬운 일만 생기지 않았으며, 그런 것만 생기는 삶이나 터전은 없을지 모른다.

   식솔을 데리고 있었던 집에서 가깝기는 했지만, 외형을 샅샅이 관찰할 이유 없어 적당히만 친했던 사물들을, 사십을 훌쩍 넘긴 밤중에 나는, 새로 가다듬은 내 눈으로 다시 보고 있다. 낡았으나, 오히려 이 월곡시장은 재래식분위기가 더 나서 좋지않은가... 주변인구도 옛날보다 부쩍 늘었고.

   어떻든, 여기서 다시 새로운 출발이다.-김선규 산문집<지치지 않은 날도 있었네>(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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