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우리집 개 재롱이는 방안에서만 자라다시피 했다. 이놈을 사다가 키울 때 살던 아파트가 높았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높은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땅과의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어야 바깥출입을 하는데, 반려견이 밖에서 볼 일이란 없다. 큰 덩치를 가진 놈이라면 다르나, 새끼였을 때의 재롱이는 내 주먹만했다. 실내용 치와와 종자라 방에서만 놀고 저지레도 베란다에서 했다. 어쩌다 밖으로 나가는 수가 있기는 있었다. 그런 경우는 보호자가 품에 안겨 있었으므로 땅을 밟아보는 경험은 퍽 드믈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낸 놈이 다른 장소와 금방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리라. 세상에 나온 것이 삼사년 전. 사람 나이로 치면 스므 살쯤 되는데도 문밖 공터를 걷는 동작이 어색하다. 좋아하는 듯싶으면서도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다. 녀석은 아마 먼저 살던 곳에서 어쩌다 구경했던 바깥세계를 기억해내려는 모양이다. 품에 안겼을 때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리번거렸던 것을 예서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녔던 기억하고는 아무래도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낯설음을 어정쩡한 걸음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집앞을 왼쪽으로 벗어나면 새로 난 찻길이 있고, 길게 누운 산이 길을 내려다본다. 외진 곳이라 한산해서 바람 쐬러 나오면 이런저런 얽힌 생각들이 어느만큼 정리 되는 곳. 어느 날은 그곳으로 재롱이를 데려갔다. 너도 운동을 시작해라. 산도 보고 하늘도 보며 살아야 생명다운 생명이 아니겠냐. 더구나 너처럼 개 이름을 가진 동물은 본시 고향이 저런 산이란다.

   방안 생활에서 문밖 경험을 하고 문밖 경험이 발전하여, 재롱이 입장에선 다른 나라 원정인 셈이 되었다. 녀석은 문밖의 경험보다 더 벅찬 눈치였다. 머리를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면서 내 눈을 자꾸 쳐다보았다. 그러는 녀석을 앞세워 가게 했더니 이것 봐라, 녀석은 길이 점점 낯익는지 내 코치를 받지 않고도 저 혼자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해 보였다. 그 일이 숙달되고부터는 오히려 나를 끌고다니다시피 해서 예정에 없던 먼길까지 가고 말았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해치우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해치운 것만큼 득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령 열흘 걸려 할 일을 하루이틀만에 했다고 해서 그 무엇보다 앞선 것은 아니다. 나머지 시간은 후유증이 차지할 따름이다. 후유증은 '앞섬'을 적당한 자리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하므로, 열흘 걸려 한 일과 결국은 같아지는 형국이 된다.

   재롱이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과하게 자신의 일에 열중하더니, 몸살을 하는 것이었다. 개가 즐겨하는 일로 먹는 것 빼면 뭐가 있겠나. 넓은 세상 구경하느라 수고했겠다 싶어 특별히 차려준 성찬을 마다하는 걸 보니, 가벼운 후유증이 아닌 모양이었다. 코끝에서 더운 숨이 나오면 아픈 것이라길래 자주 확인해보았다. 녀석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렸다. 이틀 동안 녀석은 물도 안 먹고, 비실비실 걷거나 장시간 누워있는 짓만 했는데 평소엔 차갑던 코끝이 내내 더웠다.

   아픈 일이 없도록 하려먼 처지를 제대로 다스릴 일이다.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어느 정도이며, 그 그릇에는 무엇을 채워야겠다는 확신이 튼튼해야 할 터이다. 그러고서도 아픈 날은 건듯 찾아오는데, 그릇을 어떻게든 빨리 만들려는 욕심과 빨리 채우려는 조급이 그 원인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면 욕심과 조급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나... 그냥, 저 산이 거느린 나무들만큼, 저 산이 띄워 올린 분량만큼의 하늘을 만들어 사철 즐겁고 의연할 일인데, 사람의 삶은 결코 그렇게 일사천리로 녹녹치않구나.

   사람과 개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나는 개가 몸살을 한 원인을 들어 과장된 상상을 하고, 사람의 삶과 애써 비교하고싶지는 않다. 개가 가진 본능과 사람의 그것은 비슷한 것이 많아서, 말하자면 우리집 개 재롱이 행동을 계기로 나름껏 터득한 느낌을 그릇이 어떠니 조급이 어떠니 하고 말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을 제공한 재롱이는 지금 무료하기 짝이 없는지 하품을 길게 하고  있다. 장난 좀 해볼까 싶어 일부러 큰 소리를 해대면 괜히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다가 내세우는 짓이 바로 저 긴 하품이다.

   그러나 녀석의 천역덕스런 행실 뒤에 문득 튀어나오는 가르침이. 적어도 요즘의 나에게는 적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사십칠년 동안 몇 번 몸살을 앓았을까.

-김선규산문집<지치지 않은 날도 있었네>(1991)-